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등장한지 10년도 채 안돼 현대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손가락 하나로 온갖 정보를 검색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기차표나 숙박 업소를 예약하는 등 기존에 컴퓨터나 TV가 하던 일을 대신함으로써 삶을 훨씬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건강을 해치기도 하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최근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청색광)’의 유해성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블루라이트는 380~550㎚ 파장에서 높은 에너지와 함께 발생하는 파란색 계열의 광원으로 가시광선의 일부다. 안과학은 블루라이트를 ‘고에너지 가시광선(High-Energy Visible Light, HEV Light)’으로 불리는 블루 및 바이올렛 색상의 400∼500㎚ 파장 수준 가시광선 스펙트럼’이라고 정의한다. 이 청색 불빛은 안구내 활성산소를 급증시켜 시각세포를 최대 80% 파괴하고 노인성황반변성(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 안구건조증, 망막 및 수정체 손상 등 각종 안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에서 실시된 동물실험에서 스마트폰, TV, PC 등 영상표시장치(VDT)에 사용되는 발광다이오드(LED)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를 각각 6시간씩 쥐의 시각세포에 직접 비춘 결과 시각세포의 80%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색 불빛은 세포의 70%가 손상됐으며, 녹색 불빛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2012년 미국 하버드대 메디컬스쿨은 “늦은 밤 블루라이트에 노출되면 불면증뿐만 아니라 암, 당뇨병, 심장병, 비만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7월에는 허핑턴포스트가 “어린이의 망막은 수시간 동안 블루라이트에 오래 노출되면 손상되기 쉽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블루라이트가 비만, 수면장애,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최근 일본 연구팀이 20세 전후 젊은층을 대상으로 심야에 블루라이트에 노출시킨 결과 수면유도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실험 시작 1시간 만에 약 50%, 2시간 후 6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멜라토닌 분비 감소로 인한 수면 부족은 우울증 위험을 높이고 에너지대사에도 악영향을 줘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을 유발한다.
프랑스 연구진은 여성의 심야노동(PC사용)이 유방암 발병 위험을 1.35배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블루라이트는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에서 나오지만 특히 스마트폰은 사용빈도가 잦고 눈과 거리가 가까워 인체에 주는 악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해 국내 10~54세 스마트폰 이용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4.1시간이나 됐다. 모바일 콘텐츠가 늘고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성능이 날로 발달하면서 스마트폰을 통한 청색광 노출 정도와 빈도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이 국립환경과학원과 국내 유통되는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 방출량을 측정한 결과 제품간 편차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회사의 스마트폰이라도 구형 스마트폰에 비해 신형 스마트폰에서 블루라이트가 더 많이 측정됐다.
연구팀이 스마트폰 밝기를 최대로 설정하고 불투명 지문방지 필름을 장착한 뒤 블루라이트 정도를 측정한 결과 아이폰4는 0.1575W/sr(와트/스테라디안), 아이폰5S는 0.1898W/sr이 측정됐다. LG전자의 G2와 G3는 0.2382W/sr과 0.2191W/sr의 측정값이, 삼성전자 갤럭시노트1과 노트3는 0.0192W/sr과 0.0470W/sr였다.
또 비슷한 시기에 출고된 스마트폰이더라도 제조사별로 블루라이트 방출량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G3의 블루라이트 측정값은 0.2191W/sr로 갤럭시노트3의 0.0498W/sr보다 약 4배 높았으며, 아이폰5S는 0.1898W/sr로 측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제품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실험을 통한 결과이긴 하지만 신형 스마트폰일수록 블루라이트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2011년 WHO에서 전자파를 발암가능물질(2B)로 분류하면서 휴대폰을 통한 전자파 노출이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른 만큼,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환경보건법 상 환경유해인자에 포함시키거나 환경정책기본법에 반영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블루라이트의 유해성을 전자파와 동일시하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
LG전자는 자사 제품이 경쟁사의 제품보다 블루라이트 수치가 4배나 높게 나오자 “조사 기준을 각 제품의 최대 밝기로 했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정확지 않다”며 “동일한 밝기로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는 G3와 갤럭시노트3의 블루라이트 수치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최근엔 LCD(액정디스플레이) TV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 양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올레드) TV보다 3배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LCD란 액체와 고체의 중간적인 특성을 가지는 액정의 전기적, 광학적 성질을 표시장치에 적용한 것이다. 액체처럼 유동성을 갖는 유기 분자인 액정이 결정처럼 규칙적으로 배열된 상태를 나타낸다. 이 분자배열이 외부 전기자극에 의해 변화되는 성질을 이용해 표시 소자로 만든다. 백라이트(LCD 뒤에서 빛을 내는 발광체 부분)를 통해 빛을 내 영상을 표현한다.
OLED는 백라이트에 의해 색상을 구현하는 LCD·LED와 달리 패널 자체에서 빛을 내는 영상 디스플레이다. LCD처럼 액정이나 컬러 필터 등이 없고, 얇은 OLED 패널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훨씬 얇고 가벼우며 재현력, 명암비, 응답속도 등이 월등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손꼽힌다. 가격이 LCD보다 다소 비싸 시장 규모는 아직 미미한 상태다.
현재 삼성이 세계 모바일용 OLED 시장 97%를 장악하고 있지만 TV용 OLED에서는 LG전자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TV의 면적이 커지면서 발산하는 블루라이트의 양도 비례해서 많아진다”며 “블루라이트의 인체 유해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눈을 피로하게 하는 것은 맞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블루라이트 수치를 낮추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기기 사용이 늘면서 최근 IT업계에선 블루라이트 차단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블루라이트 차단 스크린필터’ 앱은 출시된 지 반년도 안 돼 다운로드건 수 100만을 넘었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출시한 노트북 제품에 블루라이트를 감소시켜주는 ‘리더모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 액세서리 제조업체 아마스, 액정보호필름 업체 코메트, 제이엔엠코, 에스뷰, 뉴플러스 등은 블루라이트를 40~95% 차단해주는 액정보호필름을 판매하고 있다. 이밖에 청색광 차단 안경이나 백라이트의 미세한 깜빡임을 줄인 ‘플리커프리(Flicker Free)’ 모니터 등의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블루라이트 차단 원리는 간단하다. 디지털 기기 화면은 빨강·파랑·녹색 등 삼원색의 배합으로 보인다. 블루라이트 차단 프로그램은 이 중 파란색 계열 광원을 줄여준다. 때문에 화면색은 다소 어두운 노란색으로 보일 수 있다. 블루라이트를 차단해 화면이 어두워지면 옆자리 사람이 화면을 엿보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천연색의 밝은 화면을 봐야 할 때면 차단율을 줄여 원래 화면으로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블루라이트 차단 제품의 효과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직까지 블루라이트가 시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디지털 기기로 인한 악영향은 동공의 고정이나 눈을 깜빡거리는 횟수 감소 등 다른 요인이 많기 때문에 블루라이트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신재호 강동경희대병원 안과 교수는 “사람이 청색광을 받았을 때 눈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완벽히 연구된 것이 없다”며 “청색광이 반드시 안과 질환을 유발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균형 가천대 길병원 안과 교수는 “청색광 차단 렌즈를 쓰는 것만으로 눈의 피로감을 막기는 힘들다”며 “다만 이미 황반변성이나 백내장 등 안과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쓰면 증상 악화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액정보호필름이나 보안경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니터로부터 나오는 모든 유해 인자를 차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1시간에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모니터 높이를 눈과 맞게 조절하는 등 생활습관 교정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