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포르민, 환자수 많고 시장규모 커 제약업계·국제 규제기관 눈치만 … 수동적 행정에 불쾌한 의료계, 직접조사 및 신속해결 촉구
당뇨병 치료제 성분인 메트포르민(Metformin)에서 발암 유발 추정 불순물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가 검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제약사·의료계가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메트포르민은 간에서 포도당이 생성되는 것을 막고 장에서는 포도당 흡수를 감소시켜 인슐린 과다 분비를 조절한다. 고인슐린혈증을 유발하지 않아 설포닐우레아계 약물처럼 비만을 초래하지 않는다. 또 설포닐우레아처럼 저혈당을 유발하지 않아 치료실패율이 20%를 넘지 않는 게 장점이다.
NDMA는 간독성·간암을 유발할 수 있는 공업용 화학물질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 물질을 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2A군으로 분류했다. 2018년 7월 중국 제지앙화하이(Zhejiang Huahai)가 제조한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Balsartan) 원료에서 검출돼 세계적 판매중지·회수 사태를 일으켰다.
올해 9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위장약·제산제 성분인 라니티딘(Ranitidine)에서, 11월에는 같은 작용을 하는 니자티딘(Nizatidine)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선 지난 9월 식약처가 라니티딘 269개, 니자티딘 69개 품목에 대해 판매 중단 조치를 내린 상태다.
식약처는 니자티딘 불순물 검사를 진행한 결과 NDMA가 검출되는 원인은 니자티딘 내 ‘아질산기’와 ‘디메틸아민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따라 자체적으로 미량 분해·결합해 생성되거나, 제조과정 중 아질산염이 비의도적으로 혼입돼 생성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문제가 된 메트포르민은 대체제가 없고 단일성분 제형 이외에도 DPP-4 억제제·SGLT-2 억제제·치아졸리딘디온(TZD) 계열 제제와 복합제로 출시된 품목이 많아 판매 중단 및 회수 조치가 내려지면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약 7000억원 규모의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메트포르민 제제는 절반을 훌쩍 넘는 4000억원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4일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이 메트포르민 성분 당뇨병 치료제 46개 품목 중 3개 제품에서 발암 추정물질인 NDMA가 검출돼 회수조치를 내리면서 시작됐다. 미국과 유럽에선 현지 유통 중인 메트포르민 의약품에 NDMA가 허용된 범위 이상 함유됐는지를 조사 중인데도 한국 식약처는 상황을 지켜보자는 식의 소극적 대처로 일관하면서 각 제약사에 자체 검사를 지시한 상태다.
각 제약사는 NDMA 등 발생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에 대해 즉시 자체 시험검사를 실시하고 관련 성분이 검출되면 지체없이 식약처에 보고해야 한다. 발생 가능성 평가는 2020년 5월, 시험검사는 2021년 5월까지 식약처에 보고해야 한다.
메트포르민은 처음 당뇨병 치료를 받는 초기 환자에서 중증 환자까지 모든 단계에서 처방하는 기본 약제다. 3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당뇨병 환자의 약 80%인 240만명이 복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제 오리지널 약은 독일 머크의 ‘글루코파지정’이다. 국내 복제약(제네릭)으로는 대웅제약 ‘다이아벡스정’, 한올바이오파마 ‘글루코다운오알서방정’, 유한양행 ‘유한메트포르민서방정’ 등이 처방되고 있다.
싱가포르 보건당국이 진행한 검출시험 결과 일부 제품에서만 NDMA가 나온 것처럼 국내에서 검출 제품이 발생하면 불검출 제품 위주로 처방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판매 중지 조치가 내려지면 해제 전까지 마땅한 대책이 없다.
제약업계는 앞서 라니티딘·니자티딘 제제에서 NDMA가 검출된 뒤 취한 식약처의 판매 중지 조치가 재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 성분 의약품에 대해 조사를 진행해 NDMA가 검출된 의약품은 일부로 확인됐는데도 전 제품에 대해 내린 판매 중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10월 NDMA 검출과 관련해 제약사에 전체 합성 원료의약품에 대한 불순물 자체 검사를 지시했다. 검사 결과 불순물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인정한 물량은 회수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판매중지는 계속되고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식약처가 문제 없다고 확인한 뒤 판매금지는 풀어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불순물이 나올 때마다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문제가 있다고 밝혀진 품목은 대부분 생산한 지 오래돼 재고로 남은 물량으로 회수 물량이 미미하고 사용기간도 지난 것들이 많아 식약처의 품목 전반에 걸친 판매금지 조치는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이에 식약처는 지난 12일 니자티딘 성분 약인 바이넥스 ‘프로틴정75mg’의 판매중지 조치를 해제했다. 하지만 이 제품은 회수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용기한이 지난 것으로 파악돼 판매금지가 풀리는 신호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제약사 눈치를 보며 판매금지 기한을 연장하려는 요식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니자티딘 의약품에 대한 확신이 서기까지 판매금지 해제를 보류해보겠다는 심산이다.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은 발사르탄·라니티딘 제품을 구분해 불순물이 검출된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서만 자진 회수 등 조치를 취했을 뿐 관련 품목 전체를 대상으로 한 판매중지 조치는 없었다.
자넷 우드콕 미 FDA약물평가연구센터(CDER) 박사는 “지금까지 확인된 NDMA 검출 수준은 굽거나 훈제한 고기와 같은 일반 음식을 먹었을 때 노출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의 소극적 대응에 대해 의료계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정부가 국내에서 판매되는 메트포르민 성분 치료제에 대해 직접 NDMA 검출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내 환자들 사이에서 발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자의적으로 복용을 중단하는 환자가 발생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괄적이지 못한 제약사 자율점검 수준을 넘어 빠른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학회 관계자는 “NDMA는 약물의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지만 음식, 공기, 물, 화장품 등을 통해서도 체내에 들어온다”며 “장기간 고용량을 섭취했을 때 발암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하루 허용 기준치인 96나노그램은 70년간 노출됐을 때 10만명 중 1명에서 암이 나타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뇨병 치료제 복용을 중단하면 고혈당으로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존처럼 복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식약처가 앞서 메트포르민과 관련, 라니티딘·니자티딘과 다른 대응을 보이는 이유는 대체제가 없고 환자 수가 많은데다 그만큼 시중에 유통된 제품의 품목 수나 유통액 규모가 많아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의 자체 점검 결과 해외에서 불순물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원료나 완제의약품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전수조사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