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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뒤덮은 상대적 박탈감 … ‘흙수저’들의 슬픈 자화상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10-08 10:55:19
  • 수정 2020-09-14 09: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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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문화 중시 한국, 타인 의식 지나쳐 … 자랑 가득 SNS, 젊은층 우울증 원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는 삶의 소중한 일부를 잃고 방황하고, 이를 극복하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가졌던 고민과 갈등에 공감했던 과거 젊은이들과 달리 요즘 20~30대는 주인공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당장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고 밀린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요즘 청춘들, 이른바 ‘N포세대’에게 인생과 사랑에 대한 사색은 의미없는 사치일 뿐이다. 돈 많은 부모를 둔 사람을 의미하는 ‘금수저’에 빗대어 자신은 무일푼의 ‘흙수저’라며 무기력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이처럼 우울한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키워드가 ‘상대적 박탈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3월 국제조사전문기관인 월드밸류서베이(WVS)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486세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자료에 따르면 한국 40대의 사회적 지위를 1로 봤을 때 20대의 상대적 지위는 0.61에 그쳤으며, 이는 비교 대상 51개 국 중 꼴찌인 가나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중국, 대만, 홍콩 등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에 거주하는 20대들의 40대에 대한 상대적 지위가 0.7 이상인 것에 비하면 한국 젊은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의미다. 

또 KDI와 일본 오사카대 사회경제연구소가 2012∼2013년 ‘인생의 성공요인은 행운이나 인맥이 아니라 노력이다’라는 문장에 대해 연령대별 반응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20대는 50% 정도만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비해 중국과 일본의 20대는 60% 안팎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즉 한국의 젊은이가 노력의 가치에 더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한국인이 유독 상대적박탈감을 잘 느끼는 이유는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객관적·의학적인 근거는 아직 부족하지만 한국인은 평등이나 공평이라는 가치에 집착해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며 “각자가 가진 행복 요소가 다른데도 단순히 경제력 등 외적인 부분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은 “한국과 일본처럼 개인문화보다 집단문화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남의 눈치를 보거나 서로 비교하는 행태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며 “선진국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아 경쟁이 과열되는 등 환경적인 영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학적 개념으로 개인이 다른 집단이나 개인보다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진다고 느끼면서 오는 허탈감이나 상실감을 의미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체면문화, 모든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물질만능주의, 내면의 가치를 무시한 외모중시 등은 현대인의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는 주원인이다.  

젊은층의 주요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은 SNS도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주요인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 3월 23일~4월 6일 전국 20~30대 미혼남녀 605명(남성 299명, 여성 306명)을 조사한 결과 62%가 SNS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비율은 여성(76.5%)이 남성(47.2%)보다 높았다.

SNS는 원래 ‘소통의 창’이라는 명목으로 세상에 등장했지만 최근엔 허세 및 자랑질과 선정적인 광고 등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친구 혹은 지인이 연인과 행복해하는 모습, 고급호텔에서 비싼 음식을 먹거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 등을 SNS에 올렸을 때 ‘자신은 왜 이런 행복을 즐기지 못할까’라고 생각하며 박탈감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경제적 빈곤이나 취업난 등 현실적인 문제가 결부되면 단순히 우울증에 빠지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SNS로 인해 느끼는 박탈감과 상실감은 흔히 ‘카페인 우울증’으로 표현된다. ‘카’는 카카오스토리, ‘페’는 페이스북, ‘인’은 인스타그램을 의미한다.

유은정 원장은 “상대적 박탈감은 부모나 기타 환경이 나에게 해준 것보다 해주지 못한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부정적인 사고(Negative Autonomatic Thoughts) 인지오류’를 갖게 한다”며 “이런 경우 우울증과 자괴감이 심해지면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무기력 상태(helplessness, hopelessness)’에 빠져 치료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즉 박탈감에서 오는 우울증은 환자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어 일반 우울증과 치료법도 다르다. 일반 우울증은 약물치료 등이 효과적인 반면 비교의식과 자괴감으로 비롯된 우울증은 생각을 바꿔주는 인지행동치료나 자신의 형편을 받아들이는 심리치료가 더 적합하다.

반드시 경제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임시공휴일, 추석선물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친구의 회사는 임시공휴일에 쉬는데 나는 출근한다든지, 정규직에게는 스팸참치세트를 선물로 주는데 비정규직인 나에겐 달랑 식용유세트를 주거나 아예 안주는 경우 실망감과 허탈함을 갖게 된다.

전문가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면 남보다는 나를 먼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유 원장은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 또는 경제적 기준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거나, 스스로 흙수저라고 깎아 내리며 부모를 탓하는 행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이나 학업을 쉬더라도 ‘내 시간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을 갖고 혼자만의 재충전 시간을 가지면 인정욕구에 목말라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승걸 교수는 “사람은 각자 행복의 기준이 다르므로 다른 비교 대상과 무조건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남이 아닌 스스로를 돌아보며 현재 가진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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