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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벽에 부딪힌 ‘개원의 꿈’ … 한의대생 ‘취준생’된 사연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8-08 10:27:05
  • 수정 2020-09-13 17: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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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의원 폐업률 79.3%, 발기부전제·홍삼 약진 탓 보약처방 줄어 … 대형 한방병원 입사경쟁 치열

상당수 한방병원들이 수련의 모집 전형에서 한의대 성적과 국시 시험 성적을 평가하기 때문에 대학 시절부터 취업 준비에 집중하는 한의대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이제 막 한의대를 졸업한 권모 씨(29)는 한의원 개원의 꿈을 접고 한달 째 한방병원 채용정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처음 한의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한의원을 차려 환자를 진료보는 게 당연한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갈수록 환자가 줄어 문닫는 한의원이 속출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연이어 쏟아졌다.

어쩔 수 없이 한의원과 한방병원에 입사지원을 해봤지만 면접 기회도 얻지 못하고 떨어졌다. 입사를 해도 기대치보다 적은 급여 탓에 오래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초년 한의사의 경우 기본 200만원 중반대 월급에 일주일에 3번은 야간진료를 해야 300만원 이상을 수령할 수 있었다. 권 씨는 ‘이런 고생을 하려고 한의대를 졸업했나’라는 희의감이 들면서도 묵묵히 이력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한의사들의 삶이 갈수록 퍽퍽해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국내 한방 의료기관의 개업 대비 폐업률은 2013년 68.4%, 2014년 70.3%, 지난해 79.3%로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한의원 10곳이 개원하는 동안 8곳 이상이 문을 닫았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일반 병·의원 폐업률이 79.8%, 68.9%, 70.6%로 낮아지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양새다. 올해의 경우 지난 1~4월 문을 닫은 한방의료기관은 353개로 문을 연 곳 298개를 넘어섰다. 지난 3월엔 서울 대치동에 있는 강남경희한방병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한의학에 위기가 닥친 원인으로는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과 발기부전치료제의 인기, 한방치료법의 과학화 및 표준화 결여 등이 꼽힌다. 한 한방병원 관계자는 “2000년대 초부터 홍삼이 국내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고 인기를 얻으면서 한의원에서 보약을 처방하는 환자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홍삼 시장규모는 연간 1조3000억원대로 2000년 이후 매년 10~20%씩 성장하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대중화도 한의사들의 시름을 깊게 만드는 요인이다. 2012년 비아그라 특허가 풀리면서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복제약의 등장으로 약값이 개당 3000~5000원 수준으로 저렴해지면서 환자들의 이용률과 선호도가 높아졌고 이는 한방 발기부전치료제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한의원마다 보약값이 천차만별인 데다 처방법이 통일되지 않은 것도 환자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한의학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간단히 성분을 확인하고 가격까지 비교할 수 있어 몸보신을 위해 보약을 먹었던 사람들이 구하기 쉽고 가격까지 저렴한 건강기능식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첩약의 대중화와 저가 추세는 한약사나 건강기능식품 업자들이 이끈 측면이 강하다.

이처럼 한의원 수요는 줄고 있는 반면 배출되는 한의사 수는 갈수록 늘어 한의대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1990년대 후반 한의대 입학 정원이 늘어나면서 한의사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배출되고 있다. 최근 한의사 국시 합격자 수는 2009년 888명, 2010년 769명, 2011년 823명, 2012년 823명, 2013년 869명, 2014년 782명 등으로 평균 8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한방에서 의료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되면서 한의사들이 갈수록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한의대를 막 졸업한 젊은 한의사 중에는 월급 200~300만원 수준의 일자리로 내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의계 관계자는 “경영난에 허덕이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한의사도 적잖다”며 “한의원을 폐업하면 그 지역에서 다른 한의원에 들어가 일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다른 지역 한의원으로 옮겨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한의사들은 언제 폐원할지 모른 동네 한의원보다는 대형 한방병원에 입사하길 원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의계 관계자는 “자생한방병원 등 서울 강남 일대 한방병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지만 근무조건은 타이트해 ‘한의업계 대기업’으로 불리며 젊은 한의사들이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며 “한 자리수를 모집하는 일반 수련의 모집공고에 수십명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의사와 한의사의 복수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한의대를 졸업한 뒤 다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의계 관계자는 “의전원에 한의사 출신이 한 학년에만 3~4명, 많게는 6명까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며 “예전에는 한의대 인기가 좋아 의사를 하다가 한의대에 다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 이같은 현상이 역전됐다”고 귀띔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상당수 한방병원들이 수련의 모집 전형에서 한의대 성적과 국시 성적을 평가하기 때문에 대학 시절부터 취업 준비에 집중하는 한의대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외부환경적인 요인 탓에 미래 한의학 발전의 역군이 돼야 할 한의대생이 시험성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한의계 자체적으로 꾸준한 연구를 통해 한방치료법의 과학화 및 표준화를 꾀하고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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