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다국적제약사의 일반약 가격이 한국이 해외보다 비싸다라는 보도로 소비자들은 다국적제약사가 한국을 봉으로 본다는 인식을 굳히게 됐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작년 11월 20일 일반의약품 16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11개 제품의 국내 판매가격이 더 비싸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에 대다수 기사의 제목은 자극적인 문구로 뽑아졌고 국내 외국약의 전반적인 약값이 훨씬 비싼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했다.
해외의 경우 한국처럼 의료보험이 잘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기능식품이나 진통제 등 일반의약품을 편의점,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편의점은 소형포장인 데 비해 대형마트는 덕용포장으로 한 통에 100정, 300정이 들어 있다.
국내외 다국적제약사 일반약 가격을 비교해보면 해외가 훨씬 비싼 편이다. 다만 덕용판매를 기준으로 정당 가격이 국내의 경우 외국보다 현저하게 높다고 느껴질 뿐이다.
제품 유통과정에는 물류, 포장, 판매원의 인건비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덕용포장은 정당 가격을 소형포장보다 훨씬 낮게 책정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은 일반약이 거의 대부분 소형포장인 데다가 약국에 반드시 지정 승합차를 이용해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미국 대형마트의 경우 10t 이상 대형트럭으로 물품을 운송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같은 제품이라도 소형포장은 낱개로 포장돼 가격이 더 올라가지만, 덕용포장은 개별포장이 아닌 통에 들어 있어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화이자제약의 ‘애드빌’(성분명 이부프로펜, Ibuprofen)은 한국에서 200㎎ 10정에 3000원에서 4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4정포장은 2.49달러로 2690원이다. 1정당 가격으로 비교하면 한국이 400원이지만 미국의 경우 673원이다. 애드빌은 남대문 수입상 등 수입물품 판매점에서도 꾸준히 판매됐는데 최근에는 해외에서 구매대행을 하고 있는 추세다. 구매대행으로 들어오는 대용량 제품은 200㎎ 300정이 8만원, 200㎎ 80정과 200㎎ 100캡슐은 5만원에 판매된다. 300정 기준 정당 266원이고, 80정 포장은 정당 625원, 100캡슐은 캡슐당 500원에 판매된다. 이 소비자가격엔 구매대행비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300정 대형포장을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캡슐당 단가가 그래도 한국이 미국보다 싸다고 볼 수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위궤양치료제인 ‘잔탁’(성분명 라니티딘, lanitidine)의 경우 한국에서 75㎎만 일반약이고 미국은 150㎎가 일반약으로 판매된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잔탁은 75㎎ 기준 정당 470원인데 반해 미국에서 판매되는 2정씩 포장되는 잔탁 150㎎은 3.09달러에 판매된다. 현재 환율 1081원으로 계산하면 3340원이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75㎎을 기준 4정(300㎎)은 1880원 수준으로 같은 용량의 미국 제품 2정(300㎎)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1500원 가량 싸다. 한국은 소용량임에도 미국보다 용량당 가격이 낮은 것으로 보면 포장비·물류비 등 자본주의 논리까지 감안해 평가하면 국내 다국적제약사 일반약 가격은 더욱 낮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연맹은 “국내외 가격 차는 다양한 유통채널에서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약국에서만 일반의약품 판매를 허용해 경쟁이 부족하다”며 “일반의약품의 안전성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충분히 이뤄진다면 판매채널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계제약사의 한 직원은 “약가를 산정할 때 선진국이 제일 비싸고 후진국으로 갈수록 싼 약가를 책정한다”며 “한국시장에 맞는 가격을 책정했는데 모든 외국계제약사가 한국을 봉으로 잡고 장사속을 펼친다는 시각을 조금 달리 봐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