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여름철이 되면 유난히 기운이 없고 피곤한 데다 입맛까지 없어진다. 평소에 열이 많고 땀이 잘 나는 체질이거나, 기력이 부족한 사람은 더운 여름철이 두렵기만 하다. 동의보감에에도 여름철 건강관리가 쉽지 않다는 내용이 언급될 정도다. 질병관리본부 조사결과 2013~2017년 6500여명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에 걸렸고, 이 중 54명이 사망했다.
한여름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물처럼 줄줄 흐르고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김영철 경희대한방병원 간장·조혈내과 교수는 “여름의 열기는 피부에서 땀구멍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하는 위기(衛氣)까지 소모시켜 땀구멍이 축 늘어지고 열리면서 땀 배출이 늘어난다”며 “적당한 땀 배출은 체온조절에 도움되지만 지나칠 경우 체내 진액이 손실돼 수분과 전해질이 부족해지고 심하면 탈수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더운 날씨에 습도가 높거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오히려 땀이 증발되지 못해 몸이 무거워지고 두통, 콧물, 재채기 등 감기 증상이 동반된다.
여름에 배탈이 자주 나는 것은 기혈순환과 연관된다. 여름은 더운 기운이 위로 올라가는 계절이다. 신체도 몸 안의 따뜻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거나 피부 바깥쪽으로 몰려 뱃속은 오히려 풍선 안처럼 텅텅 비고 냉해진다. 이 때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기 쉽다.
여름철에 제대로 정기를 보충하지 않으면 학교와 직장에서 제대로 적응하기 어렵고 면역력까지 저하된다. 같은 병원 장은경 간장·조혈내과 교수는 “평소 몸이 차고 소화기능이 예민한 소음인은 당장의 더위와 갈증을 해소하는 차가운 음식보다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을 챙겨먹는 게 좋다”며 “장시간 실내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은 지나친 냉방을 피하고 에어컨의 찬 공기가 피부에 직접 닿지 않게 얇은 긴 소매 착용을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실내외 온도 차이가 5~6도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면 냉방병 예방에 도움된다”고 덧붙였다.
한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도 인간이 적응해야 하는 자연의 섭리다.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균형잡힌 식생활, 하루 8잔 이상의 충분한 수분 섭취, 적절한 온도 유지는 여름철 건강관리를 위한 필수요소다.
경희대한방병원 보양클리닉은 무더위에 손상된 원기 회복과 진액 보충을 위해 생맥산(生脈散), 청서익기탕(淸署益氣湯), 향유산(香薷散),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등 맞춤한약과 뜸·침 치료를 실시하고 있다.
이장훈 같은 병원 간장·조혈내과 교수는 “여름철 기진맥진한 사람에겐 맥문동·인삼·오미자로 구성된 생맥산을 추천한다”며 “맥문동은 열을 내려주는 동시에 진액을 보충해 갈증을 해소하고, 오미자는 강장 작용과 함께 땀 배출량을 줄여주며, 인삼은 원기를 보충하고 진액을 생성하는 데 유용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