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보젠코리아가 지난 4월 자진 상장폐지를 신청한 배경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수많은 제약바이오 기업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IPO(기업공개) 등을 준비하는 것에 반대되는 이 회사의 행보에 기존 주주와 업계는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 제약사 알보젠(Alvogen)은 2012년 사모펀드가 인수했던 근화제약의 경영권을 다시 인수하며 국내 제약시장에 진출했다. 2014년엔 한화케미칼의 자회사인 드림파마를 약 1914억원에 인수했고, 2015년 6월 알보젠코리아로 공식 출범했다. 지난해 기준 매출 1937억원을 기록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근화제약은 신장질환·비뇨기질환·항생제 등 분야, 드림파마는 비만·소화기질환 분야 치료제 라인업 선두권에 있던 기업으로 알보젠코리아는 두 기업의 강점을 살려 이 분야 전문의약품 및 개량신약 등 200여개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알보젠코리아는 이미 2017년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를 두 차례 진행했다. 그 해 4월 첫 번째 시도에선 전체 주식의 14.53%를 사들이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소액주주의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4.8%를 매입하는 데 그쳤다. 이어 11월 경영활동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두 번째 공개매수를 시작해 지난해까지 총 9.75%을 매입했고 최대주주인 알보젠코리아홀딩스와 주식을 합쳐 지분을 92.22%까지 확보했다. 95%가 넘으면 강제로 일반주를 매입해 상장폐지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보젠코리아는 지난해 4월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이는 상장주식의 10% 이상(코스피시장 기준)을 일반주주가 보유하도록 하는 주식분산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 1년간 이의신청 기간을 부여하는데 특별한 신청 사항이 없으면 상장폐지 심사 대상이 된다. 회사 소유 주식 비율을 90% 이상만 유지하고 1년을 기다리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이 존재하는 대목이다.
알보젠코리아는 보유하고 있던 알보젠코리아홀딩스 지분 9.75%를 반환했고 알보젠코리아홀딩스는 알보젠코리아의 소액주주 지분 7.78%를 인수하면서 지주회사에 종속된 100% 자회사가 됐다. 자기회사 주식을 100% 소유하게 된 알보젠코리아는 손쉽게 자진 상장폐지를 신청했다.
또 다른 문제는 알보젠코리아 측이 주식을 매입한 뒤 알보젠코리아홀딩스와 주식교환을 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에게 현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이다. 지주회사가 자회사를 100% 종속시킬 경우에는 자회사 주주들에게 해당 가치분의 지주사 주식을 배분하는 게 대체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상법 상엔 ‘금전이나 그 밖의 재산’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지주회사는 이를 활용해 굳이 주식을 내놓고 싶어하지 않는 주주에게도 현금지급을 통한 주권 회수를 강제할 수 있다. 어쩌면 기존 소액주주들을 쫓아내고 상장폐지를 달성할 수 있는 독소조항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런 경우 소액주주는 사실상 손 쓸 방법 없이 현금을 받고 주주 지위를 빼앗기게 된다. 지난 2월 이 회사는 알보젠코리아홀딩스로 주식을 편입하는 대가로 전체 지분 7.78%를 소유한 소액주주에게 주당 현금 2만9000원을 지급한다고 공시했다. 주주 입장에선 최종 주가인 28700원과 비해 별 차익 없이 그대로 매도한 셈이다.
알보젠코리아는 2012년 근화제약을 인수한 뒤 주주에게 배당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아 비판을 받아왔다. 2014년엔 알보젠의 계열사인 미국 알보젠파인브룩으로부터 아편중독치료제 ‘Bup/Nal(부프레노르핀/날록손) 필름 설하정’과 궤양성대장염 치료제 ‘ALV-21’ 등 2개 개량신약 품목의 판권을 4700만달러(약 500억원)에 인수하려다 주주 반대로 무산됐다. 이들 제품은 당시 미국에서 허가가 진행 중인 제품이었다. 게다가 2012년 기준 자기자본인 930억원의 절반이 넘는 무리한 계약 체결을 시도했는데 그 배경이 근화제약 경영권 인수비 500억원을 조기에 회수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Bup/Nal 필름은 미국에서 상품화됐으나 ALV-21은 테바의 선공으로 현재 퍼스트 제네릭 개발을 포기한 상태다. ALV-21은 부신피질호르몬의 일종으로 호흡기염증 완화에 효과적인 부데소나이드 성분을 서방형 에어로졸 형태로 직장에 직접 분무함으로써 복부팽만, 설사, 장내염증, 출혈 등을 효과적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일반약으로 미국에서 인기가 높다.
일각에선 이번 상장폐지가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됐을 것으로 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5년 전 실패한 투자비 회수를 서두르기 위해 회사 전체 매각이나 공장매각 등을 진행할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그동안 유보했던 고배당을 실시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비상장 글로벌 제약사는 물론 일부 상장기업도 주주 눈치를 보지 않고 막대한 이익을 환수할 때 고배당을 활용한다. 대표적인 게 한국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제일은행) 사례다. 이런 방법은 결코 낯선 행태가 아니다. 이런 기업은 고액 배당금을 글로벌 본사나 지주회사 등으로 보내 ‘이익 빼가기’, ‘먹튀’ 등 비난을 받지만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코스닥은 이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세칙을 개정했다. 상장사가 자진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공개매수에 나설 때 일반주주의 지분율이 주식분산 요건인 20%(코스닥 기준)에 미달해도 3년 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지 않는 내용이다. 거래소는 금융 당국과 논의해 코스피에도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지만 아직 논의가 시작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대로 내칠 수 있는 제도상 허점이 존재하는 한 상도덕 없는 기업들의 주주 버리기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외국계 기업 먹튀를 막아주시기를 호소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알보젠 상장폐지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이 회사 말고도 유사한 기업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은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알보젠 상장폐지를 비판하는 청원을 올린 글 작성자는 “외국계 기업의 자진 상폐 후 고액배당으로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며 “주식교환에 앞서 우선시되는 거래소 규정에 따라 정상적인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