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국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 치매(Alzheimer‘s Disease, AD) 신약후보물질 ‘아두카누맙’(aducanumab)이 165명의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 1b상 연구에서 병을 일으키는 원인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Amyloid Beta protein, Aβ)의 뭉침을 막고 인지능력 감퇴를 지연시킨 것으로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 약은 인간 단일클론항체로 응집된 베타아밀로이드를 공격한다. 연구결과는 세계적 과학학술지인 ‘네이처’ 표지에 실렸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부족하거나 신경독성이 있는 베타아밀로이드와 과인산화된 타우단백질이 축적되는 등 뇌의 해마·피질에서 몇가지 특성이 관찰된다. 뇌의 해마는 기억력을, 피질은 각성을 담당한다. 적정한 타우단백질은 신경세포의 미세관을 안정화함으로써 신경전달에 관여한다.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 개발현황에 대해 알아본다.
기존 치료제는 아세틸콜린 수치를 높이거나 글루탐산 매개 신경전달의 과활성화를 막아 인지기능을 개선할 뿐 병의 악화를 막지는 못한다. 치매의 일차 증상인 기억력·인지능력의 감퇴는 콜린성 신경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아세틸콜린분해효소(acetylcholinesterase, AChE)억제제가 주로 처방되고 있다.
AChE억제제로는 에자이의 ‘아리셉트’(이하 성분명 도네페질, donepezil), 노바티스의 ‘엑셀론’(리바스티그민, rivastigmine), 얀센의 ‘레미닐’·‘라자딘’(갈란타민, galantamine) 등이 있다. 라자딘은 1일 2회 복용하는 레미닐을 개량한 신제품으로 약효가 24시간 지속돼 1일 1회 복용하면 된다.
아리셉트는 아세틸콜린분해효소를 억제하며, 엑셀론은 아세틸콜린분해효소를 억제하고 니코틴성 아세틸콜린수용체(nicotine acetylcholine receptor, nAChR)에 작용한다. 레미닐·라자딘은 아세틸콜린분해효소와 부틸콜린에스터라제(butyrylcholinesterase, BuChE)를 억제한다.
아세틸콜린생합성촉진제인 이탈파마코·종근당의 ‘글리아티린’(콜린알포세레이트, choline alphoscerate)은 ‘아스코말바’(ASCOMALVA) 임상연구에서 아리셉트와 병용할 경우 아리셉트로 단독치료할 때보다 인지장애 진행 속도를 유의하게 지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메만틴(memantine) 성분의 NMDA(N-methyl-D-aspartate, N-메틸-D-아스파르트산)수용체길항제는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이 이 수용체에 지나치게 결합해 과활성화되는 것을 막는다. 이 제제로는 엘러간의 ‘나멘다’, 룬드백의 ‘에빅사’, 머츠의 ‘액수라’(Axura) 등이 있다.
지난해 9월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이 발표한 ‘퇴행성 신경질환치료제 시장동향’에 따르면 시장조사기관 데이터모니터는 미국·일본·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영국 등 주요 7개국 치매치료제 시장 규모가 2011년 52억달러(약 5조9500억원)에서 2021년 약 125억달러(14조3028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1년 기준 치매치료제의 품목별 매출액은 아리셉트가 16억9000만달러(약 1조9300억원), 아리셉트의 제네릭이 13억1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나멘다 12조7000만달러(약 1조4500억원), 엑셀론 패취제가 6억3000만달러(약 7200억원), 라자딘이 2억3000만달러(약 2600억원), 엑셀론 경구약이 1억4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각각 기록했다. 도네페질 성분의 아리셉트와 그 제네릭이 전체 시장의 약 57%를 차지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치매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4000억원으로 데이터모니터가 언급한 약 중 아리셉트, 엑셀론, 레미닐, 에빅사 등 4종이 출시돼 있다. 제네릭을 포함한 각 성분의 시장점유율은 65%, 13%, 13%, 9%를 기록했다.
아리셉트가 199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이후 2011년까지 100여개의 치매치료제가 개발됐으나 상용화에 실패해 2000년 엑셀론, 2001년 레미닐·라자딘, 2003년 나멘다 등 메만틴 제제만이 FDA의 허가를 받았다.
릴리·화이자·로슈 등 여러 글로벌 제약사는 베타아밀로이드 뭉침을 억제하는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했으나 이전 임상결과와 달리 3상 임상연구에선 위약군 대비 인지기능 향상 등 치료효과를 입증하는 데 실패해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연구진은 이미 뭉친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것보다 베타아밀로이드의 축적을 미리 막는 게 더 효과적이라 판단, 경증~중증 치매 환자 중 경증 환자만을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다시 진행하거나 다른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신경세포의 막을 관통하는 아밀로이드전구체단백질(amyloid precusor protein, APP)은 베타절단효소(β-secretase 또는 β-site APP cleaving enzyme, BACE)와 감마절단효소(β-secretase) 의해 작은 조각인 베타이밀로이드로 잘리면 독성을 띤 덩어리로 뭉친다. 베타아밀로이드 덩어리는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전달을 방해하며, 독성을 가진 특정 베타아밀로이드는 염증반응과 신경세포 퇴행·사멸을 일으킨다.
베타절단효소가 작동하기 전 알파절단효소가 먼저 APP에 작용하면 베타아밀로이드 덩어리가 형성되지 않는다. APP는 신경세포의 성장, 손상 후 복구 등에 관여한다.
베타아밀로이드 뭉침을 억제하는 약물의 기전은 크게 베타아밀로드의 항원결정부위(epitope)에 결합해 응집한 베타아밀로이드를 공격·제거하는 단일클론항체, BACE억제제, 감마절단효소억제제 등으로 나뉜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조직 속 베타아밀로이드 농도는 정상인에 비해 100~1000배 높다. APP유전자와 프레세닐린(presenilin)유전자 PS-1·2는 베타아밀로이드 축적과 관련된 대표적인 유전자로 이들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면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할 수 있다. 프레세닐린 단백질은 감마절단효소복합체를 구성하는 요소다.
한설희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2009년 대한의사협회지에 발표한 ‘알츠하이머병의 새로운 약물치료’ 논문에 따르면 사람 APP유전자가 과발현된 형질전환 쥐는 베타아밀로이드가 과도하게 축적돼도 신경세포 퇴행·사멸 등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신경독성이 있는 특정 베타아밀로이드가 형성될 때 비로소 증상이 드러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독성이 있는 베타아밀로이드의 종류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또 BACE유전자를 제거한 쥐(knock out mouse)는 생체표현형(phenotype)이 정상적이라 BACE억제제는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기대된다. X선결정학으로 BACE의 구조가 명확히 밝혀져 있다. 감마절단효소복합체의 일부 유전자를 제거한 쥐는 심한 신경퇴행을 보였다.
릴리가 2010년 감마절단효소억제제인 세마가세스타트(semagacestat)에 대한 임상 3상 연구를 마친 결과 혈장의 베타아밀로이드 농도는 38% 떨어졌으나 뇌척수액(CSF)의 베타아밀로이드 농도를 변화시키진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신경줄기세포가 신경세포로 적절히 분화되도록 조절하는 노치(Notch) 신호전달시스템 관련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결국 개발을 중단했다.
릴리는 이어 2012년 베타아밀로이드 제거 항체인 솔라네주맙(solanezumab)의 임상 3상 ‘EXPEDITION-1·2’ 연구에서 치료효과 입증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EXPEDITION-1·2 임상에 참여한 총 2052명의 환자 중 경증 환자 1000여명을 세부분석한 결과 인지기능 저하속도가 평균 34% 느려진 사실이 확인됐다. 릴리는 2013년부터 치매 증상이 가벼운 환자 2100여명을 대상으로 솔라네주맙 관련 ‘EXPEDITION-3’ 연구를 지난 10월 일단 마무리했다. 이 임상연구는 2020년 10월에 최종 완료될 예정이다. 릴리는 아스트라제네카와 공동으로 BACE억제제인 ‘LY3314814’의 임상 3상도 진행 중이다.
화이자는 베타아밀로이드 제거 항체인 포네주맙(ponezumab)과 바피뉴주맙(bapineuzumab)의 개발을 각각 2011년과 2012년에 임상 3상 단계에서 중단했다. 현재 새로운 신약후보물질 ‘PF-05251749’·‘PF-06751979’·‘PF-06648671’ 등에 대해 임상 1상을 시행 중이다.
로슈의 계열사 제넨텍은 2014년 30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간테네루맙(gantenerumab)의 3상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지금은 크레네주맙(crenezumab)에 대한 임상 1·2상을 실시 중이다. 간테네루맙과 크레네주맙은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항체다.
바이오젠은 아두카누맙에 대해 북미·유럽·아시아를 포함한 20여개국의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2700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시행 중이며 2020년 2월에 연구를 마칠 예정이다. 바이오젠은 에자이와 BACE억제제 ‘E2609’ 및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항체 ‘BAN2401’에 대해 각각 임상 2상을 시행 중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GSK933776’ 관련 임상 2상을, MSD는 베루베세스타트(verubecestat)에 대해 임상 3상을 시행 중이다. 암젠과 노바티스는 ‘CNP520’의 임상 2·3상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세 신약후보물질은 모두 BACE억제제다.
이밖에 싱가포르 타우RX파마슈티컬스는 타우단백질의 응집을 억제하는 ‘TRx0237’에 대해 임상 3상을, 스위스 AC이뮨은 얀센과 타우백신 ‘ACI-35’ 관련 임상 1상을 시행 중이다. 타우가 과인산화돼 신경섬유농축제(neurofibrillary tangle, NFT)를 형성하는 것은 베타아밀로이드 축적에 따른 결과로 여겨졌으나 이후 연구에서 타우유전자 돌연변이가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확인됐다. 타우단백질은 과인산화되지 않고 뭉치기만 해도 독성을 띤다.
국내에선 메디포스트가 동종 제대혈유래 중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매치료제 ‘뉴로스템’을 개발해 2012년 2월 임상1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임상결과 뉴로스템은 베타아밀로이드의 농도를 낮추고 뇌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4월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1·2a상을 진행 중이다.
사무엘 간디(Samuel Gandy) 미국 마운트시나이 의대 신경과 교수는 “뇌척수액의 베타아밀로이드 농도를 확인한 결과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약 25년 전부터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된 정도를 방사성표지자를 이용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Amyloid PET), 뇌척수액 베타아밀로이드 농도검사(CSF Abeta) 등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방법과 병이 진행된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리표지자인 포도당 추적자(flurodeoxyglucose, FDG)를 이용한 FDG-PET검사와 병변의 용적을 측정할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Volumetric MRI) 등을 활용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