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약성진통제, 천장효과로 진통억제 한계 … 진통보조제, 신경병증성·뼈 통증에 추가
암성통증의 약 80~90%는 약물요법으로 조절이 가능하나 내성·중독 등 마약성진통제의 부작용 우려, 의료진의 통증관리에 대한 지식 부족 등으로 통증관리를 적절히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학계의 공론이다. 국내 암환자의 약 52~80%가 통증을 호소하며 진행성 암 환자의 약 30%는 참기 힘들 만큼 극심한 통증을 겪는 것으로 보고된다. 암성통증 약물치료에 대해 알아본다.
암성통증의 강도는 환자마다 달라 조직이 손상된 정도에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정도를 점수화해 1~3점은 약한 통증, 4~6점은 중간 통증, 7~10점은 심한 통증 등 세 단계로 나뉜다. 약한 통증은 비마약성 진통제 또는 약한 마약성 진통제로 조절하고, 중간 이상의 통증은 약한 마약성 진통제나 강한 마약성 진통제로 치료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및 보건복지부·국립암센터의 ‘암성통증 관리지침’에선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를 통증의 단계와 관계없이 사용하고 비마약성 진통제, 진통보조제 등을 병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진통제는 경구투여를 기본으로 한다. 다만 구역·구토 등으로 경구투여가 곤란한 경우 피부에 붙이는 패치제를 사용할 수 있다. 주사제는 빠른 진통효과를 원할 때 일시적으로 처방한다.
김재환·손근숙 고려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팀은 2012년 7월 의사협회지에 발표한 ‘암성통증 약물치료의 최신 경향’ 보고서를 통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면 중독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암성통증 조절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며 “마약성 진통제를 장기간 사용하면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이 나타날 수 있으나 이는 마약중독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암성통증 환자의 마약중독은 1만명 중 1명 꼴로 극히 드물게 발생해 마약성 진통제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는 게 더 문제란 설명이다. 약물 내성은 이전과 같은 양을 복용했음에도 약효가 감소하는 현상을, 신체적 의존성은 약물 반복 투여에 몸이 적응해 마약성 진통제를 갑자기 중단할 때 발생하는 빈맥·저혈압·구역·구토·설사·통증·환시 등 금단증상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마약중독은 내성 또는 신체적 의존성과 달리 정신적 의존성으로 약의 특정 작용을 체험하기 위해 복용에 대한 강한 욕구가 나타난다.
내성은 마약성 진통제 투여 시 흔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약 투여량을 늘리거나 다른 약으로 변경하면 해결된다. 용법·용량을 지켜 진통제를 복용하면 내성이 발생할 확률은 1% 이내로 알려져 있다. 신체적 의존성은 마약성 진통제의 투여량을 일시적으로 늘리거나 두통치료제 클로니딘(clonidine, 대표 상품명 CJ헬스케어의 ‘캡베이서방정’) 또는 신경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제제를 소량 투여해 치료할 수 있다.
진통제 종류 및 특성
비마약성 진통제는 한국얀센의 ‘타이레놀정’(이하 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 acetaminophen)과 신풍제약의 ‘피코펜정’(이부프로펜, ibuprofen)·녹십자의 ‘탁센연질캡슐’(나프록센, naproxen)·안국약품의 ‘아세페낙정’(아세클로페낙, aceclofenac)·삼진제약의 ‘임바론정’(설린닥, sulindac)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로 나뉜다. 이들 약은 일정 용량을 넘으면 투여량에 비례해 약효가 증가하지 않고 부작용 위험만 높아지는 천장효과(ceiling effect, 의학계선 천정효과)가 나타나는 한계가 있다. 최대 투여량으로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마약성 진통제 및 진통보조제 등을 사용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천정효과가 없어 투여량에 비례해 약효가 증가하는 게 장점이나 약물 내성 및 신체적 의존성이 나타날 수 있다. 약한 마약성 진통제로는 삼아제약의 ‘코데날정’(코데인, codeine), 유한양행의 ‘트리돌캡슐’·‘트리돌주’(트라마돌, tramadol) 등이, 강한 마약성 진통제로는 하나제약의 ‘엠에스알서방정’·‘염몰핀주사’(모르핀, morphine), 한국먼디파마의 ‘옥시콘틴서방정’·‘옥시넘주사’·‘타진서방정’(옥시코돈, oxycodone), 한국얀센의 ‘듀로제식디트랜스패취’(펜타닐, fentanyl), 한국얀센의 ‘저니스타서방정’(하이드로몰폰, hydromorphone) 등이 있다. 마약성 진통제 중 경구용 모르핀이 암성통증 일차치료제로 사용된다.
마약성 진통제 중 서방정은 약물 성분이 서서히 지속적으로 방출돼 통증 조절효과를 유지한다. 속효성 정제는 돌발 통증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이므로 서방정과 함께 처방된다. 돌발 통증은 통증이 조절된 상태에서 증상이 악화돼 간헐적으로 발생한다. 국내 암환자의 45%가 하루에 3번 이상 돌발 통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엠에스알서방정 등 모르핀 서방형 정제는 복용 2~3시간 후에 약효가 최대로 나타나며 약 12시간 가량 효과가 지속된다. 속효성 모르핀정제는 복용 1시간 후 약효가 발현돼 최대 4시간가량 유지된다. 듀로제식디트랜스패취는 경피흡수제제로 피부에 붙여 약물을 투여한다. 경구 투여가 불가능한 환자에 사용한다. 3일간 약효가 지속된다. 코데인은 가래를 삭이는 진해제로 쓰인다. 체내로 흡수된 코데인의 약 10%는 모르핀으로 변환된다.
옥시코돈서방정은 모르핀서방정에 비해 효과가 빠르고 부작용이 덜하다. 옥시코돈 성분은 80년 이상 사용돼 온 마약성 진통제로 암성통증, 신경병성 통증, 수술 후 통증, 만성통증, 중증 비암성통증 등에 대해 진통효과를 나타낸다.
옥시코돈복합제인 타진서방정(성분명 옥시코돈염산염·날록손염산염, Oxycodone Hydrochloride·Naloxone Hydrochloride)은 날록손이 추가돼 마약성 진통제 복용으로 유발되는 변비를 감소시킨다. 날록손은 체순환에 들어가기 전 97% 이상이 간에서 대사가 돼 옥시코돈의 통증 완화효과를 저해하지 않는다. 날록속은 또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인 호흡억제를 역전시키거나 피부 가려움증 치료에 사용된다. 암성통증은 호흡억제를 저지하므로 암성통증 환자에서 호흡억제는 드물게 발생한다.
진통보조제는 진통 억제를 목적으로 개발되지 않았지만 신경병증성 통증, 암이 뼈로 전이돼 나타나는 뼈통증 등 진통제에 반응하지 않는 통증치료에 사용된다. 신경병증성 통증은 암으로 신경이 손상돼 발생한다. 항경련제, 항우울제, 진정제, 스테로이드제 등으로 치료한다. 뼈통증에는 비스포스포네이트계 약물인 한림제약의 ‘파노린연질캡슐’(파미드로네이트, pamidronate), 초당약품공업의 ‘다이놀정’(에티드로네이트, etidronate), 한국노바티스의 ‘조메타주사액’(졸레드론산, zoledronic acid) 등이 사용된다.
신경병증성 통증 진통보조제는 항경련제로 한국화이자의 ‘뉴론틴캡슐’(가바펜틴, gabapentin)·한국화이자의 ‘리리카캡슐’(프레가발린, pregabalin)·명인제약의 ‘카마제핀씨알정’(카르바마제핀, carbamazepine) 등이, 항우울제로 동화약품의 ‘에트라빌정’(아미트립틸린, amitriptyline)·일성신약의 ‘센시발정’(노르트리프틸린, nortriptyline)·한국릴리의 ‘심발타캡슐’(둘록세틴, duloxetine) 등이 처방된다.
이밖에 진정제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인 삼진제약의 ‘삼진디아제팜정’(디아제팜, diazepam)·일동제약의 ‘아티반정’(로라제팜, lorazepam)·부광약품의 ‘부광미다졸람주사’(미다졸람, midazolam) 등과 페노치아진계 약물인 명인제약의 ‘명인클로르프로마진염산염정’(클로르프로마진, chlorpromazine)·환인제약의 ‘페리돌정’(할로페리돌, haloperidol) 등이, 스테로이드제로 유한양행의 ‘유한디나트륨인산덱사메타손주사액’(덱사메타손, dexamethasone)·이연제약의 ‘프레디솔주사’(프레드니솔론, prednisolone) 등이 사용된다.
사용 유의사항 … 부작용 정보
비마약성 진통제는 성분별로 효과와 안전성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타이레놀정 등 아세트아미노펜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과 달리 프로스타글란딘 합성효소인 사이클로옥시게나제(cyclooxygenase, COX)를 간접적으로 억제해 소염 작용을 하진 않는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체내 염증매개물질이다.
천장효과로 최대 용량을 투여해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다른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로 전환하지 않고 바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고려한다. 여러 종류의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를 병용하는 것은 진통 억제효과는 향상되지 않고 부작용 위험만 높아진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의 흔한 부작용으로는 위장·신장장애, 혈소판감소로 인한 출혈 위험, 천식 유발 등이 있다. 이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 환자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처방한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염증반응·혈소판 기능 억제 작용이 없으나 고용량 투여 시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간기능장애의 우려가 있다면 다른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를 사용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장관의 연동운동을 억제하고 항문 괄약근의 긴장을 증가시켜 변비를 유발한다. 산화마그네슘 등 완하제를 투여해 예방한다. 변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작용은 치료 초기에 일시적으로 발생하며 이후 내성이 생겨 호전된다. 대표적인 이상반응으로 입마름, 진정·졸림, 구역·구토, 호흡억제, 피부 가려움증, 배뇨장애 등이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아편수용체에 대한 친화도에 따라 특성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여러 가지 약제를 혼합해 처방하지 않는다. 고용량이 필요하더라도 단일 성분을 사용한다. 특정 마약성 진통제에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진통 억제효과가 감소하면 다른 종류로 교체한다.
적정 용량은 부작용 없이 통증이 조절될 때까지 늘릴 수 있어 환자의 상태에 따라 투여한다. 신기능·간기능 저하, 만성폐질환, 호흡기합병증, 전신쇠약 환자는 지침대로 용량을 줄여 투여한다. 마약성 진통제 용량을 충분히 늘려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통증을 재평가하고 진통제 전환, 진통보조제 투여, 중재적 통증치료 등을 고려한다.
신경병증 통증에 처방되는 항우울제는 마약성 진통제와 병용할 경우 중추신경계 부작용, 항콜린 작용에 의한 진정·졸림, 입마름, 변비, 배뇨장애 등이 나타난다고 보고돼 있다. 항콜린약물은 중추·말초신경계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억제한다.
항경련제는 두통·졸림·어지럼증 등 중추신경계 부작용이 흔히 발생해 저용량으로 시작해 조금씩 증량한다. 신기능 저하 시 처방에 주의한다. 카마제핀씨알정 등 카르바마제핀 제제는 백혈구감소증을 일으킬 수 있어 정기적인 혈액검사로 수치를 확인해야한다.
뼈통증에 효과적인 비스포스포네이트계 약물은 골다공증 치료에 흔히 사용된다. 뼈의 수산화인회석에 결합해 파골세포에 의한 골흡수(골소실)를 억제하고 골밀도를 개선한다. 신기능 저하 시 처방에 주의한다. 부작용으로는 구역, 설사, 저마그네슘혈증, 발열, 몸살 등이 보고된다.
암성통증 환자의 약 10~20%는 통증치료를 적절히 받아도 증상 조절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환자의 경우 투여된 진통제의 종류, 용량, 경로를 재평가해 변경한다. 신경차단술, 척수강 내 약물주입 등 중재적시술이 고려된다.
이상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암성통증 조절은 인간으로서 존엄성 유지 및 환자의 삶의 질 개선에 반드시 필요한 치료”라며 “통증이 심하면 조절하기 어려워 전문의와 상의해 증상 초기부터 적극으로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