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전에 비하면 요즘 속쓰리다는 사람은 꽤 줄었다. 육류 섭취가 부족한 등 영양결핍된 사람이 많았고, 산업화 시대의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부딪히던 시대에는 쏟아지는 위산을 방어할 장벽이 약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뿐 취업 등 경쟁스트레스, 타인과의 관계에서 맘을 다치기 쉬운 체질, 야근이나 불규칙한 식사, 약물 오남용 등은 여전히 소화기에 염증이나 궤양을 일으켜 속을 불편하게 한다.
지난 9월엔 라니티딘(ranitidine), 니자티딘(nizatidine)이 함유된 위산분비억제제에 발암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미량 검출된 것으로 밝혀져 생산과 유통이 중지되는 등 파장이 일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
소화성궤양은 위나 십이지장 점막이 손상돼 염증이나 궤양이 생긴 것을 말한다. 궤양은 괴사된 점막의 결손이 점막층을 넘어서 점막근육 등 점막하층 또는 그 아래까지 발생한 것이다. 미란(붉어지고 약하게 손상됨)은 결손 부분이 점막층 상피 표면에 국한된다. 일반적으로 소화성궤양은 궤양이나 미란을 전부 포함한 개념이다.
정상적인 위는 궤양을 일으키는 공격인자와 위를 보호하는 방어인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여러 원인으로 균형이 깨지면서 공격인자가 강해지거나 방어인자가 약해지면 궤양이 발생된다.
소화기 점막을 손상시키는 내인성 공격 인자는 위산, 펩신(pepsin), 담즙(bile acids), 췌장의 소화효소(pancreatic enzymes) 등이다. 외인성 공격인자로는 아스피린(aspirin)·비스테로이드성소염제(NSAIDs)·비스포스포네이트(bisphosphonate·골다공증약) 등 약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세균(Helicobacter pylori), 알코올 등이 있다. 암 치료를 위한 방사선요법(radiation therapy)도 궤양을 유발할 수 있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소화성궤양 유병률은 증가한다. 호흡기질환, 간·신 질환, 관상동맥질환 등을 앓는 다양한 만성질환 환자도 소화성궤양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이들 중 헬리코박터와 비스테로이드성소염제가 소화성궤양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방어 인자로는 위벽을 보호하는 점막, 위벽 혈액순환, 중탄산염 등이 있다. 중탄산염은 약한 염기성의 위 점액 성분으로 위산을 중화시켜 위산에 의한 위벽 손상을 막는다.
소화성궤양 치료제는 위산 등 위점막을 공격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약물(공격인자 억제제)과 위점막을 방어하는 약물(방어인자 증강제)로 구분된다. 공격인자 억제제는 위산을 중화시키거나 위산의 분비를 억제하고, 방어인자 증강제는 위점막을 보호하거나 위점막의 혈액순환을 증가시킨다. 방어인자 증강제에 속하는 최신 약물을 중심으로 소화성궤양 치료법을 알아본다.
위 점액은 두께가 약 1㎜로 강산성(pH 1.5~3.8)인 위액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하고 위액이 위 자체를 소화시키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점액의 합성과 분비를 촉진하는 약물을 복용하면 궤양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과 레바미피드(rebamipide)는 위 점막에서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을 증가시켜 위 점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미소프로스톨은 합성 프로스타글란딘E1(prostaglandin E1) 유도체로 위 점막에서 점액과 중탄산이온의 생산을 자극해 위 점막보호 작용과 산에 의해 손상된 점막을 치유하는 작용을 한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위 점막에서 생성돼 산분비를 억제하고 점액분비를 촉진하며 위점막 혈류를 증가시키고 조직 재생을 돕는 역할을 하는 생체물질이다.
이 약물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를 자주 복용해 위장에 궤양이나 천공이 생겼을 때 많이 쓴다. NSAIDs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을 생산하는 사이클로옥시나제(Cyclooxygenase, COX) 효소를 무차별적으로 차단한다. 이렇게 되면 통증, 열, 염증을 유발하는 COX-2 효소를 억제해 발열·통증·염증 물질이 줄고 단시간에 진통·해열·소염 효과가 단시간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때 COX-1 효소까지 무차별적으로 억제하게 되면 프로스타글란딘 생성이 줄어 위장점막 보호 효과가 무너지고 속이 쓰리게 된다. 따라서 NSAIDs를 장기간 복용하면 염증과 통증이 줄어드는 대신 위점막보호 역할을 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방어력까지 손상되므로 위·십이지장의 염증·궤양 등이 초래되기 쉽다.
NSAIDs 장기 복용으로 인한 소화성궤양은 대부분 시메티딘·라니티딘·파모티딘·니자티딘·록사티딘 등 히스타민2수용체길항제(histamine2 receptor antagonists, H2RA)를 표준용량으로 쓰면 대부분 치유된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나 치료기간을 줄이고 싶으면 오메프라졸·판토프라졸·란소프라졸·라베프라졸·에스오메프라졸 등 프로톤펌프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 PPI)를 쓰는 게 권장된다. NSAIDs 복용으로 인한 소화성궤양은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에 감염돼 있는 경우가 절반을 넘으므로 이 균을 제거하는 요법이 선행돼야 한다.
미소프로스톨 제품으로 한국화이자제약의 ‘싸이토텍정’이 대표적이다. 위·십이지장궤양의 치료에는 1회 200㎍을 1일 4회 4~8주간 식사 및 취침 시 복용한다. NSAIDs로 인한 위·십이지장궤양의 예방에는 400~800㎍을 식사 시 및 취침 전에 분할 투여한다.
미소프로스톨은 산부인과에서 질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용량에 따라 자궁 경부를 부드럽게 이완시키거나 자궁을 수축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유산을 포함한 초기 임신 실패의 의학적 관리나 자궁경부 숙화(cervicla ripening: 출산에 대비해 자궁 경부가 부드러워지고 팽창하는 과정), 유도 분만, 분만 후 출혈치료 등을 위해서도 사용된다. 임신하지 않은 여성에서도 자궁경 시술 전에 미소프로스톨을 투여해 자궁경부 열상, 자궁 천공, 기계적 확장으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한다.
대표적인 이상반응은 설사와 복통이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이 약은 음식과 함께 투여하며 마그네슘 함유 제산제와 병용을 피한다. 다른 부작용으로 때때로 백혈구 증가·적혈구 감소·반점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각한 이상반응으로는 드물지만 부정맥·흉통·빈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임산부도 주의가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월 임신 첫 3분기에 미소프로스톨에 노출되면 기형 위험이 3배 가량 증가할 수 있고, 이 약물에 노출된 태아는 뫼비우스증후군, 선천성안면마비, 양막띠증후군 위험이 높아지고 중추신경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레바미피드는 퀴놀론(quinolinone)계 아미노산 유도체로 프로스타글란딘 E2 생산을 자극한다. 위점막에 직접 작용해 혈관 수축을 억제시킴으로써 위점막 혈류량을 증가시킨다. 혈류량이 늘어남에 따라 위 점액량이 증가하고 위점막 세포 성장이 촉진되면서 점막 방어력이 높아진다. 유해활성산소를 제거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세균에 의해 생성되는 산화성 스트레스와 염증유발물질인 사이토카인(cytokine) 농도를 감소시키는 역할도 한다. 헬리코박터균이 위벽에 들러붙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에 박멸요법에도 유효하다.
위궤양과 위점막 병변(미란, 출혈, 발적, 부종 등)의 개선에 도움을 주며 성인 기준 1회 100mg을 1일 3회 복용하면 된다. 다만 위궤양의 경우에는 아침, 저녁 및 취침 전에 투여한다. 한국오츠카제약의 ‘무코스타정’이 오리지널로 시중에 다양한 복제약이 판매되고 있다.
레바미피드는 이상반응으로 변비·구갈·유방통·혀마비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각한 이상반응으로는 드물지만 백혈구 감소·혈소판 감소·간기능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임신 중 투여 안전성은 확립돼있지 않으므로 임신 중이거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치료 상의 유익성이 위험성을 상회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투여한다.
테프레논(teprenone)도 레바미피드처럼 점액 합성 및 분비촉진 작용을 한다. 테프레논은 인지질 및 고분자 당단백질의 합성을 촉진하며 위점막의 점액 밀도를 높여 궤양을 치료한다. 부광약품 ‘셀벡스캡슐’이 있다.
점막 피복제는 손상된 궤양 부위에 부착되어 보호막을 형성하여 위산으로부터 궤양 부위를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JW중외제약 ‘아루사루민정’(성분명 수크랄페이트, Sucralfate), 녹십자 ‘데놀정’(비스무트시트르산염칼륨, potassium bismuth citrate)이 있다. 이들 약은 궤양 부위에 결합해 물리·화학적 보호막을 형성하고 치유를 촉진한다. 비스무트제제는 특히 헬리코박터에 항균작용이 있어 헬리코박터 감염이 있는 소화성 궤양에 효과적이다.
보호막 형성을 위해 식사 전에 복용하는 것이 권장되며 단기간 사용 시 큰 부작용은 없지만 1일 3~4회 복용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아루사루민정은 1회 1g씩 1일 3회 식전 1시간에 복용한다. 역류성식도염에는 1회 1g 1일 4회 식전 1시간 및 취침 시에 투여한다. 데놀정은 1회 600mg 1일 2회 아침, 저녁 식전 30분에 경구투여한다. 또는 1회 300mg을 1일 4회 식전 30분 및 저녁식후 2시간에 투여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이르소글라딘말레산염(Irsogladine maleate)과 폴라프레징크(Polaprezinc)는 위점막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촉진하고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점막보호제다. 이르소글라딘말레산염은 점막 세포 항상성을 유지하고 혈류량을 증가시켜 위 점막을 보호한다. 활성산소를 억제하며 항염증 효과도 나타낸다. 태준제약 ‘가스론엔정’이 대표적이다.
폴라프레징크 성분은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며 궤양치유를 촉진한다. 폴라프레징크는 아연(Zinc)과 엘카르노신(L-carnosine)의 착화합물로 아연은 궤양 치유, 엘카르노신은 항산화 및 pH 완충 작용을 한다. 에스케이케미칼이 일본 제약사로부터 제제 기술을 도입해 ‘프로맥정’을 생산하고 있다. 생물학적동등성을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제화가 어려워 마땅한 제네릭이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