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만 해도 예약하고 줄을 서야만 식사할 수 있었던 서양식 패밀리레스토랑이 몰락하고 있다. 호주 자연을 콘셉트로 내세워 1987년 미국에서 탄생한 아웃백은 한 때 전국에 100여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했지만 1년새 전체 매장의 30%를 철수했다. T.G.I 프라이데이, 세븐스프링스, 애슐리 등도 3년간 적게는 3%, 많게는 8%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이후 연인과 가족들의 대표적인 외식명소로 꼽히며 승승가도를 달리던 이들 브랜드는 급작스럽게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다.
서서히 사라지는 서양식 패밀리레스토랑의 자리는 이제 한식뷔페가 차지하고 있다. CJ ‘계절밥상’, 이랜드 ‘자연별곡’, 신세계 ‘올반’, 풀잎채 등 대부분 매장에서는 테이블이 부족해 소비자들을 돌려보낼 정도다. 평일 식사시간엔 최소 1시간, 주말에는 2시간까지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계절밥상은 농가상생이란 콘셉트를 내세워 2013년 7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국내 첫 한식뷔페를 선보였다. 지역 농가와 결연을 맺어 1년에 8회 이상 제철 메뉴나 토종 메뉴를 선보인다. 각 음식마다 산지와 생산자를 기재해 재료에 대한 신뢰성을 높였다. 매장 중앙에는 텃밭을 재배하고 매장에는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직거래 장터 형식의 ‘계절장터’를 만들어 장까지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금까지 전국에 9개 매장을 냈다.
자연별곡은 ‘왕의 이야기가 담긴 팔도진미’를 내세우며 한식뷔페 업체 중 가장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3월 1호점을 세운 이후 불과 1년만에 점포 수를 28개까지 늘렸다. 자연별곡이 계절밥상과 비교할 때 매장수를 크게 느릴 수 있었던 이유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정한 중소기업적합업종 규제의 예외조항 덕분이다. 위원회는 2013년 외식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은 연면적 2만㎡ 이상 복합다중시설이나 지하철역 출구로부터 반경 100m 이내에만 출점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기업이라도 본사와 계열사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는 자유롭게 출점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다. 이에 따라 NC백화점, 뉴코아아울렛을 보유한 이랜드는 순식간에 매장수를 확대할 수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식재료로 만든 100여가지 한식 메뉴를 제공하며, ‘오미자 셔벗’, ‘흑임자 아이스크림’, ‘단팥 퐁듀’ 등 전통에 현대를 결합한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다.
올반은 지난해 10월 대중에게 선보이며 이마트를 중심으로 매장 수를 늘리고 있다. 현재 4개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계절밥상, 자연별곡 등과 비교해 고급화된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내고 있다. ‘올바르게 만들어 반듯하게 차린다’는 이름 뜻처럼 가공식품을 최소화하고 두부, 나물, 장아찌, 식혜 등을 직접 만든다. 매장에서 갓 도정한 쌀로 밥을 짓는다.
풀잎채는 풀과 잎이 가득한 집이라는 뜻으로 자연의 건강한 맛을 그대로 느끼는 웰빙 콘셉트를 강조했다. 20년 전통의 한식 전문 업체로 대기업보다 유통력은 떨어지지만 전통과 토속적인 맛을 살린 메뉴로 전국의 21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오픈 키친 형태로 매장에서 ‘곤드레가마솥밥’ , ‘수제 함흥냉면’, ‘강된장’ 등을 직접 만들어 제공한다.
롯데는 올해 상반기 중에 별미가란 이름으로 국내 대기업 중 네 번째로 한식뷔페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동안 유통업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은 하지 않았지만 막강한 유통력을 바탕으로 손만 뻗으면 시장을 점령하는 사례를 봤을 때 별미가도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한식뷔페의 상승세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런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예정이다. 각 기업들도 성장세를 높이 평가하며 신메뉴 개발과 매장 확장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가격도 패밀리레스토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다. 국내 패밀리레스토랑 독보적 1위를 차지하는 빕스의 경우 평일 샐러드바만 이용해도 성인 1명당 2만원이 넘고, 스테이크 등 요리를 별도로 주문하면 가격이 3만원을 쉽게 넘는다. 하지만 한식뷔페는 1인당 1만2900원서부터 최대 2만2900원까지로 구성됐다.
한식뷔페의 이미지는 기존 한식당과 달리 고급스러움이 강하다. 하지만 쌀, 채소, 콩 등 재료는 워낙 공급이 많은 품목이라 원가가 다른 요식업보다 저렴한 편이다.
대기업이 진출한 한식뷔페 때문에 골목식당의 피해가 커진다는 지적도 있다. 대기업 한식뷔페가 들어오면 반경 100m 이내의 식당과 커피점은 손님이 쑥 빠진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매장 내에서 도수가 낮은 전통주만 판매하자 볼멘소리를 내는 주당도 늘고 있다. 매장에 밥만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즐기고 싶지만 원하는 술이 없어 아쉽다는 소리다. 매장 측에선 빠른 테이블 순환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정책이라 하지만 소비자의 성향에 맞는 주류를 구비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