바이오젠은 지난 13일(현지시간) 희귀뇌질환인 진행성핵상마비(progressive supranuclear palsy, PSP) 신약후보물질 ‘고수라네맙’(gosuranemab)의 임상시험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루 앞서 12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시 소재 사렙타테라퓨틱스(Sarepta Therapeutics)의 뒤센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DMD) 치료제 ‘비욘디스53’(Vyondys 53 성분명 골로더센 golodirsen) 주사제를 가속승인했다.
두 소식과 관련해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아두카누맙’(aducanumab) FDA 승인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바이오젠은 PSP 환자 대상 고수라네맙 임상2상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지 못해 1차 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차 지표에서도 효과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바이오젠은 신경계 질환의 병리학적 차이를 감안해 고수라네맙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에 사용할 전망이다.
PSP는 뇌의 특정 영역의 소실, 점진적인 퇴행을 일으키는 진행성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스틸-리처드슨-올스제브스키증후군(Steele–Richardson–Olszewski syndrome)으로도 알려졌다. 주로 50대에 나타나며 안구마비, 치매, 균형상실, 이상강직 등이 주요 증상이다.
고수라네맙은 타우(tau)단백질의 N-말단(N-terminal)을 표적하는 인간단일클론항체(humanized monoclonal antibody) 약물이다. 타우단백질은 알츠하이머병뿐만 아니라 PSP 등 다른 신경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졌다.
미국 투자기관인 제프리(Jefferies) 분석가들은 고수라네맙의 실패에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분석가들은 투자자 레터에서 “고수라네맙과 거의 동일한 애브비의 항-타우항체 신약후보물질도 지난 7월 PSP 환자 대상 임상 2상에서 무용성으로 인해 중단됐다”며 “이는 타우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임상 가설이 해결하기 쉬울 것 같지만 어려움을 명료히 보여주며 PSP는 그 중에서도 타우가 과발현하는 공격적인 타우병증(tauopathy)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반면 RNA 표적치료제 개발 전문 제약사 사렙타테라퓨틱스 비욘디스53의 신속 승인(accelerated approval) 소식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FDA는 지난 8월 감염과 간독성 위험 등 안전성을 이유로 비욘디스53 승인을 거부한 바 있다.
비욘디스53은 디스트로핀(dystrophin) 유전자 변이나 결여로 인한 뒤센근이영양증에서 exon 53 skipping을 유도해 디스트로핀 단백질을 늘려 근섬유 증강에 도움을 주는 RNA표적 유전자치료 주사제다. exon 53 skipping이 이뤄졌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군을 치료 대상으로 한다. 엑손 스키핑(exon skipping)은 RNA 서열 중 기능성을 나타내는 엑손 가운데 오류나 정렬 착오로 생긴 부분을 RNA 절단(splicing)으로 제거해 핵심 부분만 남겨 엑손의 기능을 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번 FDA의 비욘디스53에 대한 신속 승인은 3개월 전 퇴짜를 놓았다가 반전을 일으킨 결정이라 미국 월가를 더욱 놀라게 했다. 비욘디스 53은 임상 2상을 마치고 신약승인요청(NDA)을 냈다가 지난 8월 19일 거부당했으며 현재 3상을 진행 중이며 2023년까지 마칠 예정이다. 사렙타는 임상시험에서 ‘비욘디스 53’으로 48주 이상 치료를 진행한 결과 평균 디스트로핀 수치가 착수 시점 0.10%에서 1.02%로 증가했음을 입증해 결정적인 허가의 단서를 마련했다.
빌리 던(Billy Dunn) 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enter for Drug Evaluation and Research, CDER) 신경계약품부서 관리국장은 “FDA는 새로운 중증 신경계 장애 치료제가 시급히 요망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며 “이에 각종 희귀질환 치료제의 개발 및 허가 취득이 촉진될 수 있도록 연구자, 제약사, 환자들과 장기간에 걸쳐 긴밀한 협력을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신속승인 심사절차를 밟은 만큼 ‘비욘디스 53’은 환자들에게 기존 임상자료를 근거로 사용될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확증시험으로 임상적 효용성과 관련한 더 많은 정보가 확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속승인 절차를 밟았던 만큼 FDA는 ‘비욘디스 53’의 임상적 효용성을 확증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추가로 진행할 것을 사렙타 테라퓨틱스 측에 주문했다.
사렙타는 앞서 2016년 9월에도 뒤센근이영양증 치료제 ‘엑손디스 51’(에테플러센, eteplirsen)을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엑손디스 51’은 FDA의 허가를 취득한 최초의 뒤센근이영양증 치료제다.
뒤센근이영양증은 근육 약화와 쇠약 증상이 진행되는 특징을 나타내는 희귀유전질환이다. 근이영양증(근위축증) 가운데 가장 고빈도로 나타난다. 최초 증상은 보통 3~5세 무렵에 나타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악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선천적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가족력이 없어도 후천적인 디스트로핀 유전자 변이로 발병할 수도 있다. 주로 남아 3600명당 1명 정도로 나타나며 드물게 여아에서도 발견된다.
뒤쉔근이영양증 환자는 독립적인 활동능력을 점차 상실해 10대 초반에 휠체어를 타야 하는 경우가 적잖다. 증상이 진행되면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 및 호흡기계 증상들이 수반될 수 있다. 20~30대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중증도에 따라 수명에서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이 소식과 함께 스테판 한(Stephen Hahn)이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 지난 13일 차기 FDA 국장으로 확정됐다. 스테판 한 국장은 올해 가을 네드 샤플리스(Ned Sharpless) FDA 수장에게 자리를 이어 받아 국장직을 대행한 브레트 기루아(Brett Giroir) 미 보건복지부국장으로부터 권한을 넘겨받게 된다.
제프리 분석가들은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바이오젠에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올해 초 아두카누맙은 알츠하이머병 환자 대상 임상에서 눈에 띄는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신약 승인이 거부됐다. 그러나 지난 10월 FDA 결정은 고용량 아두카누맙 치료를 받은 소규모 환자의 데이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추가 데이터를 확보해 결정을 뒤집겠다는 의향을 공표했다. 바이오젠은 기필코 FDA 승인을 얻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제프리 투자분석가들은 “사렙타의 깜짝놀랄 만한 사례처럼 FDA 상위 부서에 승인 여부 재검토를 요구하면 신경계질환과 관련해 FDA가 제한된 임상데이터만으로도 승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이번 상황이 바이오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통념에 따르면 신경계질환 신약 허가는 역사적으로 빌리 던 국장 아래 엄격하고 냉정하게 이뤄져 왔다”며 “신약평가국(office of new drugs, OND)의 상위기관(즉 CDER)에 지지를 호소했더니 환자의 기능적 개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디스트로핀의 추정적 증가만으로도 FDA는 사렙타의 DMD 치료제를 승인할 용의가 충분히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석은 사렙타의 뒤센이영양증과 비슷한 역학관계를 가진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에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분석가들은 바이오젠의 예상치 못한 승인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 주목했다. 외신은 한 국장의 책상 앞에 아두카누맙의 미래가 놓여있다고 입을 모았다. 바이오젠의 주가는 13일(미국 현지시간) 폐장후거래에서 1% 상승, 사렙타는 30%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