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먹었는데 왜 나만 살이 찌지?” 가끔 남들처럼 먹었을 뿐인데 혼자만 살이 찐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적잖다. 이들은 ‘체질’ 탓을 하며 다이어트 의지를 접어버리지만 체질 탓이 아닌 ‘식습관’ 때문일 확률이 높다.
문제는 ‘씹기’다. 같은 양을 먹더라도 꼭꼭 씹어 먹는 사람과 입에 넣기 무섭게 음식물을 삼키는 사람의 몸매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많이 먹는 것 같아도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밀은 무엇이든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식습관에 있다. 한 패션모델은 ‘뷰티 비결’로 음식을 많이 씹어 먹는 것을 꼽았다.
무언가를 씹는 저작(咀嚼)활동은 음식물을 씹고 부수어서 위장에서의 소화활동을 돕는 기본적인 목적을 가진다. 이와 함께 씹는 행위 자체는 칼로리를 소비하도록 하고, 노화방지 호르몬을 분비하며, 근육을 이완시켜 오래 씹을수록 예뻐진다. 여성은 일일 평균 기초대사량 1100㎉를 기준으로 적어도 100번은 씹어야 제대로 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이선호 365mc비만클리닉 이사장은 “음식물은 씹는 순간부터 1차 소화가 시작된다”며 “꼭꼭 씹을수록 침이 많이 고이는데 이와 함께 아밀라제 등 소화효소의 작용 표면적이 넓어져 소화가 잘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살이 찐 사람 중 뭐든 허겁지겁 빨리 먹는 습관을 가진 경우가 적잖다. 이런 경우 매끼 식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결국 뒤돌아서면 ‘배고픈’ 상황이 반복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새로운 다이어트 패러다임으로 ‘씹기’를 강조하고 있다. 최소 100번 음식을 씹는 ‘100 바이트(Bite) 다이어트’가 부상하는 추세다. 굶지 않아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이어트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포만감은 위가 아닌 뇌의 만복중추에서 보내오는 신호”라며 “음식을 먹기 시작한지 20~30분은 지나야 대뇌에 그만 먹어도 좋다는 신호가 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급하게 밥을 먹으면 충분한 양을 섭취하더라도 식욕은 그대로 남는다”며 “많이 씹을수록 뇌 속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포만감이 드니 먹는 양도 자연스레 줄어든다”고 조언했다.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포만중추 중 하나가 히스타민신경계다. 저작운동은 이 신경계를 활성화시켜 포만감을 느끼도록 돕고,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체내 지방이 제대로 분해되도록 유도한다.
오래 씹다보면 식사 속도가 느려진다. 이는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막아 급하게 흡수된 영양소가 지방으로 쌓이는 걸 예방할 수 있다.
씹는 행위 자체는 칼로리를 소모하는데, 오래 씹을수록 쓰이는 칼로리도 높아진다. 일일 섭취 칼로리의 약 10%는 음식을 씹고 소화시키는 데 쓰인다. 1일 2000㎉를 섭취한다고 가정했을 때 잘 씹기만 해도 운동 없이 200㎉를 소비할 수 있다. 러닝머신을 1시간 걸어도 200㎉를 소비하기는 어렵다. 식사하고 소화시키는 과정은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이를 ‘식사에 의한 열 발생’(DIT, Diet Induced Thermogenesis)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같은 열량의 음식을 섭취하는 상황에서 한쪽은 오래 씹어 먹는 음식을, 다른 쪽에는 튜브를 연결해 죽 등을 위장에 공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잘 씹어 먹은 쪽의 DIT가 두배 이상 높았다. 튜브로 죽을 공급받은 쪽은 체지방이 훨씬 많이 증가했고, 오래 씹어 먹은 쪽은 DIT가 높아지면서 체중이 감량됐다.
이선호 이사장은 “일반적으로 모든 음식은 30회 이상 씹어 먹는 게 좋다”며 “단순히 ‘천천히 먹으라’는 게 아니라 ‘30회 이상’이란 수치를 지키는 게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오래 씹어 먹을수록 안티에이징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음식을 30회 이상 씹을 때 귀밑샘에서는 침샘호르몬인 파로틴이 활발히 분비된다. 이는 체내 활성산소를 줄여 노화를 방지하고 암을 예방하는 호르몬이다. 또 저작활동은 뇌와 얼굴 부위 모든 기관의 근육을 이완시키는 좋은 운동법이다.
하지만 매일 빨리 삼켜버릇하다가 갑자기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 약간의 변화를 주면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우선 흰 쌀밥 대신 현미나 잡곡밥을 지어 먹자. 쌀밥보다 단단한 식감에 오래 씹게 된다. 평소 ‘소화가 잘 된다’며 물에 밥을 말아 먹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오히려 소화효소가 물에 희석돼 고치는 게 좋다. 멸치, 건새우 등 뼈채 먹는 식품을 활용해 반찬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간식으로 아몬드 등 견과류나 깨 등을 섭취하는 게 좋다. 이들 식품도 딱딱해서 잘게 부수려면 씹는 힘이 필요하므로 자동적으로 씹는 횟수가 늘어난다. 채소는 부드러운 잎 부분과 질긴 줄기 부분을 함께 씹어주는 게 좋다.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젓가락을 활용하면 숟가락에 비해 한입에 넣는 음식물의 양이 줄어드니 상대적으로 밥 한 공기를 비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국 기존보다 천천히 식사하게 된다. 음식물을 입에 넣는 순간 젓가락을 내려놓으면 오로지 씹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어 빨리 먹는 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