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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악마’에서 ‘축제의 주인공’으로 ‘아귀·물메기’
  • 정종우 기자
  • 등록 2016-01-07 15:01:26
  • 수정 2020-09-13 19: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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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귀, 1960년대 이후 아귀찜으로 변신 … 물메기, 대구탕 대신 겨울철 해장국 으뜸
일부 미식가들은 아귀의 간이 푸아그라(거위나 오리 간으로 만든 요리)보다 맛있다고 평가한다.아귀, 물메기 등 과거 못생겨 버려졌던 생선들이 별미로 변신해 소비자들을 찾고 있다. 조상들은 이들 생선의 외모가 괴물과 흡사하다며 생선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일부 사람들에 의해 먹거리 재료로 이용되다가 이제는 구하기 힘들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아귀는 아귀목 아귀과 아귀속에 속하는 바다물고기로 ‘아구’로도 불린다. 입은 크고 몸은 타원형이며 몸이 점액으로 덮여 있다. 다른 물고기에 비해 머리가 크고 험상궂게 생겼다. 배 밑에는 수십 개의 수염 모양의 돌기가 있다. 위턱보다 아래턱이 앞으로 나와 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필리핀, 멕시코 등 북태평양 연안에서 주로 분포한다.

아귀는 깊은 수심의 바다 속에서 바닥에 붙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헤엄치는 속도가 매우 느려 다른 물고기를 쫓아 잡을 수 없다. 이에 몸 색깔을 주변 모래나 바위와 비슷하게 위장해 입을 벌리고 먹이를 맞이 한다. 머리 앞쪽에 달린 가느다란 안테나 모양의 유인돌기를 통해 작은 물고기를 입 속으로 유인해 잡아 먹는다. 유인돌기는 등지느러미의 첫 번째 가시가 변한 것으로 끝 부분이 주름진 흰 피막으로 덮여 있다. 이것을 좌우로 흔들어 먹이를 유인한다. 가만히 있다가 먹이가 접근하면 순간적으로 입을 벌려 통째로 삼킨다. 자기 몸 크기의 3분의 1 정도의 먹이도 무리없이 먹는다. 이같은 식성으로 아귀는 탐욕과 욕심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한다.

아귀를 먹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아귀요리인 아귀찜은 1960년대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발간된 ‘한국민속종합보고서’에 아귀찜 조리법이 처음 등장한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아귀는 낚시질하는 물고기’란 의미로 조사어(釣絲漁)로 부르며, 배고픈 입을 가진 생선이란 뜻으로 아구어(餓口漁)란 속칭도 갖고 있다’고 적었다. 다른 문헌에서도 아귀는 생김새에 대한 소개만 있을 뿐 조리법은 소개하지 않는다.

아귀찜의 고향은 경남 마산이다. 당시 장어국을 판매하던 상인이 어부들에 의해 버려진 아귀를 이용해 아귀찜을 만들었다.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포 형태로 변한 아귀를 북어찜과 같은 조리법으로 요리한 것이다. 마산에서는 매년 5월 9일을 ‘아귀데이’로 정해 마산시 오동동 아귀거리에서 축제를 열고 있다. 과거 ‘바다의 악마’로 불리며 푸대접을 받았던 아귀가 축제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것이다. 부산에서는 생아귀로 만든 생아귀찜를 즐기며 전남 여수에서는 아귀탕을 먹는다.

일부 미식가들은 아귀 간을 푸아그라(거위나 오리 간으로 만든 요리)보다 맛있다고 평가한다. 일본에서는 아귀 간을 ‘안키모’(あんきも)라 부른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이다. 국내에서는 일본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아귀 위장을 햇볕에 말려 가루를 낸 뒤 복용하면 위염 및 위산과다 치료에 사용하기도 했다. 

물메기는 쏨뱅이목에 속한 물고기로 아귀와 함께 못생긴 생선 중 하나로 꼽힌다. 일부 지역에서 곰치를 물메기로 부르지만 둘은 다른 종이다. 본래 물메기는 다 자랄 경우 35㎝에 불과한 소형 어종이다. 자산어보에는 미역어(迷役魚)로 기록돼 있다. 

물메기는 몸이 반투명하고 물렁물렁해 일정한 형태가 없다. 머리의 폭이 넓고 메기와 생김새가 비슷해 물메기란 이름을 얻게 됐다. 몸의 등쪽과 옆쪽이 암갈색이며 배쪽은 하얗다. 몸색깔이 밝은 회갈색이면 암컷이다. 

남해안에서 주로 잡히며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물메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잡힌다. 이 중 경남 통영 앞바다의 추도가 대표적인 물메기 어획지로 이름이 높다. 같은 통영산이라도 추도에서 잡히는 것이 더 비싸다. 추도에서는 쇠스프링통발 대신 전통방식의 대나무통발을 사용한다. 쇠통발보다 어획량이 많고 물메기에 상처도 덜 나 상품가치가 높다.

물메기의 평가가 달라진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다. 겨울철 해장국으로 인기가 좋았던 대구탕의 가격이 비싸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메기탕이 서민들의 입맛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담백함과 부드러운 식감이 입소문을 탔다. 지역에 따라 물메기탕을 끓이는 방식이 다르다. 남해안에서는 소금과 간장을 넣어 맑게 끓인다. 강원도에서는 고추 등 매콤한 채소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다. 강원도 삼척에서는 묵은지를 넣어 시큼하게 맛을 내기도 한다. 열흘 넘게 건조된 물메기를 이용한 물메기찜도 맛있다. 우럭이나 박대는 소금 간을 쳐 말리지만 물메기는 잡는 즉시 한 번 헹궈 햇볕에 걸어 둔다. 

영양적으론 다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저열량·고단백 식품이다. 100g당(가식 부위) 열량은 78㎉로 다이어트 중인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단백질은 16.4g, 뼈 건강을 돕는 칼슘은 36㎎ 들어 있다. 껍질과 뼈 사이엔 콜라겐이 풍부해 퇴행성관절염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아귀는 과거 그물에 걸리면 재수없다고 바로 바다에 버렸다해서 인천에선 ‘물텀벙이’로 불렸다. 물곰, 물돔배기란 별칭도 갖고 있다. 물메기(인천·여수·남해·통영에서 주로 불리는 별칭, 마산·진해에선 물미거지·미거지, 충남에선 바다미꾸리·물잠뱅이로 불림, 동해에선 물곰·곰치)도 일부 지역에선 물텀벙이로 통한다. 물텀벙이는 특정 생선의 이름이 아니라 아귀와 물메기처럼 먹잘 것 없는 생선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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