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다소 생소한 포르투갈 와인은 포트와인과 비뉴 베르데(그린와인)으로 대표된다. 우선 비뉴 베르데(Vinho Verde)는 어린 포도를 따서 빚은 화이트와인으로 보존기간이 길지 못하다. 대체로 포르투갈에서만 제대로 된 향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 여행 중이라면 이 와인을 여러 병 핸드 캐리해 와인냉장고에 보관하고 마실 경우 포르투갈 여행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처럼 비뉴 베르데(green이란 뜻의 포르투갈어)는 녹색이 아니다. 연두색이 비치는 화이트와인에 가깝다. 신선하고 거품이 많은 편이며 약간 신맛이 나기도 한다. 초봄에 잔디밭을 거니는 풀향기의 가벼운 느낌이다. 맛도 시큼달큼 괜찮아 이 곳에선 음료수 대용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필자는 포르투에서 도우루강변의 야경을 보며 물하라스(Mulharas, 성벽)란 브랜드의 그린와인을 대구 요리와 함께 즐기며 운치있게 음미했다.
또 하나는 안셀모 멘데스(anselmo mendes)란 브랜드로 포르투갈 출국 전 면세점에서 점원이 강력하게 추천해 산 것이다. 더데일리밀(The Daily Meal)이란 외국 식음료 전문지에서 ‘2013년 가장 마시기 좋은 와인’(the best wines to be drinking in 2013)으로 선정했다. 현지나 인터넷에선 병당 20유로인데 면세점에서는 10유로에 건졌다. 현재 와인냉장고에 보관하고 무슨 중요한 기념일에 먹으려고 아껴놓은 중이다.
또 현지서 웨이트가 추천해 준 플라날토(Planalto)란 화이트와인도 비용도 합리적이고 향미가 좋아 두고두고 생각난다. 도우루지역에서 아주 한정되게 소량 유통되는 것이라 포르투에서조차 운이 좋아야 만난다고 가업이 와이너리 출신인 웨이터는 자랑했다.
포르투갈 와인의 대표는 그래도 포트와인(Port wine)이다. 지명 원산지를 따르면 포르투와인(Porto wine)이다. 포르투가 항구(port)란 뜻이어서 포르투갈 사람은 오포르투(Oprto)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르투와인을 도우루와인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여기엔 포트와인, 레드와인, 화이트화인, 그린와인이 포함된 개념이다.
필자가 지난해 12월초 방문한 포르투갈 포르투,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la Nova de Gaja) 지역의 테일러 와이너리는 1692년 설립된 영국 브랜드다. 가족경영으로 다른 자본에 인수되지 않은 채 3세기 넘게 대대손손 포트와인을 만들어왔다. 다른 와이너리에 비해 비교적 높은 지대로 강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입구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정원과 오래된 저택이 소담한 위안을 준다. 뜨락엔 공작새가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다.
포르투가 세계적 포트와인의 주산지로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1337~1453)이다. 양국간 무역이 단절되자 영국 상인들이 포르투의 빌라 노바 드 가이아로 이주해 자국으로 수출할 와인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당시엔 배로 영국까지 배송하는데 한 달이 걸리고 마땅한 보관시설도 없다보니 와인이 쉽게 변질 숙성됐다. 궁리 끝에 영국에 선적하기 전 와인에 브랜디(포도주 등 과일주를 증류한 것)를 넣어 발효를 멈추게 하는 묘책을 찾아냈다. 달콤하되 먹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18~20%) 포트와인이 탄생했다. 이는 위스키 등 독한 술을 좋아하는 영국인의 취향에도 부합했다.
17세기 후반 이후 포트와인은 영국에 본격 수출되기 시작했다. 현재 포트와인의 가장 큰 수입국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이지만 대부분 중저가 포트를 마신다. 빈티지 포트, 에이지드 토니, LBV 등 고급 포트와인은 주로 영국, 미국, 캐나다, 포르투갈에서 소비되고 있고 최근 아시아로 수요처가 넓어지고 있다.
포르투갈은 다른 나라에서 주정강화와인에 ‘포트’라는 명칭을 남발하자 포르투갈산 포트와인의 명칭을 포르투와인로 바꾸었다. 도우루밸리는 법적으로 규정된 세계 최초의 와인생산지역 브랜드다. 1855년 프랑스가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원산지 호칭 통제제도(Appellation d’Origin Control’ee, AOC)를 도입했다면 포르투는 이보다 거의 1세기 앞선 1757년에 도우루밸리 포도밭에 등급을 매기고 원산지 표시를 법규화했다. 따라서 포트와인은 세계에서 첫번째로 AOC 규정을 갖춘 셈이다. 현재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AOC란 명칭 대신 DOC(Denominacion de Origen Calificada, Denominazione d’Origine Controllata)란 이름으로 원산지 표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포도와 와인 품질을 좌우하는 테루아르(terroir토양)의 차별성을 등급화해 상품화한 것이다.
와인에 주정을 넣어 도수를 높인 것을 주정강화와인(fortified wine)이라고 한다. 스페인 셰리와인(Sherry Wine)과 포르투갈 포트와인이 양대 산맥이다. 셰리와인이 발효 완료 후 브랜디를 첨가한 주정강화와인이라면, 포트와인은 발효 도중 브랜디를 첨가하는 게 차이난다. 드라이한 셰리와인은 식전와인(Aperitif Wine)으로 주로 이용되고, 스위트한 포트와인은 식후주로 주로 마신다.
아주 옛날에는 라가(Lagar)로 불리는 5500~8250ℓ의 거대한 오크통에서 건장한 남성이 발로 포도를 직접 밟아 파쇄했다. 이후 약 48시간 정도 짧게 발효해서 5~8%의 도수 낮은 알코올을 얻어냈다. 이를 파이프(Pipe)라고 불리는 550ℓ짜리 오크통으로 옮겨서 77%의 포도증류알코올인 아구아르덴트(Aguardente)와 혼합해 발효를 멈추게 한다. 그러니까 코냑 같은 고급 브랜디를 섞는 게 아니라 포도주를 거칠게 증류한 고도 알코올 주정을 들이붓는 것이다. 이런 베니피시오(Beneficio) 과정을 거쳐 포트와인의 최종 알코올 도수가 이로 인해 18%~22%로 맞춰지게 된다. 포트와인이 달달한 건 발효 중 브랜디를 첨가하므로 효모가 파괴되고, 발효가 덜 된 포도의 당분이 9~11% 가량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수확 후 갓 만들어진 어린 포트와인은 약 4개월간 숙성을 거치고 더 깊은 숙성을 위해 서늘하고 어두운 고지대 해안가 셀러로 옮겨진다. 주로 고지대 높은 석회암 동굴(cave) 속에 대규모 와인창고(lodges)가 조성돼 있다. 이런 최적지가 도우루강변에 인접하고 대서양으로 통하는 포르토 외항의 반대편인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역이다.
도우루강변의 와이너리 투어는 다시 말해 포도 재배지나 담그는 곳이 아니라 와인저장고에서 이뤄진다. 정작 포도 재배지는 와이너리에서 차로 40~60분 떨어진 도우루밸리(Douro valley)의 경사진 고지대이다. 계단식 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1차 숙성시켜 와이너리에서는 단지 숙성·판매만 한다. 옛날엔 도우루밸리에서 완성된 포트와인을 와인수송선(Barcos rabelos)으로 불리는 배에 실어 물류센터에 해당하는 도우루강 인근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창고에 보관했다가 영국 등으로 수출했다. 지금도 와인수송선을 본 딴 와인수송선 미니어처가 강 위에 전시용으로 정박해 있다.
포도를 기르는 도우루밸리는 포르투 북동쪽 산악지대이다. 토양은 편암과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다. 토양은 편암과 화강암이 섞여 있다. 편암질 토양이 많을수록, 화강암은 적을수록 좋다. 잘 바스러지는 편암은 물이 금방 빠지지만 미네랄을 풍부하게 공급한다. 마라웅(Marao)산이 대서양의 습한 바람을 막아준다. 고지대라 여름에 건조하게 덥고 겨울엔 추위가 매섭다. 한여름 낮엔 기온이 40도까지 오르고 밤엔 쌀쌀해 포도의 당도가 높아진다. 포도나무 뿌리는 물이 부족하고 척박한 암석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주 깊게 뿌리를 박는다. 때문에 포도나무에서 얻어지는 포도즙은 매우 적으며, 이로 인해 생산되는 와인들은 깊게 농축되고 풍부한 향을 품게 된다.
포트와인은 대부분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같은 일반적인 품종 대신 30여 종의 포르투갈 토착 품종으로 만들어진다. 레드 포트용으로는 토우리가 프란체스카(Touriga Francesca), 토우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틴타 호리즈(Tinta Roriz, 아라고네즈), 틴타 바호카(Tinta Barroca), 토우리가 프랑카(Touriga Franca), 틴토 카옹(Tinto Cao), 틴타 아마렐라(Tinta Amarela) 등이 재배된다. 토우리가 나시오날은 강렬한 블랙베리의 뉘앙스를 남기고, 토우리가 프란체스카는 우아한 향과 다채로움을 부여한다. 틴타 호리즈는 와인에 구조감을, 틴타 바호카는 당도와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화이트 포트용으로는 비오지뉴(Viosinho), 말바지아 피나(Malvasia Fina), 고우베이우(Gouveio), 모스카테우(Moscatel), 라비가토(Rabigato), 코데가(Codega) 등이 길러진다
지금도 수작업으로 우량한 품질의 포도를 수확해 일정 수준 이상의 와인을 합리적 비용으로 공급한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자랑이다. 이런 이유로 도우루밸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고지대에서 포도를 재배, 와인을 담근 후 차량이나 배로 싣고 내려와 다시 고지대 저장소로 옮기는 것은 잘 숙성시켜 풍미를 높이기 위한 것일 텐데 작업자의 고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닐 듯하다. 포르투갈에 상대적으로 저임금 숙련 노동인력이 많은 것도 이를 지탱하는 것 같다.
포트와인은 크게 통 숙성(Wood-Aged)와 병 숙성(Bottle-Aged)으로 나뉜다. 주정이 첨가되지 않은 일반 와인과 달리 포트와인은 나무통(주로 오크통)이나 병 속에서 매우 오랜 동안 숙성기간을 거친다. 오크통 속에서 100년을 넘기기도 하고, 빈티지 포트처럼 병 속에서만 수십 년 숙성되기도 한다.
오크통 숙성 포트와인은 가격이 저렴하고 색이 진하며 과일 풍미가 풍부하다. 큰 오크통(largd oak vat)에서 숙성되는 와인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루비(Ruby)포트는 평균 2~3년 숙성된 젊고(young), 체리·블랙베리·블랙커런트 등의 과일향이 주된 레드와인이다. 이름처럼 맑고 진한 루비빛을 띤다.
리저브(Reserve)포트는 루비포토와 비슷하지만 주로 3~4년 정도로 약간 길게 숙성하며 루비포트보다 더 나은 풍미를 지니고 있다.
레이트 보틀트 빈티지(LBV, Late Bottled Vintage) 포트는 한 해에 수확된 포도로만 만들어지는 매우 좋은 품질을 지닌 풀바디한 프루티 와인이다. 큰 오크통 속에서 4~6년 숙성시킨다.
큰 오크통 속에서 숙성시키면 산화가 덜 일어나므로 달콤하고 신선하고 산뜻한 맛이 느껴지므로 디저트 와인으로 적합하다.
큰 오크통 속에서 2~3년 숙성시킨 화이트와인도 있다. 전통적인 포르투갈 백포도로 좀 달거나 드라이하게 만든다. 테일러 와이너리의 경우 ‘칩 드라이’란 화이트와인을 1934년 처음 선봬 이 지역 다른 화이트 와인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작은 오크통(oak cask)에서 숙성되는 포트와인이 토니포트(Tawny Port)이다. 큰 오크통이 수천ℓ 용량이라면 작은 오크통은 550~630ℓ이다. 통이 작으면 와인과 오크속 내벽이 접촉하는 빈도가 커지므로 산화되는 정도가 강하고 숙성도가 깊어진다.
오랜 숙성기간에 루비 빛깔이던 와인은 토니(tawny)로 불리는 옅은 호박색으로 바뀌게 된다. 와인의 질감이 부드러워지고 풍부하며 끈적거리게 달아진다. 견과류와 버터향, 오크통의 향미는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깊어진다. 대체로 여러 빈티지의 와인을 블렌딩하여 4~5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화이트와인을 섞기도 한다. 오크통 속 숙성기간이 6~40년 되면 에이지드 토니(Aged Tawny)라 한다. 스타일별로 보통 10년, 20년, 30년, 40년 동안 숙성한다.
테일러 와이너리에 쓰는 오크통은 영국제로, 목적하는 와인 풍미와 숙성 기간에 따라 별도 관리한다. 수십명이 들어가도 될 만큼의 거대한 오크통은 무려 3만ℓ의 와인을 저장하던 것이라고 한다. 제작 당시 목공들이 통속을 드나들 때 손을 주기적으로 씻기 위해 입구에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포트와인은 나무통에서 충분히 숙성된 후 병입되며, 소비자들이 바로 마실 수 있는 상태의 와인이다. 당연히 병입한 순간부터 따서 바로 마실 수 있는 루비, LBV가 상대적으로 싸고 통속에서 장기간 숙성이 필요한 에이지드 토니나 병입해 장기 보관해야 하는 빈티지 포트는 비싸다.
나무통에서 숙성하지 않고 병에서 숙성하는 특이한 와인이 빈티지 포트(Vintage Port)다. 빈티지 포트는 포도 품질이 매우 좋은 단일 빈티지에(수확 연도)에 최상 등급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것으로만 만들어진다. 와인을 2년 안에 병입하고 이후 수년 또는 10~30년 동안 셀러에 보관하면서 병속 숙성으로 품질을 향상시킨다. 보르도의 프리미엄 와인처럼 빈티지 포트도 와인수집가에 의해 애호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빈티지 포트는 병에서 숙성되기 때문에 마시기 전 디캔팅이 권장된다. 디캔팅은 빈티지 포트의 잠재된 향을 이끌어낸다.
싱글 퀸타 빈티지 포트(Single Quinta Vintage)는 생산방법은 빈티지 포트와 같지만 빈티지 공표 해(1955, 1960, 1963, 1966, 1967, 1970, 1975, 1977, 1980, 1982, 1983, 1985, 1991, 1994, 1997, 2000, 2003, 2007, 2011)에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 평균 8~10년 숙성한다. 퀸타는 포도원을 뜻하며 단일 포도밭의 단일 빈티지의 포트와인이어야 싱글 퀸타 빈티지 포트라 할 수 있다.
보틀 숙성 와인으로서 빈티지 포트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게 빈티지 캐릭터(Vintage Character)다. 비교적 포도 작황이 좋은 여러 가지 빈티지 와인을 블렌딩해 만드는다. 1년 이상 숙성된 양질의 루비포트를 블렌딩해 병입한 것으로 LBV나 빈티지 포트보다 저렴하다.
크러스티드 포트(Crusted Port)는 빈티지 캐릭터와 비슷하되 와인을 거르지 않고 병입하기 때문에 침강물(crust)이 남는다.
콜라이타(Colheita) 와인은 오크통 속 숙성기간이 7년 이상인 단일 빈티지의 와인이다. 콜라이타는 ‘수확 연도’를 의미하며, 포르투갈 와인은 대체로 수확연도와 병입연도가 병기돼 있다.
빈티지와인은 같은 해에 함께 수확한 포도로 담가야 인정된다. 테일러 와이너리에서는 클래식 빈티지 와인이라 하여 1985년산을 비롯해 1994년, 1997년, 2000년, 2003년, 2007년, 2009년, 2011년산을 추천했다.
가이드의 와이너리 설명이 끝나고 칩드라이(Extra Dry White), 루비 포트, LBV 2008, 10년 오크통 속 숙성 토니 포르토(10 year old Tawny Porto, in wood)를 각각 한두 잔씩 시음했다. 도수가 소주 만큼 높은 만큼 낮시간에 서너 잔 마시니 독해서 어질어질하다. 모든 와인에서 오크향과 탄닌의 질감이 느껴진다.
칩드라이는 오크통의 영향으로 노란빛이 났고 참나무향이 느껴졌으며 매우 스위트했다. 화이트 포트와인은 대체로 스위트하거나 세미 스위트하지만 드라이한 것도 있다고 한다.
루비 포트는 맑은 빛깔이면서도 보디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LBV 2008은 부드러운 듯 혀에 착 감기는 게 낮의 취기를 올린다. 10년 통 숙성 토니 포르토는 오크향 냄새가 더 진하게 다가온다. 영국의 와인 비평가 마이클 브로드벤트(Michel Broadbent)가 테일러의 포트와인을 ‘포트와인계의 샤토 라투르(최상급 보르도 와인)’라고 평했다. 그만큼의 감동은 오지 않았지만 애주가라면 한번 쯤 겪어보고 싶은 특이한 와인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오크향을 좋아하지 않거나, 고도수 알코올을 기피하거나, 풀바디를 싫어한다면 포트와인이 맞지 않을 것이니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