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료기기 업계의 3D 유방촬영기 마케팅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백만달러를 들여 의사, 환자, 정가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아직도 3D 유방촬영의 효율성과 비용-효과에 대한 우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다수 업체의 공격적 마케팅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워타 맥카스킬 스티븐스(Worta McCaskill-Stevens) 미국립암연구소(NCI) 박사는 작년에 단순 유방암 검사를 받기 위해 유방촬영술(mammogram)을 예약했다. 병원의 접수 담당자는 새로운 디지털 3차원 유방촬영기(Digital breast tomosynthesis, DBT or 3D mammography)의 장점을 홍보하며 무료로 업그레이드해주겠다고 권유했으나 박사는 이를 거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테크니션이 정말 3D 유방촬영을 하지 않겠느냐고 의아한 듯 물어왔다.
제조업계의 판매방식인 ‘업셀링’(upselling)이 유방촬영을 받으려는 환자에게도 이뤄지고 있다. 단순 유방촬영을 희망하던 사람에게 3D 유방촬영을 적극 권유해 홍보하고 잠재고객으로 포섭하는 방식이다. 업셀링은 손님이 구매하려던 스펙보다 더 나은 스펙을 갖춘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더 높은 가격에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세일즈 기법이다.
비영리 의료뉴스 매체인 카이저헬스뉴스(Kaiser Health News, KHN) 조사결과 제조업체, 병원, 의사, 옹호적인 환자단체 등이 3D유방촬영기 마케팅에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으며 완력을 가시하고 있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지목된 3D 유방촬영 기기 업체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말보로시 소재 홀로직(Hologic)이다.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 The 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는 홀로직이 많은 여성들에게 3D 유방 스크리닝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고 지목했다.
에타 피사노(Etta Pisano)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베스 이스라엘 디코네스 메디컬센터(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 방사선 전문의는 지난 3월 암전문지 더캔서레터(The Cancer Letter) 인터뷰에서 3D가 전통적인 유방촬영기보다 더 효과적인 검사법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사노는 TMIST 연구(Tomosynthesis Mammography Imaging Screening)의 책임자로 2017년부터 다양한 기종의 DBT에서 유방암 검진의 유용성을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 연구는 DBT와 유방X선검사를 비교 분석할 뿐만 아니라, 검진 유방촬영의 유용성을 입증하려는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연구 예상종료일은 2030년이다.
외신은 홀로직을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힘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저거노트(juggernaut)’에 비유했다. 저거노트는 멈출 수 없는 힘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신 크리슈나에서 비롯된 말이다. 물량 공세로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대기업이 흔히 저거노트로 비난받는다.
미국 다트머스대 보건정책·임상실습연구소(Institute for Health Policy and Clinical Practice) 의료·미디어센터 책임자 스티븐 올로신(Steven Woloshin) 박사는 지난 1월 헬스케어산업이 연간 300억달러를 마케팅비로 사용한다는 연구결과를 KHN에 발표하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많은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HN 조사에 따르면 의료기기 업계의 마케팅 투자는 3D 유방촬영기 관련 정책 영향, 여론 형성, 환자 관리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의사들에게 돈을 지불한다
헬스케어 업체가 의사에게 지불한 금액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국가 프로그램 ‘오픈 페이먼츠’(Open Payments)와 의사들의 진료 및 처방 내역을 담은 ‘메디케어(Medicare)’데이터베이스를 살펴본 결과 지난 6년간 홀로직, GE헬스케어, 지멘스, 후지필름 등 3D 장비 제조업체들은 3D 유방촬영기 관련 지원금 920만달러를 포함, 총 2억4000만달러 이상을 의사와 병원에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의 절반 이상이 연구비와 컨설팅, 여행, 식사, 술값 등으로 나갔다. 또 이 분석자료는 인용지수가 높은 영향력 있는 상당수 학술논문들이 3D 유방촬영 의료기기 업체와 재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들에 의해 쓰여졌음을 보여준다.
SNS·대중광고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마케팅
의료기기 업체들은 유방암 생존자 셰릴 크로우(Sheryl Crow·배우 겸 싱어송 라이터)와 같은 유명 여성 홍보대사를 활용해 여성들이 더 나은 유방촬영검사를 받도록 설득했다. 광고산업을 추적하는 칸타미디어(Kantar Media)에 따르면 업체들은 소셜미디어에 대한 지출을 제외하고도 지난 4년간 1400만달러를 들여 3D 유방검사 광고에 투자했다.
주 의원들에게 정치적 로비도 다반사
16개 주 민간보험사들은 현재 36개 주와 워싱턴 D.C.의 국민의료 보장제도 프로그램(medicatid program)를 통해 3D 검사를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홀로직의 관계자들은 보험 가입 여성의 약 95%가 3D 유방촬영기에 대한 보험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지지자들에게 자금 지원
홀로직은 최근 미국유방외과학회(American Society of Breast Surgeons, ASBS)에 교육 보조금을 전달했다. 홀로직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학회는 선호할 만한 유방암 검사로 3D 유방촬영 검사를 권유했다. 홀로직은 보조금의 액수를 밝히지 않았다. 홀로직은 3D 유방촬영 확산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흑인여성건강운동(Black Women’s Health Imperative) 등 옹호적 환자단체에도 기금을 지원했다.
병원과 방사선과 의사들이 최신 장비를 도입 경쟁을 벌이고 3D 유방촬영에 대한 과열된 관심이 소비자에게 열병을 앓게 하고 있다. 시골 병원이 3D 장비를 살 여유가 없는 경우엔 재단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기금 모으기에 나서는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다. 유방촬영장비의 63% 이상은 2011년 이후 등장한 3D 유방촬영기기가 차지하고 있다.
의료계와 제조업체들은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홀로직 관계자들은 “더 많은 유방암을 검출하는 기술을 보류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미국 국립암연구소저널(Journal of National Cancer Institute)은“ 3D 검사가 미국 여성 1000명당 유방 종양 1개 정도를 더 발견해 암 검진율을 경미하게 높인다”고 보고했다. 반면 오티스 브롤리(Otis Brawley)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제품이 사람들에게 도움된다는 것이 입증되기도 전에 압박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며 “새로운 기술이 반드시 더 나은 것은 아니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은 세계 인구 중 두 번째로 가장 흔한 암이며 5번째로 높은 암 사망 원인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NCI)는 지난 2월 미국암학회지(American Cancer Society)에 실린 ‘2019 실상과 수치’(Cancer Facts and Figures 2019)를 참고해 27만여 건의 새로운 사례가 보고된 유방암이 올해 가장 흔한 암이라고 홈페이지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