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마시는 맥주인데도 무슨 종류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저 생맥주, 병맥주, 흑맥주 정도만 구분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여년 전만 해도 이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맛의 차별화에 노력하지 않는 밋밋한 국산 맥주에 길들여져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편의점에만 가도 4캔에 1만원하는 맥주가 수십종 진열돼 애주가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다. 맥주를 더 세련되게 마시려면 종류부터 세분해서 알 필요가 있다.
맥주는 기원전(BC) 4000년경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인(지금의 시리아 이라크)이 처음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점토판에 그려져 있다. 이후 이집트에서 정립된 맥주 양조기술이 그리스, 로마를 거쳐 다시 독일, 벨기에, 영국으로 전파됐다. 18세기 말 맥주는 알코올 함량이 낮은 이점에 힘입어 급속히 대중화됐다.
초기의 맥주는 단순히 맥아를 자연 발효시키는 방법이었다. 10세기에 독일에서 홉을 넣어 쓴맛과 방향이 강한 맥주를 개발해 오늘날 세계 표준이 됐다. 그러나 영국인은 홉을 좋아하지 않아 유럽 대륙의 기호에서 고립돼 버렸다. 흔히 독일을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하는데 홉의 첨가를 주도한 덕분이다. 영국은 맥주 대신 증류주인 위스키를 선호하게 됐다. 초기엔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위스키 붐이 서늘한 날씨와 원료 조달을 이유로 중심 축이 스코틀랜드로 북상했다.
맥주는 양조용 대맥(大麥, 겉보리, 두줄보리, 2조보리)에 물을 붓고 발아시켜 말린 다음 잔뿌리를 제거해 쓴맛과 단백질을 최소화하고 갈은 후 당화시켜 맥아즙을 만들고 이를 발효시켜 만든다. 맥아즙은 대맥 고유의 디아스타제 효소에 의해 자가분해돼 나오는 당액(糖液)이다. 식혜를 만드는 것처럼 이중솥에 맥아와 물의 부피를 1대2로 배합해 65도에서 수시간 당화시키는 게 맥아즙이다. 이 때 탄수화물이 달달한 당분으로 변화된다. 여기에 호프를 넣어 끓인 다음 5~10도로 냉장한 다음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다.
홉(hop)은 뽕나무과의 덩쿨식물로 암꽃을 쓴다. 진정효과와 스트레스효과가 있는 약재로 쓴맛과 특유의 향기를 낸다. 소화와 이뇨, 수면을 돕는 작용을 한다. 또 효모의 이상 발효를 억제해 저장성을 높이고 거품을 만들어 향기가 오래도록 남아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호프는 과거에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첨가하는 목적이 컸으나 지금은 위생관리가 엄격하게 이뤄짐에 따라 쓴 향미를 내기 용도로 들어간다. 국내 맥주는 독일 본고장의 맥주에 비해 호프 첨가량이 적어 쓴맛이 덜하다. 미국 맥주의 영향을 받아 쓴맛이 약하다. 독일인들은 호프를 넣지 않아 쓴맛이 없는 미국식 맥주를 비꼬아 ‘단물’이라고 폄하한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밀맥주 브랜드인 ‘호가든’
맥주는 사용하는 보리 원료, 발효시키는 효모의 종류, 수질(물맛), 호프 첨가량 등 4대 주요 요소에 의해 맛이 갈린다. 기타 살균 및 필터링 방법, 발효 방법과 시간의 차이, 첨가물질 등에 의해서도 맛이 차별화된다. 보리 대신 밀과 쌀을 넣기도 하는데 각각 밀맥주, 쌀맥주라고 한다. 밀맥주 브랜드로는 ‘호가든’, ‘파울라너’, ‘에딩거’, ‘크로넨버그 1664블랑’, ‘에델바이스’ 등이 있다. 밀맥주는 밀 맥아 특유의 향기가 난다.
효모는 거침과 부드러움, 거품의 크기 등 맥주의 성격을 좌우한다. 호프는 처음에는 쓰지만 자꾸 입에 넣고 있으면 맥주 특유의 단맛을 느끼게 해주는 특성이 있다. 맥주의 90%는 물이므로 수원이 어디냐가 중요하다.
맥주는 제조공법상 상면발효와 하면발효로 나뉜다. 상면발효는 표면에 떠오르는 특성을 가진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를 이용해 10~25도의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발효시킨다. 맥아 농도가 높고 고온 발효를 하기 때문에 색이 짙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다. 대표적인 게 영국의 에일(ale)과 포터(porter)다. 영국 외에 미국 일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벨기에 등지에서 생산된다.
에일은 보통 맥주보다 호프를 1.5~2배 넣고 후숙기간을 짧게 해 탄산가스 거품이 적고 쓴맛이 강하다. 고온 발효시키기 때문에 호프향과 쓴맛이 강하다. 상면발효 방식의 라거보다 상대적으로 거칠다. .
색이 엷고 맛이 순한 페일 에일(Pale Ale), 이보다 색이 호박색으로 짙고 맛이 온화한 마일드 에일(Mild Ale), 향기와 색이 진하고 부드러운 스카치 에일(Scotch Ale), 홉을 적게 넣어 맥아의 향미가 상대적으로 강한 짙은 갈색의 브라운 에일(Brown Ale), 홉이 많이 첨가되고 알코올 도수도 높은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 등이 있다.
페일(pale)의 의미는 창백하다는 의미다. 그만큼 페일 에일의 색깔은 라거보다 조금 짙고 일반 에일보다 옅으며, 알코올 도수도 다소 낮은 4% 정도다. 색깔이 엷고 도수가 낮으며 청량감을 내는 부원료가 들어간 라이트한 향미의 에일은 섬머용으로, 그 반대 성향의 에일은 윈터용으로 맞춤 생산된다.
에일은 국가별로 영국 스타일의 페일 에일, 벨기에의 람빅 에일(lambic ale, 60% 맥아와 40% 밀로 주조), 독일 에일(German ale), 아일랜드 에일(Irish ale)로 나뉘기도 한다.
에일이 맥아를 살짝 구운 거라면 포터는 더 강한 열로 볶아 캐러멜로 착색한 맥주다. 색깔이 더 검고, 더 달며, 쓴맛이 덜하다. 페일의 도수가 4~5%라면 포터는 5%이상은 돼야 한다.
맥아를 거의 태우다시피해서 발효시킨 스타우트 맥주의 대표 브랜드 ‘기네스’
포터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는 스타우트(Stout) 맥주는 맥아를 거의 태우다시피해서 만든 상면발효 맥주다. 색깔이 매우 검고, 다소 탄 냄새가 나며, 감미롭고 강한 맥아향을 낸다. 약 6개월간 후숙하며 알코올 도수가 6~11도에 이른다. 대표적인 스타우트 맥주인 ‘기네스’는 질소 가스를 넣어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며 최종 발효가 병이나 캔 속에서도 이뤄진다. 에일보다 포터가, 포터보다 스타우트가 비싼 이유는 맥아를 태우면서 그만큼 당화된 당분이 줄고 알코올 생산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흑맥주가 대체로 포터나 스타우트 스타일이다. 라거나 에일에도 흑맥주가 있긴 하지만 이는 단지 색깔이 검어서이다.
진저 에일(ginger ale) 또는 진저 비어는 생강(ginger)에 레몬, 고추, 계피, 정향 등 향료를 섞어 캐러멜로 착색시킨 청량음료 또는 저도 맥주다. 위스키 등 양주와 희석해 먹는 칵테일 원료로도 쓰인다.
발효 중이나 완료 후 술통 바닥에 가라앉는 성격을 가진 효모(Saccharomyces carlsbergensis)를 사용해 10도 이하의 저온에서 서서히 발효시키는 게 하면발효 맥주다. 상면발효에 비해 맛이 깔끔하고 부드러우며 향이 은은하다. 독일,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체코,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전세계 맥주의 70%이상이 하면발효일 정도로 대세다.
라거(lager)와 생맥주(draft 또는 draught beer)가 대표적이다. 흔히 상면발효가 더 걸죽하고 취하기 쉬워 구식으로 알지만 오해이고 그냥 취향에 달린 것이다. 생맥주는 주로 하면발효로 주조하지만 상면발효 맥주도 있다. 효모가 살균되지 않은 상태로, 또는 극히 저온에서 최소한으로 살균된 상태로 유통된다. 라거 맥주는 저온에서 장기간 후숙한 것일수록 품질이 좋다. 쓰지 않고 깔끔하며 가벼운 맥주로 60도에서 30분 정도 살균 처리한 후 병입된다.
체코의 독특한 라거 스타일 맥주 ‘필스너’. 홉을 많이 넣어 씁쓸한 청량감과 강한 향기가 돋보인다.
필스너(Pilsener) 맥주는 체코 필센(Pilsen) 지방에서 비롯된 체코의 대표적인 라거 스타일이다. 향기가 강하며 홉을 많이 넣어 씁쓸한 청량감이 돋보인다. 연수(단물)를 사용해 만든 황금빛깔의 담색맥주다. 맥주다. 흔히 ‘필스(pils)’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독일 맥주 4대 분파인 뮌헨(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도르트문트, 쾰른, 매르젠 스타일을 대표하는 맥주들. ‘호프브로이’, ‘DAB 맥주’, ‘가펠 쾰쉬’, ‘슈렝케를라 매르젠’
뮌헨(Munchener) 맥주(라거)는 경수(센물)로 양조해 맥아 향기가 짙고 감미로운 맛이 나는 대표적인 호박빛깔의 농색맥주다. 도르트문트(Dortmund) 맥주는 유럽에서 가장 큰 양조도시인 도르트문트에서 황산염을 함유한 경수로 빚은 맥주다. 필스너보다 발효도가 높고 향미가 산뜻하며 쓴맛이 적은 맥주다. 알코올 함량은 뮌헨 맥주보다 0.5~1% 낮은 3~4% 정도다. 이밖에 쾰른(Kolsch) 스타일, 매르젠(Marzen) 스타일 ‘슈렝케를라 매르젠’(Schlenkerla Marzen, 붉은 빛깔 맥주)의 독일 맥주가 라거의 범주에 들어간다.
라거 맥주가 원맥즙(Wort)이 11~12%인 원료로 빚어진다면 보크(bock) 맥주는 원맥즙 농도 16% 이상인 것으로 양조한 것이다. 영미권 국가나 독일에서 보크는 원맥즙의 농도가 높은 것으로 빚은 짙은색의 강한 맥주(strong beer)를 지칭한다. 보통 겨울에 담가 봄에 생산한다. 미국에서는 발효통을 청소할 때 나오는 진한 침전물을 활용한다.색이 짙고 향미가 진하며 단맛을 띤다. 알코올 도수가 6.5%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주로 하면발효에 의해 생산된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선 중간 밀도의 가벼운 맥주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보다 도수를 높인 게 도펠 복(doppel bock)은 독한 흑맥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Doppel은 영어로 Double, bock는 beer이라는 뜻이다. 일반 흑맥주 도수가 5% 남짓이라면 도펠 복은 10% 정도이어야 하나 실제로 대부분의 제품은 7.5% 수준이다.
도펠복은 흑맥주에 비해 더 남성답고 강한 터치감을 느낄 수 있다. 맥즙의 농도가 16% 이상인 것으로 빚는다. 짙은 색과 향미를 띠며 단맛도 나는 강한 맥주이다.
독일어로 보크는 숫염소(고집센 남자)를 뜻한다. 산지인 아인베크(Einbeck)가 아인보크(Einbock)로 변했다는 유래설이 있고, 이 맥주를 마시고 취해 쓰러진 사람을 염소에 받혀 쓰러졌다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지금도 독일 보크 맥주(Bock Beer)에는 숫염소를 그린 것이 많다. 독일어로 “맥주 한 잔 하자”할 때 “ein Bock”라고도 한다.
상면발효 맥주는 맛이 더 리얼하지만 보관, 운송에 제약이 많았던 옛날에는 생산 후 수일 안에 마셔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조·저장 기법의 발달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하면발효는 늦가을에 술을 담아 봄과 여름철에 마실 맥주를 만들기 위해 독일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저온발효를 위한 냉각기술, 바닥에 가라앉는 특수 효모를 순수하게 배양할 수 있는 기술, 맥주 발효균의 저온살균법이 잇달아 개발되면서 지금처럼 유리병에 맥주를 담아 마실 수 있게 됐다.
헤페 맥주는 효모를 거르지 않아 탁한 황금색을 띠고 거품이 풍부하며 여러가지 과일향을 넣어 개성을 준다.
맥주는 색깔별로 흑맥주, 담색맥주(황금색), 농색맥주(호박색)로 나눌 수 있다. 독일에선 색깔로 향미를 가르기도 한다. 헬(hell) 또는 헬레스(helles)는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개발된 밝은 금색의 라거 스타일을 말한다. 독일어 헬(Hell)은 밝다(Bright)는 뜻이다. 헤페(Hefe)는 독일어로 효모(Yeast)를 말하며 ‘탁한 황금색’을 의미한다. 헤페 맥주란 효모를 거르지 않아 병 바닥에 효모가 가라앉은 것으로 거품이 풍부하고 여러가지 과일향을 넣어 개성을 준다. 둥켈(dunkel) 또는 둥클레스(dunkles)는 어두운, 검은 등을 지칭하며 흑맥주를 말한다. 맛은 진하되 쓰거나 싸한 느낌이 적고 부드러우며 거품이 풍부하다. 바이젠(Weizen)은 색깔이 연하고 밝은 것을 의미한다. 헬레스와 둥켈의 중간이 바이젠 둥켈(Weizen dunkel)이다. 바이스비어(Weissbier)는 영어로 밀맥주(Wheat Beer)를 말하는 독일어다. 바이젠비어(Weizenbier)는 ‘흰 맥주(White Beer)’라는 뜻으로 밀맥주와 동의어로 쓰인다.
라이트맥주는 저알코올, 저열량(저탄수화물) 맥주를 말한다. 알코올 도수가 3%이하이며 탄수화물 함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 드라이맥주는 당분해능력이 강한 효모를 써서 잔당을 낮춰 단맛이 덜하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프리미엄 맥주는 맥아나 호프 등을 일반 맥주보다 배 가까이 투입하는 고급맥주를 일컫는다. 무알코올 맥주(Alcohol free beer)는 알코올 도수가 0%이고 맥주 맛만 내는 맥아음료다. 비알코올 맥주(Non Alcoholic beer)는 알코올 도수가 0~0.9%에 이르며 일정량의 알코올을 제거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