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 죽겠어요. 제가 피부과 의사인데도 남편인 저보다 백화점 판매원의 말에 더 솔깃하나봅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안티에이징 클리닉을 운영하는 한 피부과 의사는 자신의 아내가 달마다 100만원 어치에 육박하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르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통에 23만원을 호가하는 페이셜크림을 포함해 한 장에 5만원이 넘는 마스크팩을 세트로 거의 매달 구입한다.
그는 “화장품은 피부 보습기능을 제외하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구매자들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그나마 화장품 덕분에 피부를 유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경우가 적잖다”며 “비싼 크림을 아껴 바르기보다 좋은 원료로 만든 중저가 보습크림 하나를 구입해 듬뿍 바르는 편이 낫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로 몇 십만원짜리 화장품도 원료를 뜯어보면 1만원 남짓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에센스-로션-페이셜크림 등으로 나뉘는 것도 결국 점성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의학적 처치 이외에 이뤄지는 다양한 홈케어, 미용관리, 에스테틱의 마사지 등은 피부를 드라마틱하게 바꾸지 못한다. 30만원짜리 아이크림을 한달 내내 쓰는 것보다 3만원짜리 눈가 보톡스를 맞는 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품과 미용시술에 투자하는 것은 ‘틴달 효과’ 탓이다.
이는 영국의 과학자 존 틴달이 발견한 원리로 각질에 수분이 닿으면 반투명 젤처럼 변해 기미나 잡티가 옅어보이는 현상이다. 에스테틱이나 스파에 다녀오거나 고가의 화장품을 듬뿍 바른 뒤 피부가 좋아진 느낌이 드는 것은 일종의 보습 효과 때문이다.
피부 가장 바깥쪽에는 서너층의 각질이 존재하는데 가장 바깥쪽의 각질층은 늘 바짝 마르고 투명한 상태로 기미나 잡티 등을 잘 드러나 보이게 한다. 이 각질이 화장품과 팩 등의 물기를 잔뜩 머금으면 반투명의 젤 상태로 변하며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변한다. 이때 기미나 잡티 등이 흐릿하게 보이며 피부가 좋아졌다고 느끼게 된다. 이 효과의 지속시간은 3~4시간 안팎이다.
피부관리를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보습하는 데 만족하면 괜찮지만 이때 기미와 잡티가 싹 사라지는 치료효과까지 기대한다면 ‘헛된 희망’일 뿐이다. 화장품 속 유효성분은 분자 크기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물에 녹지 않아 진피 아래에 형성된 콜라겐 영역까지 뚫고 들어갈 수 없다.
간혹 화장품을 바른 뒤 ‘영양을 듬뿍 먹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피부는 흡수기관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방어기관이다.
피부관리실에서는 ‘피부 속에 영양을 줘야 한다’고 하고, 화장품 회사도 ‘좋은 성분만 듬뿍 담아 성분 흡수율을 높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일종의 상술에 가깝다. 피부는 무언가를 발라서 흡수하는 기관이 아니다. 만약 영양을 피부 속으로 침투시킬 수 있다면 이미 세균, 바이러스가 먼저 피부속에 들어가 해를 끼칠 것이다. 영양은 피부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실핏줄로 공급되는 것이다.
하물며 영양을 그대로 흡수하기 위해 먹는 음식조차 피부까지 도달하는 게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먹는 콜라겐이나 히알루론산 등 식품으로 항노화 효과를 기대하다간 실망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돼지껍데기나 닭발과 같이 음식에 포함돼 있는 콜라겐은 소장에서 아미노산 형태로 분해되기 때문에 대부분 몸 밖으로 배출된다. 우유, 계란 등 단백질 식품을 섭취한 것과 비슷한 정도로 이해하면 되고 콜라겐이 피부까지 도달하는 정도는 미미하다. 무엇보다 분해된 아미노산이 다시 피부의 콜라겐 합성에 사용될지는 미지수이며,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밝혀진 바가 없다.
시중에 판매되는 미용 건강기능식품 중 콜라겐이나 히알루론산의 입자 크기를 줄여서 위에서 소화되는 것을 최소화시키는 제품이 있지만 예방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들 제품에는 콜라겐뿐만 아니라 피부 미용에 도움이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마신다고 손해보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하면 실망만 커질 수 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피부는 타고난다. 누구나 돈을 들이거나 열심히 노력하면 피부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애초에 피부 상태는 유전자로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 물론 에스테틱이나 화장품으로 한계가 있으니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필요에 따라 콤플렉스는 미용시술로 개선할 수 있고, 자외선을 차단하고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면 분명 개선될 수 있다. 드라마틱한 피부 변신을 기대하며 무리해서 고가의 화장품을 구입하고, 에스테틱에 월급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피부과 전문의들이 화장품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제품은 ‘자외선차단제’라고 강조한다. 함익병 피부과 전문의는 고가의 크림이나 에센스에 지불할 돈이 있다면 차라리 좋은 선크림을 사서 매일 아끼지 말고 바르라고 조언했다. 그는 “선크림의 효과는 분명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며 “다른 화장품 속 성분들은 이론적으로 피부에 유용할 수는 있지만 피부 속에 들어가서 기대하는 만큼 기능성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건조할 때엔 보습제를 발라서 각질을 건강하게 해주는 정도만 돼도 피부가 충분히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