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이 2000원 인상된지 약 100일이 지났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서민증세 논란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흡연 청소년들의 절도, 금품갈취, 담배셔틀, 교실내 전자담배 사용 등 각종 사회문제가 불거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에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 감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청소년 흡연율 감소는 박근혜정부 금연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지난해 10월 ‘담뱃값 인상의 목적이 서민증세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청와대는 “저렴한 담뱃값 탓에 청소년 흡연율이 높다는 연구가 수없이 많다”며 “담뱃값 인상은 흡연으로 인한 국민건강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약 10년 전엔 가격인상 정책이 청소년 흡연율을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2004년 12월 30일 담배가격 500원 인상 이후 흡연 청소년 6458명의 흡연 행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1029명(15.2%)이 흡연량을 줄였고, 2008명(31.1%)은 완전히 금연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금연 청소년 중 1222명(59.7%)은 9개월 이후에도 금연을 지속했다.
보사연은 “청소년은 성인보다 담배가격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담배가격 인상은 청소년 흡연 예방 및 흡연율 감소에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흡연 청소년들의 행태가 퇴행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올해 초 담뱃값이 두 배나 뛰자 일부 청소년들은 500~1000원씩 모아 담배를 사는 일종의 ‘공구(공동구매)’를 하기도 했다. 서울 소재 S고등학교에서 학생주임을 맡고 있는 윤모 씨는 “청소년들이 담배계를 만들기도 한다는 기사를 보고 막연히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다가 실제로 흡연 학생들을 적발하고 나니 담배 공동구매가 활발함을 새삼 깨달았다”며 “적게는 3~4명, 많게는 9~10명이 조금씩 돈을 모아 담배를 일괄 구입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담뱃값을 구하기 위해 돈을 빼앗는 불량 청소년들의 수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S중학교 교사 나모 씨는 “담뱃값 인상 뒤 학교 안, 오락실, 학원 등에서 용돈을 갈취당했다는 학생들이 속출해 학교 안팎에서 지도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담배셔틀’로 불리는 악질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는 몇해 전 이슈가 됐던 빵셔틀처럼 학교내 서열이나 힘으로 약한 학생을 협박해 돈을 주지 않고 담배를 사오라고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협박을 받은 학생이 담배를 사오지 않으면 폭력을 가하거나 왕따를 시키는 등 일부 청소년들의 도덕성이 심각할 정도로 낮다는 게 일선 교육현장의 전언이다.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전자담배도 청소년 흡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전자담배는 플로필렌글리콜 용액에 니코틴과 향료를 희석시킨 뒤 가열해 증기를 흡입하는 장치로 일반 담배와 달리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실제 흡연과 비슷한 기분을 준다. 냄새가 거의 없어 흡연 사실을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에 흡연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고교생 오모 군(18)은 “인터넷 등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할 때 별다른 제약이 없고, 액상을 직접 조제하면 담뱃값보다 훨씬 싸게 흡연을 할 수 있어 사용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담배는 2011년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돼 청소년들에게 판매가 금지된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전자담배를 청소년에게 팔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며 전자담배도 담배와 마찬가지로 단속 대상이기 때문에 금연구역에서 피우다 적발되면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오프라인 매장 등에서 별다른 제재 없이 청소년들에게 판매되고 있었다.
최근엔 디자인이나 색상이 세련된 제품이 출시돼 일부 학생들은 액세서리처럼 당당히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 심지어 아이가 담배를 끊길 바라는 마음에 전자담배를 선물하는 황당한 부모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 학생주임 윤모 씨는 “교실에서 전자담배를 갖고 놀다가 적발된 학생에게 어디서 구했냐고 추궁했다가 부모님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대답을 듣고 정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전자담배의 금연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오히려 중독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분자역학연구과 선임연구원(가정의학과 전문의)도 “전자담배의 효과 및 안전성과 관련해 지금까지 총 4편의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이 발표됐다”며 “이 중 전자담배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2건에서는 금연욕구가 감소한 것으로, 연구비를 받지 않은 2건에서는 금연성공률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각각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되거나 덜 해롭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므로 사용을 권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담뱃값은 올랐지만 청소년 흡연율은 크게 감소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담뱃값 인상 뒤 청소년 흡연율을 조사한 통계결과가 아직 없어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은 성인보다 니코틴 의존성이 강해 흡연 유혹에 쉽게 빠지고 금연은 더 힘들다. 최근 삼육대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정재훈 약학과 교수)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용역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하고 제출한 ‘청소년기 담배 노출과 성인기의 담배 의존성 간의 상관관계 연구’ 보고서에서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생후 4∼6주의 실험용 쥐와 성인기인 생후 8주 이상의 쥐를 대상으로 펌프와 피하주사를 통해 니코틴을 노출시키거나 장치를 통해 강제로 흡연시켰다. 이후 약물의존 반응을 확인하는 데 주로 쓰이는 시험방식인 ‘조건-장소 선호시험’과 ‘자가투여시험’을 통해 니코틴과 흡연의 의존 정도를 확인했다.
시험 결과 어리고, 높은 용량의 흡연에 노출된 동물군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의 의존반응이 나타났다. 자가투여시험에서도 어린 동물에서 흡연노출에 대한 의존 반응이 더 높았다. 특히 어린 동물에 2주 동안 낮은 용량의 강제 흡연을 실시하고, 어른 동물이 된 뒤 니코틴 자가투여시험을 실시한 결과 이 때까지 눈에 띄는 의존반응을 보이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니코틴과 흡연의 의존성은 어릴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고, 성인기까지 지속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재훈 교수는 “이번 동물실험은 흡연·니코틴 의존성이 성인기보다 청소년기에 더 강하게 나타나고 오래 지속돼 청소년기 흡연 노출 위해성이 더 클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소아청소년의 담배 노출과 흡연에 대한 위험을 알리는 과학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려면 담뱃값을 올리는 동시에 현재 허술한 담배광고 규제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연운동협의회가 지난해 5월 서울 5개구(강북구·서대문구·영등포구·양천구·구로구) 소재 중·고등학교에서 200m 안에 있는 151개 편의점을 조사한 결과, 한 편의점당 LED 광고판·담배모형 등을 포함해 평균 무려 6.3개의 담배 광고가 걸려있는 나타났다. 화려한 담배 광고를 청소년들이 편의점 내부 뿐 아니라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조사 대상 편의점의 90.1%(136개)에서 담배 광고의 외부 노출이 확인됐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은 ‘담배 광고는 지정소매인 영업소 내부에서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광고물을 전시·부착할 수 있다. 하지만 영업소 외부에 광고 내용이 보이게 전시·부착하는 경우는 허용되지 않는다. 즉 대부분의 편의점이 담배 광고 관련 법을 어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김철환 서울백병원 금연클리닉 가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을 담배로부터 보호하려면 담배 광고 외부 노출에 대한 보건당국과 경찰·검찰의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고, 근본적으로 내부 담배광고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