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은 주방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방기구다. 요리를 볶거나 부칠 때 주로 사용된다. 프라이팬은 음식이 눌어붙느냐 여부에 따라 성능이 좌우된다. 매끄럽게 코팅된 프라이팬을 활용하면 효율적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대부분 프라이팬 표면에는 코팅제가 발라져 있다. 1956년 프랑스 주방기기 회사 테팔(TEFAL)에서 처음으로 불소수지코팅제인 테플론(Teflon)을 활용해 프라이팬을 선보였다. 이제 테플론이 코팅되지 않은 프라이팬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테플론 사용은 대중화됐다. 하지만 테플론의 핵심원료가 되는 ‘과불화화합물’은 꾸준히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당뇨병, 고혈압 등 발병률을 높이고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과불화화합물(per-ployfluorinated chemicals, PFCs)은 탄소와 불소가 결합된 것으로 생태계 및 인간 호르몬 작용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내분비계 장애추정물질(Endocrine disrupter chemicals, EDCs, 일명 환경호르몬) 중 하나다. EDCs는 그 자체로 독성이 크지 않지만 인체에 축적되면 만성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과불화화합물은 물과 기름에 저항하고 열에 강해 1950년대부터 다양한 산업 및 생활용품에 사용되고 있다. 프라이팬 등 주방기기 외에 가죽·자동차 표면처리제, 의류 방수처리제 등에도 들어간다. 과불화화합물엔 17종 이상의 대사체 및 분해산물이 포함된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과불화옥탄술폰산(Perfluorooctane sulfonic acid, PFOS)과 과불화옥탄산(Perfluorooctanoic acid, PFOA)이다. 이 물질은 환경 중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아 식수, 토양 등에 축적되기 쉽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국내에 판매되는 프라이팬의 90~95%에 코팅제가 쓰인다”며 “프라이팬을 장기간 사용하다보면 가열돼 코팅이 벗겨지면서 과불화화합물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선 아직 관련 조사가 충분하지 않았지만 외국 사례에 따르면 체내 호르몬을 교란해 남성은 정자수 감소, 여성은 유방암·자궁내막증 등 여성질환 발생 위험 증가 등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과불화화합물 사용 절제나 대체 제품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과불화화합물 퇴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06년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위험성이 처음 제기된 이후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성분 사용을 막고 대체물질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지난해 말을 끝으로 미국 내에선 과불화화합물이 들어간 제품 생산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유럽연합 각료 이사회는 과불화화합물 단계적 금지를 검토하기로 결의했다.
과불화화합물은 생식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고 종양 증식을 촉진시킨다. 2006년 그린피스 독일연구소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조사자의 혈액 샘플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 미국에서는 몇년 동안 과불화화합물을 포함한 제품 생산을 규제한 결과 물질의 평균 농도가 감소하는 추세가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유해성과 관련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환경부가 프라이팬, 코팅주방용기, 방수 아웃도어 의류, 카펫, 일회용 식품포장용 종이 등 300여개 제품에 대해 과불화화합물 함유량을 단순 조사했다. 분석 결과 전체의 약 35%에서 관련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1년 환경호르몬 저감화를 위한 유엔 스톡홀름협약에 따라 2007년 잔류성유기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POPs) 관리법을 제정하고 2009년부터는 과불화옥탄술폰산을 관련 목록에 포함해 관리하고 있지만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1월 과불화옥탄술폰산 및 과불화옥탄산 위해성 평가자료를 공개하면서 한국인의 과불화화합물 노출은 안전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출원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세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