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O씨 “제약사 법무팀 판단에 맡기고 사업 강행” … 행사대행료(Agency Fee) 부과는 “광고비 축소 요구 때문”
한국노바티스가 2011년 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C모, M모 의약전문지 등 5개 매체를 통해 의사들에게 25억9000여만원의 리베이트를 우회적으로 제공한 혐의를 놓고 진행 중인 25차 공판이 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 407호 법정에서 열렸다.
서울서부지법(형사5단독)은 한국노바티스가 편집비용을 지원한 E출판사의 A학술지 출간 과정과 비용처리 내역 등을 확인하기 위해 E출판사 전직 임원 O씨를 증인 신청해 심문했다. O씨는 이 출판사에서 학술지 편집 관련 부서 팀장 및 이사로 근무했다.
이날 법정에선 E출판사가 사전에 법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와 광고비를 집행할 때 식사비, 대관료 등 학술지 편집회의비로 집행한 비용에만 유독 행사대행료(Agency Fee)를 부가한 이유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변호인 측은 O씨가 제약사와 광고계약을 통한 학술지 발간 사업이 본연의 업무였으며 증인이 입사하기 이전부터 운영되던 관행적 사업형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같은 업무가 상업적 이익을 거두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계 각 분야 권위자를 편집위원으로 위촉해 환자치료를 위한 교육자료 개발 및 의료분야 발전이라는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목적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증인 O씨는 “출판사 측이 광고를 집행할 땐 제약사에 법적 적격성 여부와 컴플라이언스 관련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지 확인한 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집행했다”며 “저명한 편집위원이 참여해 만든 학술지에 노바티스가 광고를 게재하면 홍보효과가 크고 출판사 신뢰도 함께 높일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변호인 측은 E출판사가 국내 D제약사와 진행하던 G출간물 재계약과 관련해 광고형태 비용지급이 약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알았다면 사업방식에 대한 법적 검토를 받아볼 생각은 없었는지 물었고 증인은 “직원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정도로 인지했지만 별도로 구성된 제약사 법무팀이 판단해 문제가 없다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이후 “리베이트 문제가 불거지자 기존 유사 사업을 진행하던 제약사에서 많은 문의가 빗발쳤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2015년 12월 D제약사 PM이 G출간물 편집위원장 L교수에게 보낸 메일 참조에 O씨가 포함된 메일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위법성에 대한 사전 인지여부를 물었다. 이 메일의 내용은 L교수가 D제약사 PM에게 광고비 집행을 통한 편집회의비 지출이 위법 소지가 있는지 여부를 물었고 담당 PM이 K로펌에 확인한 결과, 충분히 위법소지가 있다고 답장한 것이다. O씨는 “2015년 9월부터 3개월 간 휴직상태라 수많은 메일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려웠고 인수인계한 담당자가 업무를 처리해 중요하게 생각치 않았다”고 답변했다.
검찰 측은 E출판사 계열의 다른 O학술지 편집위원장 등으로부터 리베이트 관련 적법성을 묻는 메일을 다수 받은 뒤 E출판사 측에서 문제가 없다고 답변한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재차 사전 인지여부를 묻자 O씨는 “직원들도 리베이트에 해당된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론적인 답변 메일만 보낸 것”이라며 “다만 법적 검토를 받지 않았음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검토 의견인 것 처럼 안내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당시 직원들이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안됐고 제약사 차원에서도 무조건 부정적인 의견은 아니었다”면서 “리스크만 바라보면서 사업을 진행할 순 없었고 애초에 문제가 될 것을 알았다면 시작도 안했을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편집회의비 등 비용처리 관련 부분에 대해 검찰 측은 각종 증거로 검증을 이어갔다. 검찰 측은 “E출판사는 주로 행정적인 관리업무를 하는 곳으로 학술적으로 전문가의 원고를 검증할 능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자체적으로 전문가 원고작성에 필요한 소요시간과 난이도를 평가할 수 있는지, 공정경쟁규약상 강연료 규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있는지 추궁했다. 이에 O씨는 “원고에 대해 학술적으로 검증할 능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원고료는 다른 업체가 지급하는 수준에서 결정했고 정해진 기준표는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변했다.
원고료 명목으로 편집위원에게 지급된 비용에 대해선 “원고료는 결과물 등에 따라 시간당 지급되는 비용으로 이번 건이 과도하게 지급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이 제작한 콘텐츠를 고려하면 비교적 적은 수준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최초 지급 계약에는 계약서가 있는데 이후엔 견적서만 존재하는 부분에 대해선 PO(Purchase Order, 구매주문)번호가 발급된 뒤엔 계약서 없이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해명했다.
편집회의비 관련 항목에 행사대행료(Agency Fee)가 추가된 부분에 대해선 “초기엔 원고료, 식사료 등에 수수료를 붙이지 않았으나 해가 갈수록 노바티스 등 제약사가 광고비 삭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진 탓에 출판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대행료를 추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출판비용은 늘 비슷한 수준으로 고정비에 속하지만 식사비나 대관료 등은 변동이 많아 이를 대비하는 목적도 있다”고 부연했다.
검찰 측은 “E출판사와 노바티스 간 누적 거래액은 56억원으로 거래처 중 가장 많은 금액”이라며 “2위 업체는 23억, 3위는 22억, 4위부턴 10억대에 불과한데 유독 노바티스에 집중한 이유와 편집위원장, 편집위원 선정 시에 제약사 의견을 거절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증인은 “영업한 결과가 나오는 사업 위주로 진행하는데 노바티스는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돼 집중된 면이 있다”면서 “편집위원 선정은 거절한 적이 있었고 제약사 측이 아닌 관련 학회에서 재추천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출간된 학술지 배포를 노바티스 영업사원이 담당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검찰 측이 이같은 사실에 대해 노바티스 측이 학술지 배포까지 주관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 O씨는 “제약사를 통한 배포 이유는 빠르게 배포해 정보를 전달하는 게 학술지 출간 이유이기도 하고 회사 차원에서 재고를 안고 있는 것보다 시장에 소진하는 게 낫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O씨는 과거 검찰 조사에서 편집위원이 회의비를 더 요구해오는 상황이 생겨 학술지를 하나 더 만드는 방법이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O씨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고 육아 등 스트레스가 심해 빨리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싶어 당시 조사과정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변호사 입회 하에 진술내용을 검토한 뒤 조서를 제출했지만 검찰 측이 노바티스 측에서 관련 내용을 시인했다는 식으로 주장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뤄진 공방과 관련해 검찰 및 변호인 측에 리베이트 사건발생 이전에 제작된 학술지 전후 비교를 위한 자료제출과 증인의 생각 대신 객관적 입증이 가능한 증거 보강을 요청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7월 12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다.
노바티스는 2010년 11월부터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리베이트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처벌)를 피하기 위해 의학전문지를 창구로 의사를 불법 접대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2016년 8월 노바티스 전현직 임원 6명, 의약전문지 5곳, 보건의료계 출판업체 1곳 등 관련자 34명을 불구속 기소해 법정에 세웠다. 이 중 대형병원 의사 15명은 약식기소로 벌금형을 받아 법정에 나오지는 않았다. M매체 대표 S씨가 사망하면서 그를 제외한 18명의 피고인이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노바티스가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근거로 △2010년 이후 노바티스가 (단독) 주최한 RTM(Round Table Meeting)이 급격히 줄고 의약전문지 광고비 집행이 최대 25배까지 늘어난 점 △자사 제품 처방량 등에 따라 의사 등급을 S1~S4로 나눈 뒤 자문료 등을 차등 지급한 점 △학술행사 참석자 섭외부터 접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노바티스가 깊이 관여한 점 등을 꼽았다. 매출액 규모가 비슷한 다른 제약사와 비교하더라도 노바티스가 이들 매체에 지급한 광고비가 유독 많았다고 밝혔다. 의약전문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된 문서에 따르면 매체가 노바티스에 보낸 견적서에 행사 당일 식대·골프접대·교통비·회식비·자문료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