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구충제를 먹어야 할까? ‘국민 기생충 박사’로 알려진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에 따르면 국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구충제를 매년 먹을 필요가 없다. 그는 “구충제는 심리적 위안 역할만 하는 것”이라며 “국내 기생충 구충제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회를 많이 먹는 사람은 구충제 복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민물고기, 게 등을 먹어서 걸리는 기생충은 일반 종합구충제로 잡을 수 없어 사실 먹으나 마나다.
국내 장내기생충 감염률이 현저히 낮아져 국민 모두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게 의약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에도 매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이따금 구충제가 주목받는 사건이 생기기도 한다. 2017년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발견된 사실이 알려진 이후 구충제 열풍이 불었다. 당시 일부 약국에선 구충제 매출이 2배 가까이 느는 등 파급력이 대단했다.
2019년 구충제 열풍은 희한하게도 개 구충제에서 촉발됐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9월 미국의 조 티펜스(Joe Tippens)라는 암환자가 유튜브를 통해 펜벤다졸(Fenbendazole)로 말기소세포폐암을 완치했다고 밝히면서부터다. 2016년에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그는 펜벤다졸을 2년 동안 복용한 후 암이 완치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기적의 항암제’라는 이름으로 치료 과정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로 확산되면서 이 치료법을 따라하려는 환자가 폭증했다. 폐암 4기 투병중인 국내 개그맨 김철민이 펜벤다졸로 치료를 시작한다고 밝히면서 국내에서도 연일 화제가 됐다.
인류가 발견한 몇 안되는 ‘완치약’ 구충제 … 선충류·조충류·흡충류 등 박멸
구충제는 기생충에 의한 감염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인류의 질병은 1만3200가지나 되지만 그에 대한 완치제는 고작 30여 개밖에 없다. 그러한 완치제는 대부분 구충제로 국한돼 있다는 게 아직도 의학발전의 길이 험난함을 일러준다.
인체에서 감염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소수다. 선충류·조충류·흡충류 등이다. 선충류(線蟲類, nematodes)는 선, 고리 모양을 가진 선형동물문의 요충, 편충, 회충, 선모충, 구충(鉤蟲, hookworm, 옛 십이지장충), 동양모양선충, 분선충, 사상충 등을 일컫는다. 주로 분변을 만지거나 익히지 않은 채소를 섭취했을 때 감염된다.
조충류(條蟲類, cestodes, tapeworms)는 촌충(寸蟲)이라고도 불리는 기다란 모양의 기생충이다. 익히지 않은 육류 등을 섭취할 때 감염될 수 있다. 유구조충(갈고리촌충), 무구조충(민촌충) 등이 있다. 유구조충의 충란이나 유충(낭미충)을 먹고 감염된 것을 낭미충증(囊尾蟲症, cysticercosis)이라고 한다. 무구조충은 낭미충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흡충류(吸蟲類, Trematoda, flukes)는 흔히 디스토마(Distoma)로도 불린다. 흡충류는 과거에는 2개의 입을 갖는 동물이라는 의미인 라틴어에서 유래해 디스토마란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입이라고 생각된 것이 흡반이기 때문에 현재는 디스토마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흡충이라 칭한다.
간흡충(간디스토마)은 담수어에서 많이 발견되며, 간담관에 기생한다. 심하면 간비대·복수·황달·야맹증·혈변·장출혈 등을 유발한다. 1급 발암물질로 담도암 발생위험을 높인다. 폐흡충(폐디스토마)은 민물게를 통해 많이 감염되며, 폐에 기생해 기침·객담·객혈 등을 일으킨다. 장흡충은 중간숙주인 담수어·다슬기 등에 옮아와 공장 상부에 기생한다. 보통은 증상이 없지만 심하면 복통·설사·두통·신경증 등을 유발한다. 이밖에 혈관벽에 기생하는 주혈흡충 등이 있다.
펜벤다졸은 벤지미다졸 계열, 항암효과 뜬금없는 얘기는 아냐 … 사람 구충제와 사촌간
벤지미다졸(benzimidazole) 계열 약물로는 국내 인체용 구충제로 시판되고 있는 것은 알벤다졸(albendazole), 플루벤다졸(flubendazole)이다. 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 외에 메벤다졸(Mebendazole)·옥시벤다졸(oxybendazole)·다이아벤다졸(thiabendazole)·펜벤다졸 등이 있다. 이 중 알벤다졸은 인체용과 동물용 공통으로 쓰이고 있다.
알벤다졸·플루벤다졸만 국내서 인체용으로 쓰는 것은 장관에서 거의 흡수가 되지 않으므로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메벤다졸도 인체용으로 쓰는데 알벤다졸이 구충(옛 십이지장충) 살충 효과 면에서 메벤다졸보다 훨씬 뛰어나다. 알벤다졸과 플루벤다졸 간 살충 능력은 대등소이하다.
화학구조식을 보면 벤지미다졸 계열 약물은 벤젠핵에 이미다졸이 붙어 있다. 벤지미다졸 핵을 바탕으로 알벤다졸의 -SCH2CH2CH3가 -S-C6H6(벤젠핵)로 바뀐 게 펜벤다졸(벤젠핵이 2개)이다. 펜벤다졸의 황(-S-)이 카르보닐(-CO-)로 치환된 게 메벤다졸, 메벤다졸에 불소(F)가 추가된 것이 플루벤다졸이다.
벤지미다졸 계열 구충제는 세포 골격을 유지하는 미세소관(microtuble)에 작용해 기생충을 사멸한다. 미세소관은 세포의 구조물질이면서 물질수송의 역할도 겸한다. 이를 이루는 단위체는 공 모양의 단백질(globular protein)로 튜불린(tubulin)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알파튜불린(α-tubulin)과 베타튜불린(β-tubulin)으로 벤지미다졸은 이들 중 주로 알파튜불린의 기능 발현을 억제한다.
벤지미다졸 계열 약은 선충류의 튜블린에 킬레이트제제처럼 결합해서 미세소관의 합성을 억제함으로써 기생충이 죽게 한다. 미세소관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기생충 내로 포도당이 흡수되는 것이 막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에너지 공급이 고갈돼 운동성이 저하되면 성충·알·유충 등이 홍수에 쓰레기가 떠내려가듯 항문으로 배출되게 된다. 그러나 숙주(host)인 사람의 장관에서는 거의 흡수되지 않으므로 인체 혈중 포도당 농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상세포에는 거의 작용하지 않고 기생충 세포에만 작용해 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벤지미다졸은 체내에서 다양한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특성 때문에 구충제뿐만 아니라 궤양치료제·항바이러스제·고혈압치료제·항알레르기제·항암제·소염제 등으로 이미 개발되고 있거나 시판 중이다. 펜벤다졸은 개와 고양이 구충제로 구충 범위가 넓고 개와 고양이에게 가장 안전해 임신한 반려동물도 복용할 수 있어 널리 쓰인다. 펜벤다졸을 비롯한 구충제가 항암 활성을 보이는 것은 굉장히 새롭거나 아주 뚱딴지 같은 얘기는 아니다. 펜벤다졸은 이미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어 해외직구까지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다. 인체용 구충제인 알벤다졸과 메벤다졸까지 혹시나 비슷한 항암 효과를 내진 않을지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메벤다졸은 국내에서 동물의약품만 허가받았지만 외국에서는 인체용으로도 따로 허가받아 동물·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항암효과 논란의 중심에 있는 펜벤다졸과 화학구조가 비슷하고 인체용 구충제 허가를 받은 성분이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영국·이집트·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는 메벤다졸에 대한 항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
다.
알벤다졸 vs 플루벤다졸 vs 메벤다졸
벤지미다졸 제형으로는 정제와 현탁액이 있으며 일반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다. 기생충의 종류에 따라 음식을 매개로 전파될 수 있고, 신체 접촉은 물론 침구·수건 등 일상용품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에도 감염될 수 있다. 따라서 기생충 감염이 걱정된다면 온가족이 함께 복용하는 게 권장된다.
알벤다졸은 거의 모든 선충류의 유충과 성충 감염을 박멸할 때 사용된다. 성인 및 24개월 이상 소아에게 사용할 수 있으며 정제를 삼키기 어려울 경우 씹어서 복용해도 된다. 회충증인 경우 400mg 1정 복용으로 충분하다. 소아도 2세 이상이면 1정을 복용한다.
요충증에는 3주 간격 1회 1정씩 3회 반복 복용해야 한다. 만 2세 이상~6세 이하 어린이는 용량을 2분의 1로 줄여서 투약한다.
유한양행 ‘젠텔정’, 보령제약 ‘보령알벤다졸정’, 대웅제약 ‘대웅알벤다졸정400mg’ 등이 있다. 매우 흔하게 두통, 간효소 수치 상승을 유발할 수 있고, 흔하게 어지러움·원형탈모·복통·오심·구토·발열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상호작용하는 약물에 주의가 필요하다. 알벤다졸은 일부 위장약, 프라지콴텔(praziquantel) 성분 구충제, 부신피질호르몬제 등과 병용 시 약물 효과가 증가되거나 부작용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항경련제 등은 알벤다졸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플루벤다졸은 회충, 요충, 편충, 구충(십이지장충)의 감염 치료에 사용된다. 종근당 ‘젤콤정·현탁액’이 대표적이다. 알벤다졸이 생후 24개월이 지나야 먹을 수 있는 반면 플루벤다졸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2개월이 지나 복용 가능한 성분으로 명시해 더 선호된다. 기생충의 성충뿐만 아니라 유충까지 살충한다. 드물게 발진·두드러기·혈관부종과 같은 과민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기생충이 배출될 때 일과성 구역·복통·설사가 드물게 나타날 수 있다.
메벤다졸도 기생충의 포도당 섭취를 억제하고 글리코겐 결핍을 유도해 기생충을 사멸시킨다. 회충증·구충증·편충증·동양모양선충증·요충증·분선충증·장모세선충증(intestinal capillariasis) 등 광범위한 장내 선충류 감염에 사용하며 유충기에도 다소 효과가 있다. 다만 편충증에 대한 효과는 미약한 편이다.
경구투여량의 일부만 흡수되며 24~48시간 내에 10%는 소변으로 배출되고, 복용 후 3~4일 후에 충체가 대변으로 배출된다. 부작용은 거의 없으나 일시적인 위장관 증상과 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
흡충류·조충류 감염증에 사용되는 ‘프라지콴텔’
주혈흡충·간흡층·폐흡충 등 흡충류와 유구조충·무구조충 등 조충류의 감염 치료에는 프라지콴텔(praziquantel)이 사용된다. 기생충 세포막에서 칼슘 이온 투과성을 증가시켜 기생충 조직을 수축시키고 마비를 일으켜 살충효과를 나타낸다. 전문의약품으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며 신풍제약 ‘디스토시드정’ 등이 있다. 비급여라 정당 1만원 안팎으로 비싸지만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안심이다.
간흡충증에서는 1일 3회, 25mg/kg으로 1일간 복용한다. 폐흡충증에서는 같은 양을 1일 3회 2일간 복용한다. 아프리카주혈흡충엔 1회 체중 kg당 40mg을 단회 투여 또는 20mg씩 나누어 2회 투여한다. 무구조충·유구조충‥남아메리카어류조충 등엔 체중 kg당 10mg을 단회 투여한다. 왜소조충엔 체중 kg당 15mg을 단회 투여한다. 이밖에 적응증은 없으나 모든 장흡충증에는 10mg/kg으로 1회 복용한다. 낭미충증에는 1일 3회 25mg/kg으로 7일간 복용한다.
참고로 유구조충은 주로 덜 익은 돼지고기로부터 감염된다. 유구조충 알은 이를 섭취한 돼지의 근육·간·장막에서 낭충으로 자란다. 낭충이 신체 각 부위에 기생해 인체유구낭미충증을 일으킨다. 심할 경우 반신불수·경련·실명·간질 등이 나타나고 생명을 잃기도 한다.
무구조충은 덜 익은 소고기를 통해 전파된다. 무구조충 알은 이를 먹은 소의 장내에서 유충으로 자란 뒤 근육 안으로 들어가 낭총이 된다. 충체가 커서 소화기 막힘(장폐쇄)을 일으키거나 구토·설사·복통·체중감소·충수돌기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프라지콴텔은 일부 항진균제·항암제·항생제·자몽주스 등과 상호작용하므로 함께 복용하지 않는다. 신기능장애, 중등도 이상의 간기능장애 환자, 디지털리스(digitalis)를 복용하는 심부전 환자, 부정맥 환자에서 신중한 투여가 요구된다.
프라지콴텔은 맛이 쓰기 때문에 정제를 씹지 않고 빨리 물과 함께 식후에 복용하는 게 좋다. 환자 체중에 따라 투여량이 달라지는데 분할선에 따라 정확하게 잘라 복용하면 된다. 하루에 여러 번 복용하는 경우 투약 간격이 4~6시간이 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