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Fenbendazole)’의 항암효과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절대 임의로 복용하지말 것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한 달 여전부터 일선 동물병원, 동물의약품 판매약국 등에선 품귀현상을 겪고 있으며 효과성에 대해서도 의약계 의견이 분분하다.
펜벤다졸은 선충, 흡충, 조충 등 장내 기생충을 죽이는 벤지미다졸(Benzimidazole) 계열 구충제로 세포골격을 유지하는 미세소관(micro tuble)에 결합해 세포 분열을 저해하고 성장을 억제해 기생충 사멸을 유도한다.
이 치료제에 대한 논란은 지난 9월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사는 조 티펜스(Joe Tippens)란 노인이 소세포폐암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자신의 항암치료 과정을 유트브와 블로그에 소개하면서 확산됐다. 이 노인은 펜벤다졸 성분 약을 꾸준히 복용한 후 암센터에서 퇴원해도 될 정도로 증상이 호전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기적의 항암제’라는 이름으로 치료 과정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로 확산되면서 이 치료법을 따라하려는 환자가 폭증했다.
기자는 15일 서울 강남구 모 동물병원을 찾아 펜벤다졸 구입이 가능한지 질문했다. 이에 병원장은 “강아지용으로 구입하시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요즘 항암효과에 대한 내용이 퍼지면서 싹쓸이 해가려는 고객이 많아 고심 끝에 구충제를 낱개로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펜벤다졸 열풍으로 정작 동물이 복용할 구충제가 모자란 상황이다.
조 티펜스가 말기암 선고를 받은 것은 2016년 8월로 그는 소세포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목과 오른쪽 폐, 복부, 간, 방광, 콩팥, 꼬리뼈까지 전이된 상태로 의사는 최대 3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내렸다.
그러던 중 그는 한 수의사로부터 동물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수의사는 “뇌암으로 4기 판정을 받은 한 수의사가 동물실험 중 펜벤다졸의 항암효과를 발견했다”면서 “자포자기하며 구충제를 복용했더니 6주 만에 암이 나았다”고 전했다. 조 티펜스는 그 해 1월부터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해 3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본인의 경험담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구독자 중 40명이 동일한 방법으로 약을 복용해 각종 암이 나았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1일 222mg 용량을 주 3회 복용했으며 비타민 E와 CBD오일(칸나비디올·Cannabidiol, 대마 오일)을 함께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벤다졸에 항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유명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자매지 격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관련 논문이 지난해 8월 실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미세소관 불안정제 중재와 다수 세포 경로 조절을 통해 암세포 사망을 일으키는 펜벤다졸의 역할’(Dogra N, Kumar A, Mukhopadhyay T., Fenbendazole acts as a moderate microtubule destabilizing agent and causes cancer cell death by modulating multiple cellular pathways. Sci Rep. 2018 Aug 9;8(1):11926. doi: 10.1038/s41598-018-30158-6)이란 제목의 해당 논문은 펜벤다졸이 암세포를 성장시키는 물질을 차단시켜 암세포의 발현과 증식을 억제해주는 식으로 작용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암세포 분열 자체를 방해해 암세포의 성장도 억제한다고 적었다.
이 연구는 2018년 인도에서 발표된 것으로 펜벤다졸이 미세소관 시스템에 작용해 포도당 과잉공급을 유도하는 미세소관을 막고 포도당 결핍을 유도해 암세포 자살(Apoptosis)을 유도한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 또 기존 항암제는 내성이 생기는 문제가 있었는데 펜벤다졸은 화학구조상 내성이 생기지 않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펜벤다졸이 기존 세포독성항암제와 달리 부작용 가능성도 낮아 잠재적 항암제로 연구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들이 국내 환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지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했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개그맨 김철민씨는 지난 9월 “저한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모험을 한 번 해볼까한다”며 펜벤다졸 복용 소식을 알려 화제가 됐다. 김씨가 복용을 시작한 지 6주 차에 접어들어 경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튜버 ‘안핑거’는 대장암 4기로 투병하며 지난 9월 말부터 3개월을 목표로 치료과정을 중계해왔으나 지난 13일 사망했다. 그의 딸은 “원인은 암이 아니라 뇌경색에 따른 음식물 섭취 장애로 음식물이 폐로 들어가 호흡부진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다수의 유튜버가 펜벤다졸을 복용해 당뇨병에 효과를 봤다면서 영상을 올리면서 각종 질병치료에 대한 만병통치약인 듯 맹신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들은 “펜벤다졸 복용 후 혈당관리가 가능해진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의학적 근거가 증명되지 않았지만 조회수는 수만회를 넘어섰다. 펜벤다졸을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사이트와 복용법을 알려주는 영상도 조회수가 3만건으로 높다.
여기에 다른 약제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재차 확산되고 있다. 펜벤다졸과 유사한 알벤다졸, 옥시벤다졸, 메벤다졸, 파벤다졸 등 벤지미다졸 계열 약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미 시중에서 동이 난 펜벤다졸을 대체하고 있다. 가장 흔하게 복용하는 구충제인 알벤다졸이 느닷없이 호황을 맞았다. 포털 검색창에 ‘알벤다졸’이라고 치면 펜벤다졸 대신 복용해도 괜찮은지 문의하는 글이 쏟아진다.
항암제로 시작해 당뇨병 치료까지 이어지는 펜벤다졸 광풍은 급기야 유사한 구조의 약제까지 대중의 관심이 이어지는 기현상을 낳았다. 치료효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섞여있다.
한 환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 환자 보호자는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펜벤다졸을 복용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다”며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컸는데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치기 싫어서 그러신 것 같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정보의 확산으로 환자가 적절한 치료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동근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기획팀장은 “벤다졸 계열의 구충제에 대한 유효성이 밝혀지면 항암제로 쓰일 가능성도 있지만 효과를 증명하는데 필수적인 생존율 데이터 확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성급하게 치료법을 바꾸는 것은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식품의약안전처는 지난달 28일 대한암학회와 함께 “펜벤다졸을 암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항암제는 개발과정에서 일부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더라도 최종 임상시험 결과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으므로 일부에서 효과가 나타난 것을 두고 약효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은 세포를 이용한 시험관내(in vitro) 전임상시험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암 관련 임상결과는 보고된 적이 없다. 오히려 간 종양을 악화시킨다는 동물실험 결과와 고용량·장기간 복용하면 혈액, 신경, 간 등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연구자료가 나와 있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펜벤다졸이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와 유사한 약물기전을 가졌다면 그와 유사한 부작용이 나타나야 하는데 정상세포에 대한 부작용이 별로 없다는 것은 항암 효과가 떨어진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다른 병원 내분비내과 전문의는 “1형 당뇨병을 대상으로 시도된 연구가 있었지만 실패한 임상”이라며 “질병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없이 온라인에 떠도는 의견을 맹신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의 조언에도 생사의 기로에 선 말기 암 환자의 복용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환자는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시도하는 것”이라며 “어차피 기존 항암약이 효과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토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펜벤다졸 암 치료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임상실험을 정부차원에서 진행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정부가 펜벤다졸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해 항암제로서 효과를 입증하고 저렴하게 치료받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청원인은 “비정한 자본 논리에 강아지 구충제인 펜벤다졸은 누구도 임상시험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이유는 암 치료제로 특허를 내거나 독점할 수 없는 일반약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근거가 없어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아 펜벤다졸 복용을 권장할 수 없다”며 ”임상시험이 진행되면 효능과 안전성 여부를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복용을 고려하는 환자는 반드시 담당 주치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쩔 수 없이 펜벤다졸 복용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근거가 부족한 내용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고 맹신하는 풍조가 만연하면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부작용으로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전문의 판단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