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다이어트 랭킹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른바 구석기 다이어트로 알려진 ‘팔레오(Paleo) 다이어트’였다.
팔레오는 ‘구석기 시대의’라는 형용사 팔레오리틱(paleolithic)을 줄인 말이다. 미국의 진화의학자 로렌 코데인 박사가 처음 소개했다. 코데인 박사는 “구석기인은 단백질 섭취로 두뇌가 발달하게 됐고 질병 없이 건강했다”며 “수만년 동안 인간의 유전자는 변하지 않았지만, 현대인은 대사증후군 등 알 수 없는 문명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같은 차이를 연구하던 중 인류 진화와 건강의 비밀을 ‘음식’에서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구석기 다이어트는 원시인처럼 자연이 주는 단백질, 지방, 섬유질 등으로 균형잡힌 식단을 만들자는 게 포인트다. 살코기·생선·해산물·과일·비전분질 채소를 먹고, 농경생활 이후에 등장한 쌀·밀·콩·설탕·유제품·가공 콩류 등은 제한하면 된다. 즉 구석기인이 먹은 것은 먹고, 아닌 것은 먹지 않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는 팔레오 다이어터들을 위한 시장이 새롭게 창출되면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이 다이어트법이 인기를 끄는 것은 배고프지 않고, 고기를 맘껏 먹어도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존 다이어트는 음식량을 줄이는 방법을 활용했지만 구석기 식단은 음식보다 몸속에 쌓이는 지방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지방을 만드는 원인이 되는 음식물은 삼가지만 그렇지 않은 음식은 충분히 먹어 포만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 비슷하지만 식단 비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 구석기 다이어트의 영양 비율은 구석기인의 식단에 맞춰야 한다. 원시인들은 총 열량의 55%를 고기와 생선 등 동물성 식품에서, 45%를 과일과 채소 등 식물성 식품에서 얻는다. 이 비율만 지키면 식품군의 균형을 맞추거나 일지에 기록하고 무게를 재고 칼로리를 계산할 필요가 없이 얼마든 배부르게 먹어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구석기 다이어트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이어트의 적으로 여겨지던 육류를 맘껏 섭취할 수 있어서다. 흔히 고기는 ‘건강에 해로운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이같은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육류 자체가 아니라 가공된 육류가 나쁜 것이다. 가공육에서 발견되는 높은 포화지방산과 팔미트산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순수한 육류의 단백질 함유량은 80%, 지방 함량도는 20%다. 반면 베이컨·소시지 등 가공육은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75%, 단백질은 25% 미만에 그친다.
고기를 손질할 때엔 기본적으로 지방이 있는 부위를 없앤다고 생각하면 된다. 쇠고기는 눈에 보이는 지방을 칼로 긁어내거나 잘라낸다. 옆구릿살, 등심, 목살 등 살코기 부위가 적합하다. 돼지고기는 지방층이 두터워 칼로 긁어내는 것보다 잘라내는 게 편리하다. 허릿살, 갈빗살 부위를 고르는 게 좋다. 치킨 등 가금류는 껍질을 벗겨 지방을 제거하고, 닭가슴살, 닭안심살, 칠면조 가슴살 부위를 선택한다.
생선과 해산물은 고단백질에 오메가3지방산이 풍부해 건강한 식재료로 인기가 높다. 생선 속 오메가3는 부정맥으로부터 심장을 보호하고 뇌졸중, 당뇨병의 위험을 낮춰준다. 설탕·소금 등 현대사회에 들어서 많이 먹는 조미료는 넣지 않는다. 단맛은 베리류 등으로 충족하고, 짠맛은 천연조미료 속 미량의 나트륨으로 대체한다.
로렌 코데인 박사는 “구석기 다이어트는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자연의 섭리에 맞춘 다이어트로, 인간의 최종 진화형은 구석기 시대에 맞춰져 있다”며 “현대의 다양한 음식은 우리의 유전자 체질과 상충된다. 250만 년이 지났어도 유전자 체질은 기본적으로 구석기시대 조상들과 똑같다”고 강조한다. 이어 “현재 먹고 있는 음식과 전해져 내려온 유전자 체질의 부조화가 현대인을 괴롭히는 질병의 원인”이라며 “유전적으로 필요한 유형의 식단으로 되돌아가면 살을 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까지 되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석기 시대는 몇십만에서 몇백만년 이어져왔지만 농경으로 대변되는 신석기 문명은 1만년 전 출현한 게 고작이다. 따라서 팔레오 다이어트 지지자들은 “농업혁명은 오늘날 만연하는 비만과 만성질환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곡류와 녹말이 칼로리는 제공하지만 살코기, 과일, 채소로 구성된 과거 식단 속 필수영양소는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농경생활을 한 사람들은 선조보다 감염성 질환에 취약했고, 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며, 튼튼한 치아 대신 충치가 생겼고, 과거 넓적했던 턱은 갑자기 너무 작아져 치아가 겹쳐질 정도가 됐다. 또 산업혁명을 거치며 정제설탕, 통조림, 밀가루, 마가린, 쇼트닝 등 가공식품이 등장하면서 당뇨병·고혈압·심장병·비만에까지 시달리게 됐다.
이처럼 구석기 다이어트 지지자들은 ‘곡물은 소화를 저해하는 화학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자극적인 식품으로 버려야 하며, 유제품은 당분 함량이 높아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탄수화물이 달콤할수록 인슐린이 급증해 혈액 속 포도당을 유지시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뇨병이나 고도비만이 아니라면 인슐린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가 없는 주장도 있다. 구석기 다이어트는 집중적인 체중감량을 목표로 하거나 음식에 과민한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몸매를 다듬고 탄탄한 몸을 만들고 싶다면 적정량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전 보디빌딩 챔피언 닉 존스는 “근육을 만들려는 남자를 위한 구석기 식단에는 탄수화물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며 “구석기 다이어트를 독려하되 탄수화물이 포함된 주식을 갑자기 중단시키지는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을 하거나 에너지를 증가시키려면 탄수화물이 꼭 필요하다”며 “구석기 식단에 양질의 탄수화물 식재료를 적절히 섞어 섭취할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구석기 다이어트를 경험한 사람은 초기에 극도로 탄수화물을 절제하므로 체중이 빨리 감량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에너지가 부족해 원하는 ‘셰이프(shape)’를 만들지는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만약 몸을 키우고 싶어 근력훈련에 집중하는 사람은 구석기 식단에 탄수화물 식재료를 약간 첨가하는 게 좋다.
탄수화물은 근육을 유지하고 강하게 만드는 에너지원이 된다. 심리적인 안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한끼 식사를 할 때 쌀, 빵, 면 등을 섭취하지 않았다면 ‘부실하게 먹었네’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조금이라도 탄수화물을 함께 섭취해야 완벽한 식사라고 여기며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이다.
탄수화물 없이 한끼를 챙긴 사람은 식사를 했음에도 ‘먹어도 먹지 않은 듯한’ 허기를 느끼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 식욕이 더 자극될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다이어트를 이어나가려면 1일 체중 1㎏당 5~7g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게 권장된다고 설명한다.
어떤 목적에서든 구석기 다이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꾸준히 실천하는 게 좋다. 다만 항상 주변에는 각종 곡물, 유제품, 가공식품이 넘쳐나고 있어 이를 실천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식재료로 구석기 다이어트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 계획해둔 식단에 따라 도시락을 싸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