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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는 인공고관절 ‘리콜’도 한국 차별 논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9-30 10:41:03
  • 수정 2020-09-13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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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슨앤드존슨, 한국서만 6년째 리콜 지지부진 … 삼성전자, 전량리콜 초강수로 신뢰도 회복

존슨앤드존슨은 자사 인공고관절의 하자에 대해 미국에선 신속한 리콜과 피해 보상에 나선 반면 국내에서는 시술받은 환자의 주소 현황·연락처 등도 파악하지 못해 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산업계에서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은 제품 하자로 인한 대규모 ‘리콜’ 사태다. 제품 회수 및 재생산에 따른 비용 부담은 둘째치고 한번 추락한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를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품의 문제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보상 문제를 소비자가 만족스럽게 해결해 리콜이 ‘독’이 아닌 ‘약’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리콜 사태와 관련해 천당과 지옥을 오갔으며 올해엔 삼성전자와 존슨앤드존슨이 대비되는 대처를 보여 인상적이다.

최근 신제품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 문제로 위기를 맞은 삼성전자는 250만대 전량 리콜이라는 초강수를 둬 전화위복을 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9일부터 리콜을 시작해 내달 1일엔 리콜 비율이 80%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최근 “삼성은 갤럭시노트7 리콜을 잘 처리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리콜에 따른 1조원 내외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453억달러로 추정된 삼성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신속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면 미국 제약·의료기기 회사인 존슨앤드존슨은 최근 뼈가 녹는 인공고관절의 국내 리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속한 리콜과 피해보상에 나선 반면 국내에서는 시술받은 환자의 주소 현황·연락처 등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차별 논란까지 일고 있다.

지난 23일 의료기기 업계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은 2010년 자회사 드퓨의 인공고관절 제품으로 수술받은 환자의 재수술률이 12~13%로 예상치인 8~9%보다 높게 나와 전세계에서 판매된 모든 제품의 자발적 회수를 결정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2013년 해당 제품을 시술받은 환자들이 법적소송에 나서 진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금 등의 명목으로 1인당 2억이 넘는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다르다. 식약처는 추정한 총 320명의 수술 환자 가운데 23일 현재 존슨앤드존슨 보상프로그램에 등록한 환자는 50% 수준에 불과한 166명만으로 알려졌다. 즉 자발적 회수가 결정된 후 미국에서는 보상금 지급까지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환자 절반가량이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시술받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엄연히 보상프로그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등록률이 낮은 것은 자신이 문제의 제품을 시술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현재 존슨앤드존슨과 의료기관 28곳을 통해 문제가 되는 제품으로 시술받은 환자에게 관련 정보가 최대한 전달될 수 있도록 계속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 측은 환자정보보호법으로 진료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없는 업체 입장에서 부작용과 리콜 문제를 환자들에게 알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존슨앤드존슨 관계자는 “진료기록은 외부인이 열람할 수 없으므로 시술받은 모든 환자를 우리가 파악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지부진한 국내 보상 문제는 환자정보보호법 등 제도적·절차적 문제에 따른 것이라고 쳐도 제품 부작용이 처음 발견된 2010년 이후 6년간 제품 부작용이나 리콜 관련 내용을 대중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불거진 옥시사태를 보고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존슨앤드존슨은 유독 제품 리콜과 악연이 많은 기업이다. 2010년 한국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인 비전케어는 아일랜드에서 제조돼 국내로 들여온  ‘원데이 아큐브 트루아이’가 문제가 자발적 회수를 결정한 바 있다. 이 제품은 착용 후 따끔거림, 통증, 충혈 등이 나타난다는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 
2013년엔 경구피임약 ‘실레스트’(Cilest, 에치닐에스트라디올+노르제스티메이트)에서 두 개 호르몬 중 하나가 혈류에 잘 용해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 43개국에서 3220만팩 분량의 제품을 리콜 조치했다.

악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타이레놀 리콜’는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처로 지금도 산업계 전반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전화위복의 성공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앤드존슨의 진통제 ‘타이레놀(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 acetaminophen)’을 복용한 시민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망자가 복용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즉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지역 판매 제품에 리콜명령을 내렸다. 당시 진통제 시장을 선도했던 타이레놀의 미국내 시장점유율은 35%에서 6%대로 급락했다. 

존슨앤드존슨 경영진은 시카고뿐 아니라 미국 내 모든 제품을 수거해 폐기하고 소비자에게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등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또 고객상담 담당 직원을 대폭 늘려 소비자들의 항의전화에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결국 사건은 제품 자체결함이 아닌 한 범죄자가 고의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투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의혹 단계에서 나온 존슨앤드존슨의 발빠르고 강력한 대응은 소비자로부터 높은 신뢰를 이끌어냈고 사건 발생 3년 후 타이레놀 시장점유율은 35%를 회복했고 현재에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진통제로 입지를 굳혔다.

국내에서 흔히 ‘순한 화장품의 대명사’로 알려진 존슨앤드존슨은 1886년 설립된 종합제약업체로 매출액과 자산규모 면에서 미국 화이자(Pfizer)와 세계 1·2위를 다툰다. 전세계 175개국에 자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표 브랜드로 △치료용 밴드 밴드에이드(Band-Aid) △의약품 타이레놀(Tylenol) △아기위생용품 존슨즈베이비(Johnson‘s Baby) △피부미용제품 뉴트로지나(Neutrogena) △세안용품 클린앤클리어(Clean & Clear) △콘택트렌즈 아큐브(Acuvue) 등이 있다.

이번 인공고관절 사태처럼 기업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리콜 문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이유는 허술한 제도와 소비자들의 낮은 권리의식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리콜에 엄격한 나라다. 레몬법(사자마자 고장이 난 결함이 있는 신차를 교환·환불할 수 있는 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처럼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제도가 소비자의 권익을 대변한다. 이로 인해 다국적기업들은 미국에서 리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제품 하자가 발생할 경우 자세를 바짝 낮춰 용서를 구하고 적극적으로 리콜 문제를 해결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소비자들도 제품 하자에 따른 리콜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리콜에 대한 소비자들의 소극적 대응은 기업들이 문제가 드러나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거나, 문제가 생겨도 리콜이라는 말 대신 ‘수리’라는 순화된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데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면서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 차별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글로벌기업의 태도를 바꾸려면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정부가 여러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안전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지향적으로 하는 게 맞다”며 “정부 주도로 소비자지향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기업들이 국내 소비자를 차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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