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지만 여름의 여운이 남아 있는 9월은 활동하기에도 좋지만 해가 저문 저녁 노천에서 샴페인을 따라 마셔도 인생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계절이다.
흔히 와인 좀 한다는 사람들은 뭣 모르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대개는 진한 레드와인을 찾고 이어 화이트와인을 즐기고 샴페인까지 갔다가 다시 진하거나 맑은 레드와인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갖게 된 와인으로 회귀한다. 최근 3년간 샴페인을 마시되 즐기지는 못한 듯하다. 세파에 찌들려 생존에 급급했으니 정신없이 살아온 날에 술맛도 잃은 듯하다.
샴페인을 즐기기 좋은 계절에 와인 초심자로 샴페인의 이모저모를 소개코자 한다. 샴페인은 프랑스 상파뉴(Champagne)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을 말한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나 포도가 아닌 복숭아 또는 사과로 만든 발포주는 샴페인이 아니다. 샹파뉴의 영어 발음이 샴페인으로 지명이 곧 술 이름이 됐다. 상파뉴 지방 이외의 프랑스지역에서 나온 발포성 와인은 뱅무셰(Vin Mousseux)라 부른다. 크레망(Cremant)은 거품이 적게 나는 타입의 샴페인이다.
발포성 와인을 일컫을 때 미국에선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 또는 bubble wine), 독일은 젝트(Sekt), 이탈리아는 스푸만테(Spumante), 스페인에서는 카바(Cava)라고 부른다. 프랑스 샴페인생산자연합회는 프랑스산 샴페인이 아니면 샴페인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금지했고 국제적으로 이를 인정해주지만 보통명사로 발포와인을 샴페인으로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발포성 와인의 상대적인 개념이 비발포성 와인(non sparkling wine 또는 still wine)이다.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로제와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샴페인은 탄산가스에 의해 기포가 올라고 혀끝에 신선한 자극을 전한다. 하얗거나 연노랑의 샴페인이 담긴 잘록하고 긴 잔에 연거푸 잔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마치 샴페인에 생명이 깃든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사이다 거품이나 맥주 거품과는 차원이 완연 다르다. 축하용으로 샴페인을 터뜨리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싸구려 샴페인을 쓸 일이다. 고급 샴페인을 축하용으로 쓴다면 자기 손해이고 샴페인 모독에 해당한다.
샹파뉴에서 샴페인이 나온 것은 추운 기후 탓이다. 파리보다 북동쪽으로 145㎞ 똘어진 샹파뉴는 프랑스 포도 재배지역 중 가장 추워 가을에 포도주를 담아놓으면 겨우내 찬 기온으로 병속 효모가 활동을 중지했다가 따스한 봄이 오면 효모 일부가 발효를 일으켜 병이 깨지거나 병마개가 날아가기 일쑤였다.
샹파뉴 지방 베네딕트 수도원의 와인 제조 책임자인 동 페리뇽(Dom Perignon, 1639~1715)는 와인 폭발을 막기 위해 애를 쓰던 중 오히려 거품을 활용해 와인의 향미를 높이는 방법을 고안하게 됐다. 그는 △포도 수확시기를 늦춰 와인에 적합한 품질을 이끌어냈고 △적포도에서 샴페인의 원료가 되는 화이트와인을 얻기 위해 넓고 얕은 압력장치 속에 적포도를 투입하면 흰색의 즙을 얻어내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샴페인 병속에서 분출되는 탄산가스(6기압)를 잡아놓기 위해 튼튼한 영국병(English bottle, verre Anglais)과 스페인산 코르크마개를 고안 또는 채택했다. 또 여러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섞어(일명 블렌딩) 맛을 높였다.
동 페리뇽 이전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포도를 일찍 수확했고, 화이트 와인은 거의 청포도주에서만 생산했으며, 병이 약해 깨지기 일쑤였다. 병마개로는 나무마개에 기름을 적신 마로 감은 것을 썼다.
동 페리뇽의 샴페인 제조 저작권은 본래 메르시에(Mercier)가 갖고 있었으나 이를 모에샹동(Moet & Chandon)이 사들여 샴페인의 원조인 양 ‘신비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모에샹동은 토양과 수분이 교환될 수 있는 백악질(석회질) 지대의 지하에 길이가 28㎞에 이르는 셀라(저장고)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 1억병의 와인이 저장돼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모에샹동의 대표적 샴페인 브랜드가 ‘퀴베 동 페리뇽’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패션기업 그룹인 LVMH가 루이 뷔통(LV), 모에샹동(M), 헤네시(H, 코냑 브랜드)에서 온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LVMH는 이밖에 보통사람이 알만한 명품 브랜드로 크리스천디오르, 쇼메, 지방시, 이브생로랑, 셀린, 펜디 등을 보유하고 있다.
동 페리뇽이 샴페인의 거품을 유지해 보관하는 기법을 개발했다면 포도주가 병속에서 2차 발효(추가 투입된 효모와 당분의 상호작용) 뒤 가라앉은 침전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은 뵈브 클리코 네 퐁사르뎅(Veuve Clicquot Nee Ponsardin)이다.
그는 2차 발효 중인 와인병을 45도 경사진 선반(pupitre)에 병목이 아래로 가도록 꽂아놓고 각 병을 주기적으로 회전시켜(remuage 과정) 고형물이 병목 부위에 모이게 한 다음 병목을 찬 소금물에 담갔다가 급속하게 순간 냉각시켜 얼리고 침전물을 빼내는(degorgement 과정) 기술을 개발했다.
‘뵈브 클리코 퐁사르뎅’ 브랜드의 샴페인도 LVMH그룹이 상표권을 갖고 있다.
샴페인에 쓰이는 포도 품종은 주로 피노 누아(Pinot Noir, 적포도),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 적포도), 샤르도네(Chardonnay, 백포도) 등 3개 품종이다.
피노누아는 전세계적으로 재배되지만 상파뉴에서 특히 가장 많이 재배한다. 생산량이 적은 품종으로 육질이 풍부하며 우아하고 섬세한 와인을 만들어 낸다.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잘 자라지만 부패나 병충해에 민감하기도 하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이 가장 대표적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보다는 부드럽고, 메를로(Merlo)보다는 타닌 성분의 맛이 강하다.
피노 뫼니에는 추운 날씨에도 잘 자라고, 블렌딩할 때 과일향을 풍기고 산도를 높이기 때문에 자주 활용된다.
샤르도네는 백포도주를 만드는 대표적 포도 품종으로 포도알이 빈틈없이 달라 붙어 있다. 포도알은 노란빛을 띤 녹색이다. 사과향, 파인애플향, 신선한 크림향 등이 풍부하면서도 섬세하다. 그 향은 재배 장소와 술의 숙성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브루고뉴가 원산지이지만 샹파뉴에서도 많이 재배된다.
피노블랑(Pinot Blanc, 백포도)은 프랑스 알자스, 독일, 이탈리아 북부, 신대륙에서 발포와인에 많이 쓰이는 품종이다. 피노블랑은 샤르도네와 여러 가지로 비슷하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샤르도네’로 불리기도 한다.
샤르도네와 피노블랑은 드라이하되 감귤류, 풋사과의 신맛이 나는 신선한 와인을 생산해 낸다. 하지만 일조량이 좋고 토양이 기름진 곳에서 재배된 것으로 와인을 만들면 아침 나절 풀밭을 걷는 진한 풀향기가 난다.
샴페인을 만드는 데 쓰이는 백포도주 원주를 퀴베(Cuvee)라고 한다. 이런저런 와인을 혼합(블렌딩)하는데 보통 피노 누아 및 피노 뫼니에 3분의 2에 샤르도네 3분의 1 가량을 섞는다. 여기에 당분과 효모를 주입해 2차 발효시켜야 탄산가스가 샘솟는 샴페인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와인은 조성 타입에 따라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프리스티지 퀴베(Prestige cuvee)는 여러 품종이 블렌딩된 것이다. 블랑드느와(Blanc de noirs)는 적포도만으로 만든 것, 블랑드블랑(Blanc de blancs)은 청포도(주로 샤르도네)만으로 만든 것, 로제 샴페인(Rose Champagne 또는 Pink Champagne)은 청포도인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와인에 적포도인 피노 누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섞은 것이다. 로제 샴페인 중에는 고급이 드물다.
샴페인은 생산연도와 지역이 다른 이런저런 와인으로 샴페인을 만들다보니 빈티지(생산연도, 양조연도)를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포도작황이 좋은 해에만 같은 해에 수확된 포도로 양조한 와인만을 섞어 퀴베를 만드는데, 이 때에만 빈티지를 표기한다. 빈티지 샴페인은 전체 샴페인의 10~15%(많아야 40%)에 불과하다.
작황과 품질이 좋은 포도가 수확될 때에는 단일 품종만으로 빈티지 샴페인을 제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 수확량의 80%까지만 빈티지 샴페인을 제조하는 데 쓸 수 있다. 20%는 저장해놨다가 다른 해에 만든 것과 섞어 쓰도록 돼 있다. 와이너리마다 균일한 맛의 샴페인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란다.
빈티지가 표기되지 않은 샴페인은 샹파뉴 지방 법규에 따라 티라주(tirage, 퀴베에 당분과 효모를 투입하는 과정) 후 최소 12개월이 지나야 출하될 수 있다. 빈티지 샴페인은 포도 수확 후 3년이 경과해야 상품화가 가능하다. 병 안이든, 오크통이든 포도주는 어느 정도 세월로 맛이 순화돼야, 즉 숙성돼야 제맛이 나게 돼 있다.
샴페인은 흔이 좀 달달해야 제맛이라고 여겨진다. 일부 초심자나 여성 와인애호가는 단맛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드라이한 와인을 고급으로 쳐준다. 하지만 실제 마셔보면 지나치게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이나 샴페인은 재미가 없다는 사실도 무시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드라이한 맛부터 열거하면 브뤼 네이처(brut nature), 에스트라 브뤼(estra brut, extra brut), 브뤼(brut), 엑스트라 드라이(estra dry, extra dry)=엑스트라 섹(estra sec, extra sec)=엑스트라 세코(extra seco, 스페인어), 섹(sec, dry, seco), 드미 섹(demi-sec, semi- seco 스페인어), 두(doux, dulce, sweet) 순이다.
우리말로 순화하면 brut nature는 설탕을 전혀 가하지 않은, estra brut는 지극히 드라이한, brut는 매우 드라이한 또는 있는 그대로의(raw), sec는 드라이한 또는 조금 단(dry or slightly sweet)의 뜻을 가졌다. demi-sec은 상당히 단(fairly sweet), doux는 명백히 단(definitely sweet)으로 통한다. 샴페인 또는 화이트와인 라벨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표현은 주로 brut, extra dry, demi-sec 등이다.
대체로 와인 당도(g/ℓ)가 10(1%) 미만이면 브뤼, 10~30(1~3%)면 엑스트라 섹, 40~60(4~6%)는 섹, 60~80(6~8%)는 드미 섹, 80(8%) 이상이면 두라 한다.
세분해 조금 다른 기준으로 당도 0~3이면 브뤼 네이처, 0~6이면 에스트라 브뤼, 0~12면 브뤼, 12~17이면 엑스트라 드라이·엑스트라 섹·엑스트라 세코, 17~32이면 드라이·섹·세코, 32~50이면 드미 섹, 50 이상이면 두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유명 샴페인의 대표적인 제조사(브랜드)로는 모에 샹동(Moet & Chandon), 볼링제(Bollinger), 지에이치뮘(G.H.Mumm),테탱제(Taittinger),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랑송(Lanson), 크뤼(Krug), 폴 로제(Pol Roger), 폼므리(Pommery), 샤를 에드식(Charles Heidsieck) 등을 꼽는다. 몇대 샴페인 하우스에 든다는 말은 별 의미없다. 과거의 영광이거나 홍보역량에 따른 게 크다. 그저 마셔보고 취향에 맞는 것을 애호하면 그만이다.
스파클링 와인은 보통 식사 전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Appetizer)와인으로 이용되고 와인 칵테일의 베이스로도 많이 사용된다. 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약혼, 결혼 등의 행사에 애용된다.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은 은혼식, 금혼식 등 격조있는 행사에 쓰이는 게 일반적이다.
샴페인은 목이 좁고 긴 잔에 따라 마셔야 한다. 잔의 온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스템을 잡도록 한다. 잔 길이를 기준으로 3분의 2 정도까지 따르고 4~5회에 걸쳐 마시는 게 기본이다. 샴페인은 마시기 3~4시간 전부터 차게 해놓고 최소 20분 전부터 얼음통에 담가두는 게 매너다.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8~10도가 적당하다. 차게 마시겠다고 샴페인이나 잔을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오히려 거품이 나지 않고 미각도 저해하기 십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명재상인 윈스턴 처칠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패배했을 때에도 샴페인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기분이 우울하고 가라앉을 때에도 샴페인은 기분전환에 훌륭한 촉매 역할을 한다. 다만 빈속에 샴페인을 연거푸 두세 잔 들여마셨다가는 실수하기 딱 알맞다. 기포가 위벽을 두드려 알코올 흡수속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샴페인은 프랑스에서 주로 생산됐고 최근엔 질 좋은 샴페인이 스페인이나 미국 캘리포니아, 오스트리아 및 뉴질랜드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샴페인의 유행은 재력있고, 낯설며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다고 한다. 영국인이라고 맥주나 양주만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고개가 갸우뚱할 것이다. 초기에 단맛나는 샴페인이 지금처럼 드라이해진 것도 다들 영국인의 기호에 맞춘 것이라고 하니 샴페인 공부도 그리 녹록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