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가 바이오 기업에 투자를 확대하며 파이프라인 확대에 나서고 있다. 신약개발에 따른 부담을 줄이면서도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투자 방식은 지분을 확보하는 재무적 투자 이외에도 조인트벤처 설립, 현지법인 인수 또는 설립 등 다양하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국내 제약사의 2019년도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부광약품, 대웅제약, 한독, 유한양행, 일동제약, 녹십자 등 주요 기업이 바이오기업 투자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부광약품은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디지털 덴탈 콘텐츠 O2O(Online to Offline) 기업인 메디파트너에 투자하기 위해 덴탈플랫폼출자조합제1호에 20억원을 투자했다. 2000년 안트로젠에 15억원을 출자한 뒤 총 48억원을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엔 1억4000만원에 사들인 LSK바이오파트너스 주식 10만주를 41억원에 팔아 높은 수익률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부광 측은 기술투자 수익을 신약개발 등에 재투자하고 주주 친화적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7월엔 OCI와 공동벤처인 비앤오바이오를 설립하고 올해 6월 이스라엘 유망 바이오 벤처기업인 뉴클레익스(Nucleix)에 100만달러(약 11억원)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웅제약은 지난 5월 미국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 임플라케이트(Immplacate)에 100만달러(약 11억원)를 투자해 지분 20%를 확보했다. 전승호 대웅제약 대표가 이 회사 이사진으로 합류해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임플라케이트는 중간엽줄기세포의 면역억제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웅 측은 이번 투자로 기존 개발 중인 줄기세포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한독은 지난 1월 제넥신과 대사성 희귀질환치료제를 개발하는 미국 레졸루트(Rezolute)에 각각 140억원씩 투자해 최대주주가 됐다. 레졸루트는 2010년 설립된 바이오의약품 개발회사로 대사성 희귀질환 분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한독과 제넥신이 공동개발 중인 지속형 성장호르몬(GX-H9)의 글로벌 임상 3상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한독은 지난 3월 이중항체신약을 개발 중인 미국 트리거테라퓨틱스(TRIGR Therapeutics)에도 약 500만달러(약 55억원)을 투자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5월 파라투스에스피사모투자합자회사(파라투스SP PEF)에 투자해 150억원을 이 회사가 공동투자한 면역항암제 개발 조인트벤처 이뮨온시아에 우회투자했다. 이뮨온시아는 유한양행이 3년 전에 약 120억원을 투자해 미국 바이오벤처 소렌토와 함께 설립한 회사로 2021년 미국 주식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파라투스 측은 지난 2월 이뮨온시아에 유한양행 등 다른 투자자와 함께 435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이밖에 유한양행은 지난 7월에 뇌혈관장벽(BBB) 투과 약물전달 플랫폼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아임뉴런바이오사이언스의 시드투자에 60억원,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기업 신테카바이오에 40억원을 투자했다.
일동제약은 화장품과 의약품을 혼합한 코슈메디컬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사는 코슈메디컬 기업인 이니바이오에 4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61%를 확보했다. 2017년 유산균 개발 기술을 화장품에 접목한 ‘퍼스트랩’ 브랜드를 론칭한 경험을 승화시키는 차원이다. 이니바이오는 연구개발 바이오벤처로 화장품과 의약품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7개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며 3개가 코스메슈티컬 제품이다.
대원제약은 지난 8월 코스닥 상장절차를 밟고 있는 티움바이오에 30억원을 투자해 주식 24만주를 사들여 지분 1.15%를 확보했다. 앞서 지난 2월엔 차세대 티움바이오가 자궁내막증 및 자궁근종 신약후보물질 ‘DW-4902’의 라이선스를 대원에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티움바이오는 SK케미칼 연구소장 출신인 김훈택 대표가 창업한 회사로 SK케미칼 연구진 7명이 합류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 글로벌 제약사 키에지와 830억원 규모의 폐섬유증치료제(IPF)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역량을 인정받았다.
GC녹십자홀딩스와 GC녹십자랩셀은 지난 7월 미국에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Artiva Biotherapeutics)를 설립했다. 녹십자홀딩스가 56.67%, 녹십자랩셀이 37.77%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아티바는 녹십자랩셀의 NK(자연살해)세포치료제 수출의 글로벌 기지 역할을 하게 되며 기술이전을 통해 세포치료제 개발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이연제약은 2017년 설립한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 브라만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지난해 1월 ‘브라만투자조합 1호’를 결성하고 중추신경계(CNS)질환치료제 개발기업인 뉴라클사이언스에 지분 취득 방식으로 100억원을 투자했다. 뉴라클사이언스는 관계사 뉴라클제네틱스에 다시 100억원을 투자했다. 이연제약은 총 200억원을 투자해 뉴라클사이언스 10%, 뉴라클제네틱스 26% 지분을 확보했다.
동아에스티는 동양네트웍스의 바이오사업 계열사인 티와이바이오와 조인트벤처인 티와이레드를 설립했다. 40억원을 투자한 동아에스티는 티와이레드와 DPP4-억제제 당뇨병치료제인 에보글립틴(제품명 슈가논)의 적응증을 대동맥심장판막석회화증으로 확장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다.
광동제약은 지난 5월 설립한 금융 자회사 케이디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미래성장동력 발굴에 시동을 걸었다. 향후 성장성 높은 신기술 사업자 등을 선별해 자금조달은 물론 경영 및 기술지도가 포함된 전문 경영서비스도 제공한다.
이같은 제약사의 바이오기업 투자에 대해 일각에선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케이주’ 품목허가 취소를 시작으로 신라젠, 에이치엘비 등 유망 바이오벤처 기업이 잇따라 임상에 실패하며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투자자의 신뢰를 잃었다는 분석이다. 인터넷 주식투자 커뮤니티엔 “잊을 만하면 임상 실패가 계속 터져나와 점점 지친다”, “회사 주가가 하락해도 바이오 기업은 무책임한 대응을 일삼는 주식 사기꾼에 가깝다” 등 투자자들이 피로감을 나타냈다.
위기를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임상 실패 소식에 투자심리가 요동쳤지만 최근 제약바이오주에 몰아친 위기 덕분에 투자자의 산업 이해도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며 “제대로 연구개발이 이뤄지는 기업이 어딘지 옥석가리기가 이미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빅파마 대상 대규모 기술수출이나 글로벌 3상 임상은 가보지 않은 길로 시행착오를 겪는 게 당연하다”며 “향후 임상·판매 성과에 따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