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환자의 고통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로 처음 시작됐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이 질환은 근육이 위축되면서 운동기능에 장애, 호흡곤란 등을 유발한다. 진단 후 평균 수명이 3~4년에 불과할 정도로 치명적이지만 완치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승현 한양대병원 세포치료센터장(신경과 교수)이 바이오제약사 코아스템과 함께 개발한 줄기세포치료제가 루게릭병 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 줄기세포치료 분야 권위자인 김 교수는 1986년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9~2001년 미국 베일러대 의대 신경과 및 뇌신경연구소에서 연수받았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한양대 의대 신경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에 매진해왔다. 현재 대한의사협회, 대한신경과학회, 대한치매학회, 대한뇌졸중학회, 대한임상신경생리학회, 미국신경과학회, 세계신경과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월엔 난치성질환 세포치료센터 개소를 주도하며 희귀질환치료제의 개발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한양대병원 서관 7층에 자리잡은 이 센터는 임상시험용 줄기세포 제조시설을 갖췄다. 또 15명의 상주 연구진, 간호인력 8명, 루게릭병 전담 의료진 5명, 기초연구팀 10명이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세계 최초의 루게릭병 치료용 줄기세포치료제 ‘뉴로나타-알’은 2010년 1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1상 및 2상 임상시험을 거치며 안전성 및 유효성을 입증했고,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 및 시판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지난 1월엔 55세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첫 투약이 실시됐다.
김 교수가 개발한 뉴로나타-알은 루게릭병 환자의 골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약 4주간 분리·배양한 뒤 환자의 뇌척수강 내로 투여하는 세포치료제다. 신경보호 및 성장인자, 항염증인자, 면역조절인자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돼 병의 진행 경과를 현저히 늦춘다. 최근 실시된 2상 임상시험에서 신체기능 저하를 72.9% 개선했고, 투여 환자 중 81%에서 치료반응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희귀질환임에도 임상에 71명의 환자가 참여해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진행된 줄기세포임상시험 중 가장 대규모 임상으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루게릭병은 많은 원인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생하기 때문에 한 가지 목표를 타깃으로 하는 기존 치료제로는 증상을 개선하기 어렵다”며 “이에 비해 줄기세포치료제는 작용기전이 다양해 치료효과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루게릭병이 희귀질환이라는 점을 감안해 2상 임상시험 후 조건부로 시판허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상용화하려면 대규모 3상 임상시험이 필요하다”며 “비용 등 여러 면에서 제약이 많아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용 성형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줄기세포는 근육·뼈·내장·피부 등 다양한 종류의 신체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으며 미분화세포, 만능세포 등으로 불린다. 사람의 배아를 이용해 만드는 ‘배아줄기세포(복수기능줄기세포)’와 혈구세포를 끊임없이 만드는 골수 등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다기능줄기세포)’로 나뉜다.
이 중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는 구체적 장기를 형성하기 이전의 세포덩어리 단계로 뇌질환, 심장질환, 당뇨병 등 다양한 질환에 치료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윤리적 문제에 부딪혀 국내에서는 이 세포를 이용한 연구가 금지된 상태다.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는 뼈, 간, 혈액 등 구체적 장기의 세포로 분화되기 직전의 원시세포로 제대혈(탯줄 혈액)이나 다 자란 성인의 골수와 혈액 등에서 추출한다.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와 재생의학의 재료로 각광받고 있는 중간엽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 신경줄기세포(neural stem cell) 등이 포함된다.
증식이 어렵고 쉽게 분화되는 경향이 강한 대신 인체 장기의 특성에 맞게 분화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골수나 뇌세포 등 이미 성장한 신체조직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윤리논쟁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이용가치는 떨어진다.
2005년말 황우석 교수 사태로 국내에서는 줄기세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강하며, 주류 의학계 상당수의 의사들이 줄기세포의 효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줄기세포치료제는 개인의 몸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개인별 질환에 특화된 치료제를 만들 수 있어 환자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병의 근원적인 부분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루게릭 치료의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품목허가를 받은 줄기세포치료제는 5건으로 모두 성체줄기세포 기술에 기반한다.
루게릭병은 대표적인 신경계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침범해 사지 및 호흡근 마비가 비가역적으로 진행된다. 환자 대부분이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발병 후 2~5년내 사망하게 된다. 전세계에 약 35만명, 국내엔 약 2000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년에 10만명당 약 1~2명에서 발병하며 50대 후반부터 발생률이 높아진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1.4~2.5배 발병률이 높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품목허가를 받은 유일한 루게릭병 치료제는 사노피의 ‘리루텍(성분명 리루졸, riluzole)’이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루게릭병치료제의 잠재시장 규모는 1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최근 아이스버킷 챌린지 등으로 루게릭병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며 “1회성 이슈에 그칠 게 아니라 이같은 기부문화가 1년 이상 지속돼 다른 희귀질환 환자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줄기세포치료제는 작용 기전이 다양해 기존 치료제에 비해 루게릭병 등 희귀질환 치료에 더 도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까지 줄기세포 연구는 루게릭병, 저산소성 뇌질환,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질환에 국한됐지만 앞으로는 국내 유병률이 높은 심장질환, 폐질환, 간질환 등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대학은 물론 대기업의 투자와 정부의 자금 출연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현(金承賢)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프로필
학력
1986년 한양대 의대 졸업
1992년 한양대 의대 신경과 석사
1998년 한양대 의대 신경과 박사
1999~2001년 미국 베일러대 의대 신경과 및 뇌신경연구소 연수
경력
서울시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장
한국루게릭병협회 학술이사
대한신경과학회 고시위원장
대한퇴행성뇌질환학회 회장
現 한양대 의대 신경과 교수
한양대병원 세포치료센터장
수상내역
대한신경과학회 학술상
치매 극복 서울시장상
보건복지부 장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