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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치료제 끝판왕 ‘클로자핀’ … 치료저항성 환자에 투여 빠를수록 좋아
  • 손세준 기자
  • 등록 2019-08-24 18:39:33
  • 수정 2021-06-03 11: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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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여기간 길수록 중증 호중구 감소증 위험 줄어 … 도파민 관련도 낮은 환자선 효과 떨어질 수 있어
노바티스의 항정신병 약 '클로자릴(Clozaril)'
국가안보를 소재로 한 미국드라마 ‘홈랜드’ 에서 배우 클레어 데인즈는 캐리 매티슨이라는 미국 CIA(중앙정보국) 요원으로 등장한다. 극 중 캐리는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이 약을 처방받은 사실이 알려지면 직장을 잃는다며 의사인 언니에게 불법으로 샘플 약을 주기적으로 처방받는다. 여기서 캐리가 복용하는 약은 ‘클로자핀(Clozapine)’ 성분의 항정신병 약이다.
 
클로자핀은 조현병(옛 정신분열증) 치료에 이용되는 비전형적 약물로 항정신병 약제에 효과가 좋지 않은 조현병 환자에게 처방이 가능한 2차 치료제다. 비전형적 약물(Atypical Antipsychotic)은 이전의 전형적 약물보다 신체적 부작용은 적고 무기력해 보이거나 멍해 보이는 음성증상 등에 대한 효과가 좋아 널리 쓰이는 약을 일컫는다.
 
198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백혈구 수 검사 및 호중구 검사를 전제로 이 약의 처방을 승인했다. 이 약은 백혈구가 감소하는 호중구감소증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투여 후 호중구수 변화량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이 약은 2002년에 조현병을 앓는 환자의 자살 위험을 줄이는 적응증이 추가됐다. 분열정동장애(Schizoaffective Disorder)가 있는 환자에서 자살행동이 재발했을 때 효과적이다. 허가범위를 초과해 처방하는 오프라벨 처방으로 양극성 장애에 사용되기도 한다.
 
노바티스가 ‘클로자릴정(Clozaril)’이란 제품명으로 처음 출시했으며 국내에선 2003년 5월 품목허가를 받았다. 국내사 중 유일하게 2013년 동화약품이 복제약(제네릭) ‘클자핀정’을 개발해 2014년부터 판매하고 있다.
 
조현병은 도파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정신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병으로 망상, 환청, 환각 등이 주요 증상이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정상인과 비슷한 정도로 관리할 수 있지만 복용을 중단하면 2년 내 50%, 5년 이후에 82% 정도의 재발율을 보인다.
 
조현병 환자 중 15~30%가 항정신병 약으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치료저항성(Treatment-resistant)’ 환자다. 김의태·권준수 서울대 의대 교수팀은 클로자핀 성분이 치료저항성 조현병에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연구는 1차 치료제에 반응을 잘 하는 환자군에 비해 치료저항성 조현병 환자군에서 도파민 생성이 10%이상 적은 것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클로자핀을 투여하는 데 걸렸던 시간을 단축시키면 환자 예후를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현행 가이드라인은 2개 이상의 약물을 충분한 용량, 기간 사용했음에도 효과가 없을 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약은 조현병 발병 초기부터 쓰는 경우도 많다. 자살 사고, 행동 난치성 자폐장애, 조절이 어려운 심각한 인격장애, 중증 우울증 등 다양한 증상에 효과적이다.
 
다른 조현병 치료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수용체(주로 D2 수용체)에 작용(약하게 결합하면 자극, 강력하게 결합하면 차단)하는 데 반해 클로자핀은 세로토닌(5-HT2a) 수용체, 히스타민수용체(H1) 등에 더 작용하고 간접적으로 도파민 수용체에 영향을 준다. 클로자핀은 망상, 환각 등 양성증상엔 효과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도파민 수용체(D2 외)에 작용해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도파민과 관련 없는 비특이적 조현병의 경우엔 반응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 약을 복용하면 중증 호중구감소증 발생 위험이 높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데 처방 후 18주 동안은 매주 한 번씩 호중구 수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상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 적어도 4주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후 이상이 없으면 환자는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를 받게 된다. 처방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혈액검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검사하고 이상반응이 없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용량 제제에선 경련 증가, 뇌파 이상, 의식혼탁 등이 종종 발생하며 다른 약에 비해 졸림, 체중 증가, 저혈압, 야뇨증, 침흘림이 잦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기도 한다. 이 경우엔 리튬(혈구감소증), 아리피프라졸(야뇨증), 아미설프라이드(침흘림) 등을 병용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항우울제와 병용은 음성증상이나 2차적 우울증상 조절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민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클로자핀 처방에 앞서 환자 백혈구 수치를 엄격히 측정하면 투약기간이 길어질수록 호중구 감소 위험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며 “국내 클로자핀 처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환자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를 통해 안전성을 증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현병 환자 수는 2017년 기준 5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환자의 40%인 약 20만명만 치료를 받고 나머지 60%인 30만명은 사회적 편견으로 병을 숨기거나 애초에 인식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실정이다.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조현병 관련 이슈가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는 가운데 빠른 진단 및 적합한 약제 투여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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