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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남성도 거식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5-05-06 11:09:28
  • 수정 2015-05-08 09: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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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니섹스 패션에 슬림한 몸매 선호되며 증가 … 증상 앓아도 인정하기 싫어 악화 가속

미국의 남성 모델 고 제레미 길리처의 생전 모습, 왼쪽이 거식증으로 고통받을 당시의 모습이다. 출처 www.oddee.com

6일은 세계 노 다이어트데이(No diet day)다. 1990년 5월 6일, 무리한 다이어트로 숨진 여성을 추모하며 영국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현재 미국 독일 러시아 등 12개 나라에서 노 다이어트데이 행사를 벌이고 있다. 국내서도 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3년 전부터 이를 알리고 있다.

적당한 다이어트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지양해야 한다. 날씬한 몸매는 정작 몸 상태가 어떻든 건강한 이미지로 평가받는다.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위해 지나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다이어트는 더 이상 여성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날씬하고 멋진 외모가 하나의 사회적 스펙이 되면서 남성들도 관리에 나서고 있다. 다이어트 업체에 근무하는 컨설턴트 정모 씨(24)는 최근 남학생들의 다이어트 문의전화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개 청소년으로 ‘스키니진을 입고 싶은데 허벅지가 너무 굵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 ‘남자도 관리받을 수 있느냐’며 상담받고 싶어한다. 남성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정 씨가 다니는 업체는 여성전용 관리실에서 남녀가 모두 다닐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는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예쁜 남자’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다루는 ‘이상적인 남성’은 마른 몸매에 여성 못잖게 스타일리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스키니진, 타이트한 수트도 모자라 여름에는 숏팬츠까지 불티나게 팔리는 추세다. 남자들도 거울을 보는 시간이 늘고, 옷맵시가 좋지 않으면 실망하며, 다이어트 계획을 세운다.

남성패션지 GQ는 20년간 남성의 이상적인 몸으로 근육질 보디가 숭배받았지만 점점 관점이 바뀌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다이어트 등 몸매관리에 나서는 남성이 늘고 있다. 운동뿐만 아니라 식이조절까지 강력하게 병행한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심해지면 거식증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흔히 거식증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꼭 그렇지 않다’는 분위기다. 마른 체형의 남성 모델들이 인기를 끌면서 거식증에 걸린 남성도 급증하고 있다.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마른 몸매가 남성에게도 확산돼 거식증 남성을 야기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에단 호크, 빌리 밥 손튼, 데니스 퀘이드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도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다.

거식증은 ‘신경성 식욕부진’으로 체중 증가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망가뜨리며 단식에 나서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를 정도로 쇠약해지는 질환이다. 보통 정상체중보다 15% 이상 밑도는 체중감소가 나타나면 거식증으로 분류되며 체중이 정상 범위보다 30% 이하로 떨어졌을 때엔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환자 중 90%가 여성인 만큼 남성의 거식증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남성이라서 이 질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정신건강회보(Harvard Mental Health Letter)는 “남성도 여성처럼 거식증에 걸릴 수 있고 그에 따른 고통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남성 모델 제레미 길리처는 섭식장애로 폭식증과 거식증 사이를 오가다 2010년 38세로 숨졌다. 사망 당시 그의 몸무게는 30㎏에 불과했다.

여성 거식증 환자가 많은 것은 증상을 유발하는 데 여성호르몬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1995년 일본 히로시마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 여성의 뇌는 ‘보디 이미지’와 관련된 단어를 접할 때 남성의 뇌와 달리 반응한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하진 서울365mc병원 대표병원장은 “거식증은 환경·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며 “부모가 잘못된 식습관을 갖거나, 지나치게 운동하는 경우라면 성별에 구분 없이 자녀가 거식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는데 양육방식과 문화는 남성도 거식증에 걸리게 만든다”며 “예컨대 어떤 남성들은 자신의 근육이 빈약하다고 생각해 하루에 몇시간씩 근력운동에 집착하게 된다. 반대로 마른 몸매를 원하는 남성은 거식증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남성 거식증 환자수는 조금씩 늘고 있다. 영국 국민건강보험은 2012년 식이장애로 입원한 남성 환자가 10년 새 66%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160만 명의 섭식장애 환자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무엇보다 젊은 남성층 사이에 확산되는 남녀공용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면서 남성 환자가 급증한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10년 전 몸매관리 등으로 인해 거식증을 겪은 사람 중 남성의 비율이 5%에 불과했으며, 거식 및 폭식 등 식이장애도 10%에 그쳤던 데 비해 최근에는 2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섭식장애 환자는 7392명으로 기록됐고 그 중 남성은 1208명으로 나타났다. 약 3년간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남성이 생각보다 많다. 과거 모델활동을 하던 한모 씨(25)는 고교 시절 모델 에이전시에서 ‘조금만 더 슬림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다이어트를 지속하고 있다. 당시 186㎝에 70㎏이었던 그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65㎏까지 체중을 감량하고 모델 활동에 나서게 됐다.

그는 이후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도 스스로 살을 빼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졌다. 매일 야채 몇 조각만 먹고 운동해서 모델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을 뺐다. 에이전시는 몸무게가 57㎏까지 빠진 그를 해고했다. 이후 스트레스에 더욱 음식을 거부하게 되고 몸은 허약해져갔다.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체중은 45㎏이다. 한 씨는 “혈색이 좋던 피부는 푸른 빛을 띠고 여름에도 추워서 바들바들 떨고 있다”며 “감기는 달고 살고 걷는 것도 힘들어 꼼짝없이 누워지낸다”고 말했다. 심지어 1주일에 한번 꼴로 기절했다 깨어나기도 한다.
그는 “몸이 이 지경이 됐지만 계속 살을 빼고 싶다”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을 알지만 병원엔 절대 안 가고 싶다. 차라리 이 상태가 악화돼 죽는게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남성은 거식증 등 섭식장애를 어린 여성이나 앓는 병이라고 치부하면서 자신이 이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치욕스럽게 여겨 치료받기를 꺼린다. 이는 결국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어 주변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김하진 병원장은 “거식증 등 섭식장애는 치료로 정상체중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60% 안팎이며, 재발이 흔해 장기적인 치료가 필수적”이라며 “오랜 기간 음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성격에 변화를 가져와 짜증이 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몸에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심한 경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거식증 환자들은 영양상태가 매우 저조하기 때문에 골격근이 위축되거나 지방조직이 손실된다. 이밖에 탈모, 피부착색, 저혈압, 우울증 등이 초래될 수 있다. 부종, 심장마비가 따라오기도 하며 심한 경우 영양부족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김 병원장은 “오랫동안 구토 습관이 지속되면 치아와 식도, 위 등에 염증과 상처가 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거식증 등 섭식장애 환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주변의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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