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F억제제인 로슈의 ‘젤보라프정’(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노바티스의 ‘라핀나캡슐’, 화이자의 ‘브라프토비’ 등과 이와 병용하는 MEK억제제인 노바티스의 ‘매큐셀정’ 등은 악성 흑색종 표적치료제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표적항암제 중 EGFR(폐암), BRCA(유방암·난소암), RAS(대장암), Bcr-Abl(만성골수성백혈병) 등을 겨냥한 신약은 빛을 봤지만 BRAF를 타깃으로 한 것은 2011년에 처음 등장했으며 악성 흑색종에 주효해 주목받고 있다.
BRAF 마커는 proto-oncogene B-Raf, murine sarcoma viral oncogene homolog, serine/threonine-protein kinase B-Raf로도 불린다. RAF(Rapidly Accelerated Fibrosarcoma)군에 속하는 유전자군으로서 BRAF는 ARAF, CRAF와 함께 3개의 아형을 이룬다.
RAF는 세포 내 신호전달을 매개하는 미토겐 활성화 단백질 키나제(mitogen-activated protein kinase, MAPK, MAP kinase) 중 하나로 신호전달 캐스케이드(RAS-RAF-MEK-ERK)에 관여해 세포성장을 돕는다. 변이된 RAF는 종양 형성에 관여하는데 BRAF 변이가 가장 다양한 암종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RAF 변이의 80%는 흑색종을 유발한다. 3% 안팎이 폐암, 5% 가량이 대장암을 일으킨다.
BRAF 유전자의 90%에서 V600E 변이가 일어난다. V600E 변이는 BRAF 유전자의 600번째 아미노산에서 발린(valine,V)이 글루타민산(glutamic acid, E)로 대체되면서 암으로 발전한다. BRAF-V600E 또는 BRAF(V600E)로도 표기한다. 단백질분해효소복합체(proteasome) 억제제가 잘 듣는지 알아보는 민감도 판정에 BRAF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결과가 지표로 활용된다.
체세포에서 발견된 BRAF V600E는 흑색종, 유두갑상선암, 대장암, 난소암, 비소세포폐암 등 다양한 암으로 발전하며, 생식세포에서 일어나면 심장얼굴피부증후군(cardiofaciocutaneous syndrome) 등 선천적 결손증을 일으킨다.
BRAF억제제는 V600E 돌연변이가 일어난 BRAF-MEK-ERK 경로에서 BRAF-MEK 단계를 차단해 세포자살을 유도한다. 특히 BRAF 변이 환자의 50%이상 겪는 악성 흑색종을 탁월하게 억제한다.
대표적인 BRAF억제제로는 로슈의 ‘젤보라프정’(Zelboraf 성분명 베뮤라페닙, Vemurafenib), 노바티스의 ‘라핀나캡슐’(Rafinlar 또는 Tafinlar, 성분명 다브라페닙, dabrafenib), 화이자의 ‘브라프토비’(Braftovi 성분명 엔코라페닙, encorafenib, 국내 미시판) 등이 있다. 전이성 흑색종 최초의 표적치료제 ‘젤보라프정’
전이성 흑색종 대상 최초의 표적치료제로 ATP 경쟁적 소분자 억제제다. 201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치료에 적합한 환자를 판별하기 위해 개발한 BRAF-V600E 진단검사도 동반진단(Companion Diagnostics, CDx) 검사로 동시에 승인받아 주목을 끌었다. 2017년엔 BRAF V600E 유전자 변이 희귀혈액암인 에드하임-체스터병(Erdheim-Chester Disease, ECD)에 대한 적응증을 추가로 획득했다. 에드하임-체스터병은 백혈구의 일종인 조직구가 과다하게 생성돼 종양이 심장, 폐, 뇌 등 체내 각종 기관 및 조직에 침투하는 희귀질환이다. 1회당 240mg 4정씩 1일 2회 총 1920mg을 경구복용한다.
이후 여러 제약사에서 신약개발이 이뤄졌으나 6~7개월 내 BRAF억제제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이 시점부터 병용요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현재 가장 일반적인 흑색종 치료법은 BRAF억제제와 MEK억제제 병용요법으로 기존 약물보다 더 오랜 기간 종양을 축소시키며 부작용도 덜하다. MEK 유전자는 BRAF 유전자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MEK을 차단하는 약물은 BRAF 유전자 변이 흑색종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MEK억제제로는 노바티스의 ‘매큐셀정’(Meqsel 또는 Mekinist, 성분명 트라메티닙, trametinib)과 엑셀리시스 및 로슈의 ‘코텔릭’(Cotellic 성분명 코비메티닙, cobimetinib, 국내 미시판), 화이자의 ‘멕토비’(Mektovi, 성분명 비니메티닙, binimetinib, 국내 미시판) 등이 있다.
노바티스 BRAF억제제 ‘라핀나캡슐’+ MEK억제제 ‘매큐셀정’
다브라페닙은 2013년 전이성 흑색종 단일요법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내성으로 인한 BRAF억제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14년 FDA로부터 다브라페닙과 MEK저해제 트라메티닙의 병용요법을 승인받았다.
이는 병용요법이 BRAF억제제 단일요법보다 과각화증(hyperkeratosis), 편평세포피부암(squamous cell skin cancer) 등의 부작용을 감소시킬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가능했다. 2018년에는 이 병용요법이 암 재발 위험을 감소시켜 BRAF V600E 흑색종 3기 환자 대상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추가 승인을 받았다.
로슈 BRAF억제제 ‘젤보라프정’+ MEK억제제 ‘코비메티닙’
이밖에 로슈의 BRAF억제제 베뮤라페닙+MEK억제제 코비메티닙, 화이자의 BRAF억제제 엔코라페닙+MEK억제제 비니메티닙 간 병용요법 등이 있다. 2017년 9월 노바티스의 다브라페닙+트라메티닙 병용요법은 3기 흑색종 환자에서 재발이나 사망 위험을 53%가량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로슈의 베뮤라페닙+코비메티닙 병용요법은 이를 입증하지 못해 사실상 노바티스에 판정패 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지난달 연구결과에서는 베뮤라페닙 단독요법이 5년간 추적 무진행 생존율이 10%로 무진행생존기간을 7.2개월을 연장했고 병용요법은 각각 14%, 12.6개월 연장으로 나타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중이다.
화이자 BRAF억제제 ‘브라프토비’+ MEK억제제 ‘멕토비’
화이자는 올 6월 총 114억달러에 어레이바이오파마를 사들이면서 이 회사가 지난해 6월에 병용요법제로서 FDA 승인을 받은 엔코라페닙, 비니메티닙 파이프라인도 획득했다. 국소진행성 또는 절제불가 전이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48.8개월의 추적기간(중앙값) 동안 병용요법은 33.6개월의 전체생존기간을 보여 엔코라페닙 단독요법의 23.5개월, 베무라페닙 단독요법의 16.9개월을 개선했다고 지난 6월 열린 2019 ASCO 연례회의에 발표했다. 병용요법은 베무라페닙 단독요법보다 사망위험을 39% 감소시켰다. 더욱이 무진행생존기간(중앙값)을 14.9개월로 늘려 엔코라페닙 단독요법 9.6개월, 베무라페닙 단독요법 7.3개월에 비해 시너지 효과를 입증했다.
현재 엔코라페닙+비니메티닙 병용요법은 세툭시맙을 추가한 3제 병용요법으로 BRAF 변이 전이성 직장결장암(mCRC)으로 적응증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9월 열린 ESMO에서 3제 병용요법은 전체생존율과 객관적반응률에서 상당히 개선된 결과를 보여준 것으로 소개됐다.
BRAF억제제의 일반적인 부작용으로는 발진, 가려움증, 햇빛민감성, 두통, 피로, 탈모, 메스꺼움 등이 있다. 흔하지 않지만 심각한 부작용엔 심박장애, 간질환, 신장기능 상실,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출혈, 혈당 증가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일부 환자들은 편평세포피부암을 겪기도 하지만 흑색종에 비해 덜 심각하며 제거하면 치료할 수 있다. 피부에 암으로 의심되는 비정상적인 부위가 발견되면 즉시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BRAF와 티로신키나제(Tyrosine kinase)를 동시에 표적하는 치료제도 있다. BRAF가 속한 세린/트레오닌 키나제(serine/threonine kinase)의 Ras-Raf-MEK-ERK 경로와 VEGFR-2, VEGFR-3, PDGFR-β, Flt3, c-KIT, p38-α 등 티로신키나제 수용체는 암세포에서 증식과 생존에 관여한다. 내피세포 또는 혈관 주위 세포에서 세포자살, 신생혈관형성을 유도해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일으킨다.
TK·신생혈관생성·CRAF 억제제인 바이엘 ‘넥사바정’
바이엘의 ‘넥사바정’(Nexavar 성분명 소라페닙, sorafenib)은 대표적인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이자, 세린/트레오닌 키나제 억제제로 두 인산화효소의 활성을 차단한다. 다양한 키나제 경로에 작용하는 소라페닙은 RAF 중 세린/트레오닌 키나제 BRAF보다는 세린/트레오닌 키나제 CRAF를 더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이같은 기전에 따라 다중표적항암제는 소라페닙은 종양세포뿐 아니라 영양을 공급하는 주변 혈관세포까지 동시에 선택적으로 공격한다. 정상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암의 원인을 효과적으로 억제해 치료 효과는 높이면서 부작용은 최소화했다. 기존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던 암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첫 경구용 진행성 신장 세포암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이후 2007년 절제가 불가능한 간세포암 및 간암치료제로 추가 승인을 받아 간세포암 표적치료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2013년엔 방사성 요오드에 불응한 국소 재발성 또는 전이성 진행성 분화 갑상선암 치료제로 추가 승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