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1/PD-L1 면역관문억제제 후발주자인 한국로슈의 ‘티쎈트릭’(성분명 아테졸리주맙, atezolizumab)이 지난 5월 국내에서 비소세포폐암 적응증을 획득한 데 이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더발루맙, durvalumab)가 이달 9일 유럽 식품의약국(EMA), 1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같은 질환 치료제로서 가속심사를 받게 됐다.
세분하면 항PD-L1 면역항암제에 속하는 티쎈트릭과 임핀지는 국내에서 이미 자리잡은 항PD-1 면역항암제인 한국MSD의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 한국오노약품공업·한국BMS제약의 ‘옵디보’(니볼루맙, nivolumab) 등과 4강 경쟁 구도가 곧 형성될 예정이다.
로슈는 지난 8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티쎈트릭의 급여 협상에 들어갔다고 밝혔으며,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오는 연말 안에 임핀지의 국내 시판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티쎈트릭과 임핀지는 지난 8월부터 환자의 PD-L1 발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키트루다, 옵디보와 기전이 거의 비슷해 같은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 계열로 분류된다.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 표면단백질 PD-L1(programmed death-ligand 1,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수용체-1 결합물)이 체내 T세포 표면의 PD-1수용체(programmed cell death receptor-1,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수용체-1)에 결합하는 것을 차단해 암세포가 자기위장을 통해 인체 면역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과정을 방해한다. 이로써 T세포가 쉽게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비소세포폐암·방광암(요로상피암)·흑색종 등 다양한 암종에 효과를 보인다. PD-1수용체에 결합하는 항PD-1 제제는 PD-L1과 또 다른 암세포 표면단백질인 PD-L2의 작용을 동시에 차단하는 반면 항PD-L1 제제는 PD-L1만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로슈와 아스트라제네카는 항PD-L1 제제가 정상세포의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PD-L2와 PD-1수용체의 상호작용에는 영향을 주지 않아 항PD-1 제제와 항암효과는 동등하면서도 자가면역반응 관련 부작용이 적다고 강조한다. 의료진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키트루다·옵디보·티쎈트릭·임핀지 등 4가지 약제 간 효능과 안전성을 직접 비교한 임상연구가 아직 없고, 모두 신약으로 장기간 안전성 데이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했다고 해서 모든 암환자에게서 드라마틱한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또 건강보험 재원은 한정돼 있어서 경제성 평가에 따라 현재로서는 최선의 바이오마커인 PD-L1 발현율을 기준으로 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키트루다는 백금 기반 항암화학요법 치료에 실패한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PD-L1 발현율이 50% 이상, 옵디보는 10% 이상인 환자에게만 급여가 인정된다.
티쎈트릭과 임핀지는 옵디보와 마찬가지로 비소세포폐암 관련 3상 임상연구에서 PD-L1 발현율과 치료효과 간에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발 비용을 포기하고 전체 환자가 급여 혜택을 받을 정도로 약가를 대폭 낮추기 않는 한 키트루다·옵디보처럼 PD-L1 발현율로 급여 인정 기준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옵디보 급여화 사례를 보면 오노약품은 이 약의 허가사항대로 PD-L1 발현율에 관계 없이 치료받는 환자 모두에 일단 보험을 적용하고 효과를 보이지 않는 환자 약값은 회사가 전액 부담하는 방식의 성과기반형 위험분담제를 요청했으나 심평원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결론적으로 PD-L1 발현율만이 급여가 책정의 핵심요소가 됐다.
옵디보와 키트루다는 모두 환급형 위험분담제(RSA) 방식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RSA는 건강보험공단이 설정한 급여 한계액을 넘는 비용은 제약사가 부담해 약효의 유효성에 대한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보험자(공단)와 회사가 분담하는 제도다.
티쎈트릭은 외신이 추정한 약값이 매월 1만2500달러(약 1400만원), 임핀지는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로 각각 연간 1억6800만원, 2억원가량이 든다. 이에 티쎈트릭과 임핀지는 경쟁약보다 많은 폐암 환자를 급여권에 포함하면서도 높은 가격을 보장받길 원하는 제약사와 재정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심평원과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폐암은 전체 암종 중 전세계적으로 사망률이 부동의 1위이고, 발생률도 높은 편이어서 면역항암제 개발사 입장에선 시장성이 가장 큰 분야다. 비소세포폐암은 폐암 가운데 약 85%를 차지한다. 학계는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3~4기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20~25%는 면역항암제에 반응해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 장기간 생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MSD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비소세포폐암 환자(비편평·편평 모두 포함)에서 PD-L1 발현율을 바이오마커로 염두에 두고 키트루다의 임상연구를 디자인했다. PD-L1이 1% 이상 발현되고 치료받은 적 있는 환자 총 1033명을 대상으로 2·3상 임상 ‘KEYNOTE-010’을 진행해 PD-L1 발현율이 1~24%, 25~49%, 50~74%, 75% 이상인 4그룹으로 세부 분석한 결과 PD-L1 발현율이 높을수록 키트루다 치료효과가 좋았다. 키트루타 투여군 중 PD-L1 발현율이 75% 이상으로 가장 높은 하위그룹 대 1~24%로 가장 낮은 하위그룹의 객관적반응률(ORR)은 33.7% 대 8.6%,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은 6.2개월 대 2.6개월,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은 16.6개월 대 9.7개월이었다.
키트루다는 PD-L1 발현율에 따라 치료반응이 비교적 명확하게 갈리고, ‘KEYNOTE-024’ 3상 임상을 통해 비소세포폐암 1차요법으로서 유효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다른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와 차이가 난다. 키트루다는 PD-L1 발현율이 1%이상에서 처방되도록 적응증을 받았으나 국내서는 50% 이상인 경우에 한해 보험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반면 옵디보는 치료받은 적 있는 진행성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3상 임상 ‘Checkmate-057’ 데이터를 후향분석한 결과 PD-L1이 1%, 5%, 10% 이상인 옵디보 투여군의 ORR은 31%, 36%, 37%로 비슷했다. PD-L1 발현율을 5%가 아닌 10% 이상으로 급여 당락을 결정한 것에 대해 일부 의료진은 임상적 유의성보다 경제성을 먼저 고려했다고 지적한다. 옵디보는 PD-L1 발현율에 상관없이 쓸 수 있도록 적응증을 받았으나 국내서는 10% 이상인 경우에 한해 보험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티쎈트릭은 기존 백금 항함화학요법에 실패한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총 1225명이 참여한 3상 임상 ‘OAK’에서 PD-L1 발현 여부와 관계 없이 1차 유효성 평가변수인 전체생존기간(OS)을 기존 화학항암제 도세탁셀(docetaxel) 대비 4개월가량 연장했다. PD-L1 발현율이 1% 이상(양성) 또는 1% 미만(음성)을 모두 포함한 티쎈트릭군의 OS 중앙값은 13.8개월로 도세탁셀군의 9.6개월에 비해 4.2개월 길었다. PD-L1이 1% 이상인 하위그룹에선 티쎈트릭 대 도세탁셀의 OS 중앙값은 15.7개월 대 10.3개월. PD-L1 1% 미만인 하위그룹에선 12.6개월 대 8.9개월로 확인됐다. 티쎈트릭은 PD-L1 발현율 양성 환자는 물론 음성 환자에서도 효과를 보여 로슈 측은 이를 약가책정에 유리한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임핀지는 백금 기반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동시에 한 뒤 진행하지 않은 3기 비소세포폐암 환자 713명을 대상으로 한 3상 임상 ‘PACIFIC’에서 1차 평가변수인 무진행생존기간(PFS)을 위약 대비 약 2배(16.8개월 대 5.6개월)로 연장했다. 하위그룹 분석 결과 PD-L1 발현율과 관계 없이 일관된 효과를 보였다.
임핀지는 다른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보다 암이 덜 진행됐고, 기존 치료에 반응을 보인 환자를 대상으로 위약 대비 유효성을 입증한 게 특징이다. 키트루다·옵디보·티쎈트릭의 3상 임상은 대조군을 도세탁셀 투여군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티쎈트릭과 임핀지도 객관적종양반응률(ORR)로 유효성을 평가하면 PD-L1이 발현 정도가 높을수록 유효성도 커진다는 분석이 나와 급여 협상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에디 슈(Eddy Hsueh) 미국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의대 종양외과 교수팀이 지난 5월 국제학술지 ‘바이오마커리서치’(BiomarkerResearch)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티쎈트릭은 치료받은 적 있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상 임상 ‘POPLAR’ 결과 ORR은 PD-L1 발현율이 50% 이상(양성)인 하위그룹에서 45%로 나타나 PD-L1 발현율이 50% 미만인 하위그룹의 14%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암환자의 OS나 PFS 등 생존기간 중앙값으로 보면 PD-L1 발현율이 차별화된 기준이 아니라고 하지만 ORR을 기준으로 하면 PD-L1 발현율과 치료효과에 비례관계가 있어 기존 PD-L1 발현율이 당분간 새로운 면역항암제의 허가 및 급여가 책정의 기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임핀지는 PACIFIC과 비슷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다른 3상 임상 ‘ARCTIC’ 결과 PD-L1 발현율이 25% 이상(양성)인 하위그룹의 ORR은 27%로 PD-L1 발현율이 25% 미만인 하위그룹의 5%와 현저히 차이가 났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CTLA-4(세포독성 T림프구 항원-4, cytotoxic T-lymphocyte associated protein-4) 면역관문억제제 트레멜리무맙(tremelimumab)을 임핀지와 병용한 그룹 중 PD-L1 발현율이 25% 이상인 환자군은 ORR이 22.5%로 낮아진 반면 PD-L1 발현율이 25% 미만인 환자군은 29%로 대폭 상승했다. 티쎈트릭은 로슈진단의 의료기기인 ‘벤타나(Ventana) SP142’, 임핀지는 ‘벤타나 SP263’으로 PD-L1 발현율을 측정한다.
다만 슈 교수팀은 키트루다·옵디보·티쎈트릭·임핀지 등 4종의 기존 임상데이터를 바탕으로 PD-L1 발현율과 ORR의 상관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들 치료제의 PD-L1 발현율을 측정하는 면역조직화학적(immunohistochemistry, IHC) 진단기기의 임상적 유용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치료에 반응을 보일 환자 중 약 28%가 PD-L1 발현율 위음성(false negative)으로 진단돼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고,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환자 중 약 42%가 위양성(false positive)으로 잘못 판단돼 약물투여의 적정성과 경제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게 슈 교수 분석의 한 결론이다.
방광암은 비소세포폐암 다음으로 이들 4가지 면역항암제가 접전을 벌일 분야다. 티쎈트릭은 미국·유럽·한국에서 비소세포폐암·방광암 등 두 가지 질환을 적응증으로 획득했다. 지난 5월 치료경험이 있는 진행성 방광암 환자 931명이 참여한 3상 임상 ‘IMvigor211’에서 1차 평가변수인 기존 항암요법 대비 OS 연장에 실패했다. FDA는 올 연말까지 로슈에게 티쎈트릭의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최종 3상 임상데이터를 제출하도록 시간 여유를 줬다.
이에 앞서 티쎈트릭은 지난해 5월 2상 임상 ‘IMvigor210’을 토대로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 중 처음으로 방광암치료제로서 신속승인(accelerated approval)을 받았다. 허가 후 3상 임상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으나 1차 평가변수에 부합하는 유효 수치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임핀지는 치료경험이 있는 진행성 방광암 환자가 참여한 1·2상 임상 ‘1108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5월 미국·유럽에서 첫 적응증을 획득했다. 티쎈트릭과 같은 조건으로 신속허가를 받았다. 방광암 1차치료제로서 유효성 및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3상 임상 ‘DANUBE’를 진행 중이다.
키트루다 역시 국소진행성 및 전이성 방광암 환자가 참여한 2상 임상 ‘KEYNOTE-052’ 결과를 근거로 최근 미국(지난 5월)·유럽(지난달) 보건당국으로부터 이 질환의 1·2차 치료를 적응증으로 획득했다.
옵디보는 지난 3월 관련 2상 임상 ‘CheckMate-275’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 FDA로부터 국소진행성 및 전이성 방광암 2차치료제로 허가받았다. 국내 적응증이 비소세포폐암·방광암·흑색종·신장암(신세포암)·두경부암·호지킨림프종 등 총 6가지로 출시된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 세 품목(키트루다·티쎈트릭) 중 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