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의 비 스타틴계 이상지혈증 신약인 ‘프랄런트펜주’(PRALUENT 성분명 알리로쿠맙, alirocumab)가 지난달 PCSK9(프로단백질 전환효소 서브틸리신 및 켁신9, proprotein convertase subtilisin/kexin type 9)억제제 중 최초로 국내에서 시판허가를 받아 고용량 스타틴(statin) 단일요법을 대체할 치료옵션이 늘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 따르면 사노피는 내년 상반기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암젠코리아는 지난해 6월 같은 계열의 신약인 ‘레파타주프리필드펜’(REPATHA 성분명 에볼로쿠맙, evolocumab) 허가를 신청해 둔 상태로 두 업체 간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화이자는 개발 중인 보코시주맙(bococizumab)이 같은 계열의 다른 치료제보다 면역원성, 주사부위 이상반응이 심한 것으로 드러나 임상시험 3상 단계에서 개발을 중단했다.
PCSK9억제제는 스타틴 최대 용량으로도 LDL(저밀도지단백, low-density lipoprotein particles) 결합 콜레스테롤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거나, 근육통 등으로 스타틴 불내성(intolerance)을 보이는 심혈관질환 고위험 및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 등에서 스타틴과 또는 스타틴 및 다른 지질저하제와 병용해 사용한다.
심혈관질환 고위험 환자의 절반 이상은 스타틴 단일제를 투여할 경우 LDL-콜레스테롤 목표치인 100㎎/㎗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위험군에서는 스타틴 투여량을 늘릴수록 드물지만 부작용으로 당뇨병·근육통 등 발생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그동안 고용량 스타틴 단일요법의 대안으로 스타틴에 에제티미브(ezetimibe, 오리지널명 한국MSD의 ‘이지트롤’)를 병용하는 게 유일했다.
스타틴 제제는 LDL 결합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이상지혈증치료제 중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 속도를 조절하는 HMG-CoA((3-hydroxy-3-methylglutaryl CoA) 환원효소(reductase)를 억제한다. HMG-CoA 환원효소는 콜레스테롤 합성 과정에서 HMG-CoA를 메발론산(mevalonic acid)으로 환원하는 역할을 한다. 대표 성분으로는 아토르바스타틴(atorvastatin, 오리지널명 한국화이자제약의 ‘리피토’)과 로수바스타틴(rosuvastatin,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크레스토’) 등이 있다.
에제티미브는 장에서 콜레스테롤 흡수를 차단한다. 소량의 스타틴과 병용할 경우 이중기전으로 작용해 LDL-콜레스테롤 수치를 강하게 떨어뜨린다. 스타틴 고용량 투여로 인한 부작용 우려를 벗어날 수 있어 스타틴 치료가 불충분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일부 의료진은 에제티미브·스타틴 병용요법의 심혈관질환 사건 예방효과가 스타틴 단독요법과 큰 차이가 없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인 ‘IMPROVE-IT’ 연구결과 에제티미브·심바스타틴 복합제 투여군 대 심바스타틴 단일제 투여군의 9년간 주요 심혈관계 사건 발생률은 32.7% 대 34.7%로 절대 수치는 2%p 차이가 났으며, 에제티미브 병용으로 인한 상대적 위험도 감소율은 6.4%로 확인됐다.
PCSK9억제제는 효소 PCSK9의 활성을 차단해 LDL수용체를 재활용하고 간세포 표면의 LDL수용체 수를 증가시켜 혈중 LDL 결합 콜레스테롤을 낮춘다.
PCSK9은 인간 염색체 1번의 PCSK9 유전자에 의해 발현된 효소로 조직과 세포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PCSK9 입자 하나가 LDL수용체와 결합하면 LDL-콜레스테롤 등 지방분자 3000~6000개가 세포외액(혈장)에서 세포 안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PCSK9는 간과 세포막에 존재하는 LDL수용체와 결합력이 높아 엔도좀(endosome, LDL수용체에 결합한 LDL-C가 세포내흡입(endocytosis)되면서 만들어진 막주머니) 안에서 LDL수용체와 함께 소멸돼 LDL수용체에 의한 LDL의 세포내분해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사노피와 암젠의 경쟁은 가장 먼저 출시된 미국에서 치열하다. 지난달 5일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 재판부는 사노피가 레파타의 PCSK9 효소에 결합해 이를 억제하는 암젠의 항체 관련 기술특허를 침해했다는 암젠의 주장을 수용했다. 레파타의 미국 특허가 만료되는 2029년까지 현지에서 프랄런트를 마케팅·제조·판매할 수 없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사노피는 프랄런트 공동 개발사인 리제네론과 즉각 항소해 역공에 나섰다. 사노피 관계자는 “최근 법원이 우리 회사의 항소심 신청을 받아들여 항소심의 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향후 약 1년간은 프랄런트의 미국 마케팅·판매·제조를 금지하는 법적 효력이 중지된다”며 “만반의 준비를 갖춰 이후에도 현지 제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랄런트는 2015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레파타는 같은 달에 유럽 의약품청(EMA)로부터 PCSK9억제제로는 처음으로 각각 허가받았다. 이들 약은 비슷한 시기에 미국, 유럽, 일본 등 시장에 각각 진출했다.
프랄런트는 월 2회, 레파타는 월 1회 자가주사하는 프리필드펜 제형 등으로 출시돼 매일 복용하는 경구제보다 투여주기가 긴 게 장점이다. 하지만 완전 인간 단일클론항체(fully human immunoglobulins)인 바이오의약품으로 미국 기준 연간 약값이 1만4300달러(약 1600만원)로 비싸다. 레파타는 지난해 1~3분기 세계 시장 누적매출액이 8300만달러(939억원)로 프랄런트 6800만유로(약 814억원)보다 앞섰지만 애널리스트의 평균 예상치인 9780만달러(약 1106억원)에 미치치 못했다. 현재까지는 매출 대부분이 미국에서 나와 현지 소송결과가 실적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된다.
레파타는 관상동맥질환(CAD, coronary artery disease) 환자 총 968명을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연구인 ‘GLAGOV’ 결과 관상동맥에 쌓이는 죽상경화반(atherosclerotic plaque)을 줄이는 효과가 확인됐다. PCSK9억제제 중 처음으로 LDL-C 수치를 낮추는 지질강하 작용 외에 죽상경화 진행억제 등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투여가 끝난 846명의 78주후 혈관내초음파(IVUS) 검사결과 레파타·스타틴 병용군은 위약·스타틴 병용군과 비교해 1차 평가변수인 혈관벽내 죽상반 비율(PAV, percent atheroma volume)과 2차 평가변수인 죽상반 총부피(TAV, total atheroma volume) 등을 충족했다. 레파타 병용군은 혈관벽내 죽상반 비율이 0.95% 감소하고 죽상반 총부피가 5.8㎣ 줄었다. 반면 위약 병용군은 혈관벽내 죽상반 비율이 0.05% 늘고 죽상반 총부피가 0.9㎣ 감소했다.
프랄런트는 스타틴을 최대 용량 투여함에도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환자가 포함된 그룹에 프랄런트를 스타틴과 병용투여한 3상 임상연구인 ‘ODYSSEY COMBO I·II’ 결과 프랄런트 병용투여군은 위약군 대비 치료 24주 후 LDL-C 수치가 29.8~45.9% 감소했다. 52주 치료기간에 감소효과가 유지됐다. 또 이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 대상 임상연구 ‘ODYSSEY FH I·II’에서는 프랄런트 병용투여군의 59.8%(ODYSSEY FH I)및 68.2%(ODYSSEY FH II)가 치료 24주째에 LDL-C 목표수치에 도달했다.
두 회사는 PCSK9억제제의 심혈관질환 관련 사망(CV death) 등 심혈관사건(CV event) 예방효과 입증으로 도약을 꾀하고 있다. 암젠은 올 1분기에 레파타의 를 확인하기 위해 시행한 3상 임상연구인 ‘FOURIER’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이 연구에서는 동맥경화성(AS, arteriosclerotic)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총 27500명을 레파타·스타틴 병용군과 위약·스타틴 병용군으로 나눠 심근경색증(MI, myocardial infarction)·뇌졸중·불안정협심증(unstable angina)으로 인한 입원·관상동맥혈관재생술(coronary revascularization) 시행 등 심혈관질환 관련 사건 발생위험 감소효과를 분석한다.
사노피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대상 프랄런트의 심혈관계 및 사망률 감소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대규모 3상 임상연구인 ‘ODYSSEY Outcomes’를 연내 종료하고 내년 초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프랄런트와 레파타 등 PCSK9억제제는 주사제형으로 투여주기가 길더라도 경구제보다 환자 선호도가 낮을 수 있고 생물학적제제로 약값이 비싸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어려운 게 단점이다. 심혈관질환 예방 측면에서 기존 스타틴 요법 대비 얼마나 뛰어난 효과를 보이느냐에 미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