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국내 최초로 4가 인플루엔자백신 ‘플루아릭스테트라’를 출시한 데 이어 올 하반기 녹십자가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를, SK케미칼이 ‘스카이셀플루4가’를 각각 출시해 세계 트렌드에 맞춰 작년보다 4가 인플루엔자백신 접종이 보편화될 전망이다.
인플루엔자의 다른 이름은 독감으로 명칭 때문에 독한 감기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독감은 리노바이러스·코로나바이러스 등 200여종 이상 다양한 바이러스가 원인인 감기와 다른 질환이다. 감기에 걸리면 재채기·코막힘·콧물·인후통·기침·미열·두통·근육통 등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개 별도의 치료 없이 낫는다. 성인은 평균 1년에 2~4회, 어린이는 6~10회 감기에 걸린다.
반면 인플루엔자는 매년 세계인구 약 10%가 감염되며 면역력이 약한 소아, 노인, 천식·당뇨병·심장병 등 만성질환자의 경우 인플루엔자 감염 시 폐렴·심부전 등으로 악화돼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의 경우에도 심한 감기몸살과 함께 고열·근육통·두통·기침·가래 등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인플루엔자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주(柱)는 크게 사람과 동물 모두 감염되는 A형, 주로 사람만 감염되는 B형, 감염률이 매우 낮고 발병돼도 증상이 가벼운 C형으로 나뉜다. A형 바이러스주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입자 표면항원인 헤마글루티닌(H, hemmaglutinin)과 뉴라미니다제(N, neuraminidase)의 종류에 따라 아형으로 구별된다(HxNy, x·y는 번호). 자연계에는 H항원이 17개, N항원이 10개가 존재하며 주로 H1·H2·H3과 N1·N2가 인간에게 독감을 일으킨다. A형은 B형보다 변이속도가 빠르고 독성도 강하다. H1N1은 1918년 스페인독감(이하 전세계 사망자수 5000만여명) 및 2009년 신종플루(1만8630여명)를, H3N2는 1968년(100만여명)·2015년(600여명) 홍콩독감을 일으켰다.
B형 바이러스주 종류로 빅토리아(Victoria)·야마가타(Yamagata)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시기는 2000년대 초반으로 늦은 편이다. B형 인플루엔자가 A형처럼 세계적으로 큰 파장은 없었다고 해서 질병부담이 작은 것은 아니다. 정희진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B형 인플루엔자는 전체 인플루엔자로 인한 입원 또는 사망 중 약 16%를 차지한다”며 “B형은 주로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지만 입원·사망하는 경우는 노인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A형 바이러스주 2종 H1N1·H3N2과 B형 2종 빅토리아·야마가타 중 그 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러스주를 조합해 개발된다. 기존 3가 인플루엔자 백신은 A형 2종과 B형 2종 중 하나만 포함한다. 4가 인플루엔자 백신은 A형 2종과 B형 2종 모두 포함한다. 예방접종 가격은 4가백신이 약 4만원으로 3가백신 약 3만원에 비해 만원 더 비싸다.
B형 미스매치(mismatch)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최근엔 B형 바이러스 두 가지가 동시에 유행하는 사례가 보고돼 예방범위가 더 넓은 4가백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001~2012년 연 12회 동안 WHO의 예상과 실제로 유행한 B형 바이러스주가 달랐던 비율은 약 60%에 이르며, 지난해 호주 인플루엔자 감염환자 5만8000여명 중 약 61%가 B형 백신 불일치로 인해 B형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에 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은 2012~2013년 시즌부터 3가백신 대신 4가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으며 호주 보건당국은 올해부터 플루아릭스테트라를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시켰다.
국내에서는 12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겨울에는 A형 바이러스가 유행하며 4~5월 봄에는 B형이 많이 발견된다. 2011~2012년 국내에서 검출된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A형 1947건, B형 1833건으로 두 종류의 발생빈도는 비슷했으나 2013~2014년에는 A형 985건, B형 1108건으로 B형으로 인한 감염이 더 많았다. 이에 대한감염학회는 지난해 성인예방접종 가이드라인에 4가백신 사용권고를 추가했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단일가닥의 RNA바이러스로 빠르게 진화한다. 바이러스 변이는 보통 1년 주기로 일어나며 H 또는 N항원에서 나타나는 대변이와 동일한 아형 내에서 발생하는 소변이로 분류된다. 때문에 매년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도 또 다른 형태로 변신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의 최대효과는 80%로 백신을 맞아도 인플루엔자에 걸릴 수 있다. 다만 백신을 접종하면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이 약하게 나타난다.
백신은 실제보다 독성이 훨씬 약하거나 죽은 바이러스로 구성된다. 백신 접종으로 가짜 바이러스와 싸운 경험이 있는 체내 면역시스템은 강한 독성을 띤 진짜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바로 항체를 분비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플루엔자는 보통 10월부터 시작해 다음해 4~5월까지 유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신 접종 후 2~3주 후 면역능력이 생겨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예방접종이 권장된다.
GSK의 ‘플루아릭스테트라’ … 세계 최초의 주사제형 4가 백신, 1억도즈 이상 접종돼 임상데이터 풍부
녹십자의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 아시아 제약사 최초 4가 백신 허가, 수출용 바이알형 별도 출시
SK케미칼의 ‘스카이셀플루4가’ … 세계 최초 동물세포 배양 4가백신, 단기간 대량생산 가능
플루아릭스테트라는 세계 최초의 4가 인플루엔자백신 주사제로 2014년 12월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다. 전세계 34개국에서 1억도즈(dose, 1회 접종단위) 이상 접종돼 안전성 및 효능을 입증하는 임상데이터가 가장 풍부하다. 만 3세 이상 소아·청소년부터 65세 이상 노인까지 접종할 수 있다.
만 18세 이상 성인 및 3~17세 소아·청소년 대상으로 실시한 ‘D-QIV 008’·‘D-QIV 003’ 각각의 임상연구에서 GSK의 기존 3가백신 ‘플루아릭스’ 대비 비열등성, 안전성, 일관성이 확인됐다. 3가 백신에 포함되지 않은 바이러스주에 대한 항체 형성과 면역원성에서 우월성이 입증됐다.
201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이후 미국에서는 GSK의 기존 3가백신 ‘플루아릭스’ 예방접종자 중 73% 이상이 플루아릭스테트라로 사용을 전환했다. GSK는 이 제품을 유한양행·보령바이오파마와 공동판매하고 있으며 3가백신은 더 이상 공급하지 않고 있다.
GSK 플루아릭스테트라 마케팅 담당자는 “지난해 소아과의원에서는 4가 백신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공급량이 부족해 아쉬웠다”며 “올해는 공급량을 더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품은 작년 국내에서 150만도즈 가량 접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만 65세 미만 당뇨병·호흡기질환 환자 등 고위험군이 자사 제품의 주요 고객”이라며 “4가 백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소비자참여형 캠페인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는 지난해 11월 식약처로부터 아시아 제약사 최초로 4가백신을 허가받았다. 세계에서는 GSK, 사노피, 메드이뮨(아스트라제네카 계열사)에 이어 네 번째다. 이 제품은 허가를 목적으로 실시한 임상에서 녹십자의 기존 3가백신 ‘지씨플루’와 유사한 예방효과·안전성을 보였다. 이 회사는 국내용으로 1회 접종분량을 1회용 주사기에 미리 담은 프리필드시린지 제형과 수출용으로 성인 10회 투여분을 약병에담은 바이알 제형 두 가지로 나눠 개발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는 내년부터 국내·외 시장에 공급된다”며 “아시아 최초로 WHO에 4가백신의 사전적격성평가(Prequalification) 인증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WHO 인플루엔자백신 사전적격성평가 인증을 받으면 국제기구 입찰 참가자격을 확보하게 된다. 이 회사는 해외시장 진출 5년만에 세계 최대 백신 수요처 중 하나인 범미보건기구(PAHO)의 인플루엔자백신 입찰시장에서 다국적제약사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어 4가 독감백신의 활약도 기대해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녹십자는 2009년 자체개발한 3가 인플루엔자백신 ‘지씨플루’를 출시한 이후 국내 인플루엔자백신 시장점유율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총 인플루엔자백신 공급량은 총 800만~1000만도즈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3가백신과 4가백신을 각각 절반 정도 나눠 공급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2009년 이후 백신 수천만도즈를 생산·판매하면서 단 한번도 품질 이상이 발견된 적이 없다”며 제품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카이셀플루4가는 플루아릭스테트라·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와 같이 전통적인 백신 제조기술인 유정란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세포 배양방식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4가백신이다. 이 제품은 지난해 12월 식약처로부터 허가받아 SK케미칼과 JW신약이 공동판매한다.
세포배양 방식은 유정란과 달리 항생제나 보존제를 사용하지 않으며 달걀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도 접종할 수 있다. 또 생산기간이 기존 유정란 방식 6개월에서 약 절반 이하로 단축됐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해 변종 독감 등으로 인한 긴급상황에 빨리 대처할 수 있다. 유정란 방식은 1도즈의 인플루엔자백신을 생산하라면 약 1~2개의 유정란이 필요한데 백신 생산지역에 조류독감이 퍼지면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위험이 있다.
박만성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동물세포 배양방식은 세포배양을 위한 배양액, 혈청 등이 필요해 유정란 방식보다 생산단가가 높다”며 “정제과정을 거치지만 세포유래 찌꺼기가 들어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정란 기반 백신 생산시스템은 오랜기간 안정성이 검증된 방법”이라며 “다만 유정란의 안정적인 공급 및 사용 후 폐기물 처리와 같은 문제점이 뒤따른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3가백신 ‘스카이셀플루’로 백신 시장에 첫 도전장을 내밀었다. 370만도즈를 성공적으로 유통했으나 식약처의 국가출하승인 검사결과 마지막 생산분량 15만도즈 중 주요 성분 일부가 함량이 부족하다는 판정과 함께 제조업무정지 2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식약처의 부적합 판정 이후 제조공정 단계를 더 엄격하게 관리했다”고 말했다. 민간 의료기관에는 모두 4가백신을 공급할 계획이다.
한편 식약처는 올해 독감백신 공급 물량을 지난해와 비슷한 2300만도즈로 예상하고 있다. 연간 국내 독감백신 수요량은 약 1600만~1700만도즈 규모로 공급 초과량이 약 600만~700만도즈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9일 보령바이오파마의 ‘보령플루V테트라’와 한국백신의 ‘코박스플루4가’가 식약처의 품목허가를 받고 일양약품도 현재 식약처에 ‘일양플루백신4가’의 시판허가를 신청한 상태로 내년 4가백신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들 세 제품은 모두 유정란 방식으로 제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