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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심평원 적정성평가, ‘애물단지’ 전락한 사연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9-10 14:53:54
  • 수정 2015-09-15 10: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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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계, 업무과중에 평가지표 부적절성 지적 … 행정비용 보상 필요, 병원 줄세우기 지양해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의 질 향상을 목표로 의료기관 적정성 평가를 도입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평가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심평원은 적정성 평가를 통해 환자가 병원 선택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의료계는 통계적인 근거가 부족한 평가 결과로 병원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심평원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한다는 취지로 2001년 약제급여 등 5개 항목을 시작으로 적정성평가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위암·간암 진료결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치료성적 등 8개 영역 35항목으로 평가를 확대했으며, 매년 평가 항목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의사 및 병원단체나 관련 학회 등이 적정성평가의 공정성 결여, 업무 과부화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소송을 거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난해의 경우 요양병원이 심평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건수만 14건에 달했다.

최근엔 법원이 심평원 적정성평가에 대해 시설과 장비 등을 평가하지 않은 채 그 결과물로 하위 20% 기관을 지정하고 페널티를 부여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적정성평가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심평원은 지난해 요양병원 1118곳을 대상으로 ‘2013년도 요양병원 입원급여 적정성평가’를 실시하고 같은 해 12월 29일 해당 요양병원에 하위 20%에 해당한다며 페널티를 통보했다. 전체 평가 대상 기관 중 하위 20%가 되면 해당 요양기관은 의사인력 확보 수준에 따른 입원료 가산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 페널티를 받은 요양병원은 "요양기관의 시설 및 장비에 관한 부분이 적정성평가 대상에서 제외돼 평가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았고, 이에 따른 처분도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5월에는 대한심장학회가 허혈성심질환 적정성 평가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며 심평원과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학회 측은 산출된 데이터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데다 평가방식의 불합리성 논란이 수차례 불거져 나와 더 이상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5년간 급성심근경색(AMI), 관상동맥우회술(CABG) 평가를 할 때도 병원에서는 연간 2만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66문항의 조사표를 입력하느라 업무부담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학회 관계자는 “조사 방식의 위법성에 대한 판결이 나왔는데도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평가를 강행하는 것은 적정성 평가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저하시키고 수용성을 낮추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적정성평가의 문제점은 도입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의료계는 적정성평가로 인한 업무 과부하를 우선적으로 꼽는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적정성평가용 자료를 만들 때 평가항목을 하나하나 입력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간호사들이 업무종료 후에 데이터를 입력할 수밖에 없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단순히 3개월의 진료분을 토대로 평가하더라도 1년 내내 평가를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관계자는 “심평원의 경우 여러 부서에서 심사와 평가를 진행하고 있지만, 병원은 한정된 인력으로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기 힘들고 이는 평가결과의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의 경우 국내의 열악한 시스템을 고려했을 때 단순한 사망률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현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대한중환자의학회 총무이사)는 “대부분의 사망은 일반병실에서 심폐소생술 이후 중환자실로 옮기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 사망률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며 “중증도 높은 환자의 입원을 기피하거나 환자를 선별하는 현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적정성평가가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과잉진료로 보험재정만 낭비되고 병원의 서열화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평가 결과에 대해 정당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보상체계과 연계하면서 진료왜곡이라는 부작용이 발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지표 선정에 관한 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중환자의학회 관계자는 “오는 10월부터는 실시되는 중환자실 적정성평가에서는 사망률을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중환자실에서 대부분의 사망은 일반병실에서 심폐소생술 이후 중환자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 사망률 비교는 적절치 않다”며 “일률적으로 평가하려는 지표보다는 병원의 질개선을 위한 평가지표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석환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적정성평가 시행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 교수는 “적정성평가로 의료의 질 향상을 유도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현재 병원신임평가, 인증평가, 적정성평가 등 평가의 종류가 너무 많아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의 서열화를 위한 단순 지표가 아니라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평가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먀 “평가 대상 의료기관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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