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의 일동제약에 대한 경영권 참여가 피델리티를 포함한 외국인 주주들의 일동제약 지지로 무산됐다. 서울 양재동 일동제약 본사 강당에서 20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녹십자가 제안한 허재회 전 녹십자 사장의 사외이사 선임건과 김찬섭 녹십자셀 사외이사의 감사 선임건이 부결됐다.
일동제약이 예탁결제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피델리티 자산운용을 포함한 외국인 주주 100%는 정기 주주총회 안건 중 녹십자의 주주제안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이날 주총장에서는 실제 표결이 이뤄지지 않고 녹십자도 이에 찬동했다.
주총은 일동제약 측이 과반수 이상의 의결권을 확보한데다 녹십자 측이 주주 다수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외이사와 감사선임 안건은 표결 없이 일동제약 측 원안대로 처리돼 이정치 대표이사 회장이 재선임됐고,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이상윤 전 오리온 감사가 각각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일동제약 측은 “녹십자 측의 인사를 찬성한 주주는 녹십자를 제외하고는 0.5%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일동제약이 주총을 앞두고 소액주주들의 위임장 확보에 전력을 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피델리티 등 외국인 지분까지 일동제약 측에 서면서 표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은 “주주들이 현 경영진을 지지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녹십자와 상생과 신뢰를 위해 많은 소통을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녹십자는 2대 주주로서 일동제약의 경영 건전성 극대화를 위해 권리 행사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녹십자 측의 한 변호사는 “감사는 무난히 통과될 거라 생각했는데 많이 아쉽다”며 “지금은 말을 아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녹십자 측은 사전에 외국인의 표결내용을 안 탓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사전대응이 안이했던 것에 대한 내부 지적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녹십자가 다른 복안을 만들어 놓았다는 소문이 있다”며 “한 걸음 늦어졌을 뿐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피델리티는 보유한 일동제약의 주식 250만6600주에서 25만2838주를 처분해 225만3762주를 보유하고 있다. 피델리티의 지분은 10.00%에서 8.99%로 줄었다. 피델리티는 일동제약과 녹십자가 경영권 갈등을 보이면서 주가가 오르자 차익을 챙겼다. 일동제약 주가가 1만3000원대일 때 사서 9월 보유 주식을 처분할 당시 1만8000원대를 넘어서며 30% 가까이 급등해 44억5700만원 가량의 차익을 거뒀고 24일 4만6000주 가량을 장내 매도할 당시 처분 단가가 2만원을 넘어서 3억2200만원 가량의 차익을 거뒀다. 피델리티는 수익을 중시하는 회사로 장기적으로 볼 때 일동제약의 주가가 올라야 차익을 거둘 수 있지만 이번 일동제약의 편을 들어주면서 주가를 20일 종가 기준 1만7500원으로 1300원 하락시켰다. 이는 녹십자가 주식을 추가 매입할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