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 특정 암세포 인식 항원수용체 접합 … 기존 치료 실패한 혈액암에 효과적
최근 기존 화학항암제 대비 우수한 치료결과를 보이는 면역항암제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암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한다. 암환자 대부분은 체내 면역세포 수가 부족하거나 변형돼 면역능력이 떨어져 있다.
구완성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제약바이오 시장분석 보고서에서 2020년을 면역항암제의 시대로 전망하며 녹십자셀과 차세대 면역세포치료제 키메라항원수용체-T세포(CAR-T, 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세포를 주목했다. T세포 기반 면역항암제 개발 현황에 대해 알아본다. T세포는 면역세포의 일종으로 암세포를 직접 공격한다.
녹십자셀은 사이토카인 유도 살해세포(CIK, cytokine-induced killer) 성분의 ‘이뮨셀LC’를 통해 T세포 기반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상업적 성과를 거두고 CAR-T 개발에 뛰어 들었다. 이뮨셀LC는 지난해 국내 세포치료제 중 최초로 연간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처방 건수는 2013년 540건, 2014년 1459건에서 지난해 3569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1세대 백금 기반 화학항암제(세포독성항암제)는 암세포 외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구토·탈모 등 부작용이 심했다. 암세포 증식 관련 특정변이형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는 2세대 표적항암제는 해당 환자에서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였지만 투약 1년 후 2차 유전자 변이로 인한 내성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 또 암 종류별로 유전자돌연변이에 따라 각기 다른 치료제를 개발해야 한다. 3세대 면역항암제는 기존 항암제가 갖고 있는 이같은 단점을 개선한 약이다.
면역항암제의 주요 기전에는 암세포가 갖고 있는 면역회피물질을 무력화해 T세포가 정상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억제제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능력을 향상시킨 T세포 기반 치료제 CIK세포, CAR-T 등이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로는 일부 3~4기 폐암·피부암 환자 등에서 완치에 가까운 치료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 한국BMS제약·한국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와 한국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가 있다. 이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 표면단백질 PD-L1(programmed death-ligand 1,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수용체-1 결합하는 단백질)이 체내 T세포 표면의 PD-1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차단한다. 약물이 PD-L1 대신에 PD-1 수용체에 붙게 되면 암세포가 자기위장을 통해 인체 면역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과정이 방해를 받는다. 이로써 T세포가 보다 손쉽게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다.
이뮨셀LC는 간암 환자의 재발률과 사망률을 낮춘다는 임상 3상 연구결과가 지난해 6월 ‘세계소화기학회지(Gastroenterology)’에 실려 세계 의료진의 관심을 받았다. 간암의 재발을 줄이는 치료법은 현재까지 이뮨셀LC처럼 CIK세포를 활용한 치료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정환·이정훈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팀은 수술, 고주파열치료, 에탄올주입술 등으로 종양을 제거한 국내 간암 환자 230명을 면역세포치료제 투여군 115명과 미(未)투여 대조군인 115명으로 나눠 실시한 연구에서 이뮨셀LC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했다. 면역세포치료제 투여군에는 60주간 이뮨셀LC를 총 16회 주입했으며 대조군에는 추가 치료를 하지 않았다. 임상은 2008년 6월~2012년 11월 시행됐다.
연구의 1차 평가변수인 암이 재발하지 않고 생존한 기간(RFS, recurrence-free survival)은 이뮨셀LC 투여군이 44개월로 대조군 30개월에 비해 약 1.5배 길었다. 이뮨셀LC 투여군은 대조군 대비 재발률이 37%, 사망률이 79% 낮았다. 이뮨셀LC 투여군과 대조군의 2년 내 간암 재발률은 각각 28%, 46%였다. 4년내 사망률은 4%,15%로 확인됐다. 중대한 부작용 발생 평가항목에서는 두 군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간암은 수술, 고주파열치료, 에탄올주입술 등 완치 목적으로 치료를 받더라도 5년내 재발률이 70%에 달한다”며 “이뮨셀LC는 대규모 임상에서 간암 재발을 줄이는 효과를 입증한 최초의 치료제”라고 의미를 붙였다.
녹십자셀의 이뮨셀LC는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 림프구를 분리한 후 면역단백질 사이토카인의 일종인 인터루킨2(IL2)와 CD3항체를 투여, 2~3주간 배양해 얻은 CIK세포가 주성분이다. 배양을 통해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세포독성T세포(Tc, Cytoxic T cell)가 활성화되며 그 중 일부는 자연살해(NK, Natural Killer)세포의 특징을 가진 T세포인 CIK세포로 변한다.
CIK세포는 세포 표면에 CD3와 CD56 당단백질이 발현돼 암세포 파괴력이 우수하다. 시험관 실험결과 암세포 제거능력이 배양 전 혈액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하므로 면역거부반응이 발생할 위험도 작다.
CIK세포는 세포독성T세포와 달리 항원표시물질인 MHC(주요조직적합성복합체,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와 관계 없이 암세포를 특이적으로 인지하고 제거한다. 암세포는 면역시스템의 작동을 회피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암세포 표면의 MHC를 변형, 제거해 면역세포가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세포독성T세포는 표면의 T세포 수용체(TCR, T cell receptor)를 통해 MHC가 제시하는 항원을 인식한다. MHC 형태는 손가락 지문과 같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TCR은 MHC와 상호작용으로 자신과 남을 구별하고 외부에서 침입한 적군이라 판단하면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이를 공격한다. 이에 암세포, 바이러스 감염세포, 체외에서 유입된 세포 등이 모두 제거 대상이다.
CIK세포는 NK세포와 같이 표면에 자연살해그룹2D(NKG2D, Natural Killer Group 2D) 수용체를 갖고 있어 암세포의 NKG2D를 표적물질로 인식한다. 이에 정상세포에는 세포독성이 적고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한다. 암세포만 선별해 인식하며 퍼포린(perforin)을 분비해 암세포의 세포벽을 뚫은 다음 그랜자임(granzyme)을 내뿜어 암세포의 세포자살(apoptosis)을 명령하고 사멸을 유도한다. 또 인터페론-감마(interferon-gamma)를 분비해 주변 면역세포의 기능을 활성화한다.
CIK세포는 혈액 속에 극소량만 존재해 체외 배양으로 다량 증식시킨 CIK세포를 다시 환자에 정맥투여하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헌혈처럼 혈액을 뽑으면 돼 골수로 림프구를 추출하는 방법보다 간편하다. 녹십자셀은 면역세포 냉동보관 특허기술을 활용해 이뮨셀LC의 원료인 환자의 혈액 120㎖를 한 번에 채취한 후 16회에 걸쳐 나눠 사용한다. 이뮨셀LC는 1년에 총 16회 투여하며 회당 비용은 약 500만원으로 연간 약 8000만원이 든다.
녹십자셀은 이뮨셀LC에 대해 2008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간암치료제로 첫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후 이뮨셀LC로 치료받은 간암 환자를 3년간 장기추적 관찰하는 임상 3상과 진행성 간암에 대한 2상 임상을 시행 중이다. 2008년 11월~2012년 10월 뇌종양의 한 종류인 교모세포종에 대한 임상 3상과 2009년 11월~2010년 11월 췌장암에 대한 연구자 임상(2상)을 완료하고 관련 적응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췌장암 1차치료제인 젬시타빈(gemcitabin)으로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대상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실시한 연구자 임상결과 이뮨셀LC는 중대한 부작용 없이 25%의 치료반응률을 보였다. 췌장암에 관한 임상결과는 국제저널 ‘암면역학, 면역치료(Cancer Immunology, Immunotherapy)’ 2014년 6월호에 게재됐다.
한상흥 녹십자셀 사장은 “이뮨셀LC를 안정적으로 생산·판매하는 것에 임직원의 역량을 모으고 있다”며 “개발 중인 CAR-T세포는 올해 전임상, 내년에 임상 1상에 진입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CAR-T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는 다른 면역세포인 수지상세포, NK세포 등에 비해 세계 여러 제약사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글로벌 임상만 100여건에 이르며 2014년 8월~지난해 8월 1년간 3000억원 규모 이상의 계약만 8건이 체결됐다. CAR-T 기술을 선도하는 연구팀과 바이오벤처는 카를 준(Carl June)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팀, 주노테라퓨틱스, 카이트파마, 셀렉티스 등이다. 이들 연구진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각각 노바티스, 세엘진, 암젠, 화이자와 공동 개발 중이다.
CAR-T는 특정 암세포의 항원을 인식하는 CAR수용체를 T세포에 접합한 치료제로 환자의 T세포를 체외에서 조작해 만든다. MHC와 무관하게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은 CIK세포와 같은 반면 CAR수용체에 T세포를 활성화하는 보조물을 부착해 암세포 파괴력을 향상시키고 체내 머무르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게 추가된 장점이다.
CAR-T세포가 치료제로 주목을 받기시작한 것은 2011년 카를 준 펜실베니아대 교수팀이 3명의 말기 만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에 CAR-T세포를 주입한 임상결과 2명에서 10개월 동안 완치 효과가 지속된 사실이 공개된 후부터다.
CAR-T세포가 주로 인식하는 표적 항원인 CD19, CD20는 급성림프성백혈병 환자의 암세포에서 과다 발현한다. CAR-T세포는 골수이식을 받았지만 재발한 경우나 기존 화학항암제 리툭시맙(rituximab)이 더 이상 듣지 않는 백혈병 환자에서 우수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혈병을 포함한 혈액암에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관련 질환 대한 여러 건의 임상이 진행 중이다. 노바티스는 만성림프구성백혈병과 급성림프구성백혈병에 대해 ‘CTL019’(이하 개발명)의 임상 2상을, 주노테라퓨틱스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과 비호지킨성림프종에 대해 ‘JCAR017’의 임상 1·2상을, 카이트파마는 만성림프구성백혈병과 B세포림프종에 대해 ‘KTE-19’의 임상 1·2상을을 각각 실시하고 있다.
CAR-T세포는 혈액암에서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보이는 반면 유방암, 폐암 등과 같은 고형암에서는 종양 조직이 분비하는 T세포 활성저하인자 등으로 면역활동이 억제돼 효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적응증 범위가 좁은 데 비해 상용화 과정이 복잡해 비용이 비싼 한계가 있다.
또 임상에서 보고되는 가장 큰 문제는 T세포 증식·활성화를 위해 보조물질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면역반응이 과다하게 일어나는 점이다. 예컨대 T세포가 면역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을 과다 분비한 탓에 일부 환자에서 고열, 근육통, 저혈압, 호흡곤란 등이 발생했다. 주노테라퓨틱스의 초기 임상에서는 2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연구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이토카인억제제를 병용 투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4월 필립 로우(Philip Low) 미국 퍼듀대 화학과 교수가 주도한 학내 신약개발센터 연구팀은 CAR-T가 하나의 항원만 표적하는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댑터(adaptor) 분자를 만들었다. 이 분자는 한 쪽은 CAR수용체, 다른 한 쪽은 암세포에 각각 연결된다. 암세포 항원의 종류에 따라 어댑터를 조작하면 다양한 암세포의 항원을 인식해 공격할 수 있다. 어댑터는 혈액 내 약 20분간 머문 후 분해되도록 설계돼 과다한 사이토카인 생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칼 준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가위 CRISPR를 이용해 CAR를 T세포에 도입한 CAR-T세포를 만성림프성백혈병 환자에 투여하는 임상을 미국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유전자가위는 유전체내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제거·복원·변형하거나 외부유전자를 도입하는 기술이다. 셀렉티스는 유전자가위로 TCR를 제거해 건강한 다른 사람의 CAR-T세포를 환자에 주입하는 치료법을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