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사회·고령화로 증가세 … 약물치료·인지행동치료 병행 효과적, 맘 편히 먹고 움직여야
이웃끼리 다투다 흉기를 휘두르거나 엽총을 난사하는 묻지마 사건사고 이어지고 있다. 멀쩡한 길이 느닷없이 꺼져 커다란 싱크홀이 파이고, 성수대교 붕괴사고처럼 개발시대의 부실한 사회인프라는 언제 대형사고를 낼 지 모른다.
게다가 1997년 외환위기(IMF사태) 이후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늘었다. 물가상승을 한참 따라가지 못하는 중산층 이하 계층의 임금정체, 회사에서 언제 떨려날지 모르는 퇴직증후군,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극심한 취업난 등이 이런 불안함에 불을 당긴다. 학생들은 학업스트레스로, 노인들은 인구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곤궁과 건강 걱정으로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한민국엔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으로 병을 얻는 사람이 차츰 늘어가는 추세다.
불안감이 과도하면 病 … 공포증·강박증 등 크게 5가지로 나뉘어
살아가면서 불안과 공포는 정상적인 정서적 반응이다. 하지만 과도하고 비정상적인 수준에 이르면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증상이 초래되는데 이를 정신의학적으로 ‘불안장애’(anxiety disorder) 또는 ‘불안증’이라고 부른다.
마음이 불안하면 교감신경이 흥분돼 가슴두근거림·빈맥·혈압상승 같은 심혈관계증상과 초조·떨림·과호흡·설사·소화불량·어지러움·두통·졸도·절박뇨·빈뇨·손발저림·동공확장·발한 등의 신체적 증상이 흔하게 나타날 수 있다. 또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적 고통이 커진다.
불안장애는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범불안장애(general anxiety disorder, GAD)는 이유 없이 계속 불안한 증상이 상당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대부분 30대에 처음 발생하지만 10% 정도는 16세 이전에 발생한다. 청소년들의 불안장애 중에서 가장 흔해 약 85%가 범불안장애로 진단된다. 중류 이상의 사회계층에서 성취욕이 강한 가족의 첫째 아이에게 흔히 발견된다.
나이에 비해 조숙해 주위사람들의 매사에 간섭하고 걱정하며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지나치게 도덕적이거나 매사에 완벽을 추구할 때 그 영향을 받는다. 또래에게 인기가 없고 수줍음이 많으며, 사회적으로 위축되기 쉬어 학교거부증이나 시험불안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
범불안장애 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끊임없이 걱정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것이다.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받아들이는 인지적 왜곡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안절부절 못하고 긴장 속에서 벼랑 끝에 선 느낌, 쉽게 피로함, 집중하기 어렵고 멍한 느낌, 매사에 과민함, 근육의 긴장, 잠들기 어렵고 밤새 뒤척이는 수면불량 상태 등을 동반한다면 진찰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는 갑작스러운 불안감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정신장애다. 특정 장소(사람 많은 곳, 좁은 장소, 터널 등)나 특정 교통수단(지하철, 비행기 등)을 회피하는 게 특징적이다. 광장공포증도 이에 속한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지나친 강박에 의해 갑자기 호흡곤란, 가슴답답함, 심장박동 증가, 발한, 기절, 죽을 것 같은 생각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흔하다. 발작이 없을 때에도 발작이 재발할 것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니 마음 편할 날이 없다.
특정 사물이나 장소, 상황에 대한 공포증도 있다. 고소공포증, 혈액공포증, 뱀공포증, 곤충공포증, 주사기바늘공포증 등이다. 특정 사물을 대할 때 불안이 과도하게 상승해 겁을 집어먹거나, 울면서 주저앉거나, 의식을 잃게 되는 등의 행동이 나타난다.
불안해서 특정 생각 혹은 행동을 반복하는 강박증 또는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CD 또는 OD)도 불안장애에 속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이를 기억하거나 재경험할 때 느낄 수 있는 과도하게 불안감을 느끼는 정신·신체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6년새 30% 증가 … 노인들 ‘아프면 누가 날 돌봐줄까’ 걱정하다 불안 상승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불안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은 2008년 39만8000명에서 2013년 52만2000명으로 1.3배 증가했다. 2013년 기준 연령대별 진료인원은 70대 이상이 인구 10만명당 305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60대(2147명), 50대(1490명) 순으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70대 이상 노인 진료인원은 60대 이하(877명)에 비해 3배 이상 많았다.
윤지호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엔 과거와 달리 자신의 노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식들만을 위해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지 못했던 노년층이 현실을 직면하면서 불안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며 “젊은 사람들은 살기 바쁘고, 그들을 키워냈던 노인들은 정작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노인층은 경제적으로 곤궁하지만 신체기능이 상실됐을 때 돌봐줄 사람이 있을지 걱정하면서 불안이 상승한다고 한다.
불안 적응에 취약한 유전자 있어 … 뇌내 신경전달물질 불균형도 원인
불안장애의 요인은 복잡하고 규명되지 않은 게 많지만 불안장애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이밖에 정서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뇌내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세로토닌·감마아미노뷰티르산(GABA)의 부족 또는 과다, 뇌영상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뇌의 기능·구조적 변화를 포함한 사회심리학적 측면, 과거의 경험 및 현재의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인지행동 메카니즘의 고장 등을 꼽을 수 있다.
항불안제·항우울제 약물치료에 인지행동치료·뉴로피드백 병행하면 효과적
불안장애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벤라팩신 등) 등의 약물에 비교적 잘 반응하며, 단기간에 치료효과를 볼 수 있어 널리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항불안제는 즉각적으로 불안 증상을 경감하기 위해 사용되며, 항우울제는 그 효과가 나타나는데 2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인지행동치료는 환자에게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이나 상황에 대해 자주 노출시켜 스스로 상황에 대해 인지하도록 도와 불안증상 및 행동을 교정한다. 약물요법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으나 이에 버금가는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물치료에 인지행동치료, 뉴로피드백 치료를 병행하면 효과가 좋다. 뉴로피드백 치료는 불안·긴장 상태가 되면 뇌파 중에 과활성화되는 하이베타파를 정상화시키도록 스스로 훈련하는 뇌파 교정치료다.
윤 교수는 “불안장애를 느끼는 환자에게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며, 불안과 공포의 감정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순기능도 한다고 믿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과도한 스트레스나 심리적외상 등이 병적불안을 유발하므로 평소 적절한 휴식, 취미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안장애를 앓는 사람 중 스스로 정신과적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고 있더라도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경우가 적잖다. 윤지호 교수는 “주변에서 불안장애가 의심되는 사람에게 불안장애가 아닌지 스스로 인터넷 등으로 검색해 보도록 유도하고,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안장애를 이길 수 있는 마음가짐과 행동수칙
불안장애는 한마디로 쓸데 없이 과도한 걱정을 하고 이것이 지나치고 장기화돼 몸과 맘에 병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현실에 불안함을 느꼈을 때 이를 가라앉히려 수시로 노력해야 한다.
우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사고)은 정서(기분, 감정)을 좌우하고 행동으로 표출된다. 비관적이고 자살하고 싶은 생각에 빠진 사람은 매사 우울하고 처져 있다. 이런 경우 수면이 지나치게 늘거나 감소하고 무기력한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인지행동치료로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면 정서가 밝아지고 활기차게 행동하게 된다.
사고가 정서와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이런 게 어려우면 행동을 앞세우면 된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매일 10분 이상 햇빛을 쬐고, 적정한 강도로 운동하면 우울감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명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중에 노출되는 직업군이라도 운동선수는 연예인에 비해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본래 운동선수의 마음이 건강해서라기보다는 튼튼한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는 그냥 길러지는 게 아니라 의미있는 경험을 해보려는 동기를 지니고 새로운 경험이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확신을 가져야 비로소 함양된다. 자신에 대한 완벽주의를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지위와 소비수준을 인격과 동일시하던 풍조를 벗어던져야 한다.
마음을 편히 먹어야 한다. 60대 후반 여성이 자주 걸던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병원을 찾았으나 염려하는 ‘치매’ 대신 ‘불안장애’란 진단을 받았다. 겨울도 싫고, 밤도 무서운 범불안장애가 전혀 문제 없는 기억력을 잡아먹어 마치 치매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게 한 것이었다.
마음을 편히 먹으려면 욕심을 버리고 번잡한 생각을 줄여야 한다. 세상과 맞서 전부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측면에서 세상에 맞게 적응토록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혼자 감당하려 해서는 안된다. 지혜가 담긴 양서를 읽으며 생각의 폭을 넓히도록 한다. 의심은 불안장애를 키우고, 믿음·사랑·지혜는 이를 잠재운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해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토록 한다. 자신을 믿어 줄 가족과 친구를 만든다. 친구·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대화를 나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도록 한다. 신뢰할 사람이 없는 것은 불안장애를 유발하거나 증폭시키기 마련이다.
불안감과 불안장애는 다르다. 불안은 정상적인 감정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친구를 찾고, 가족을 형성해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려 한다. 불안장애는 정상적이어야 할 일상의 불안감이 과도하게 증폭돼 야기된 문제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부정하는 생각에서 불안장애가 시작되므로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깊게 호흡하는 ‘근육이완·호흡법’과 명상을 통해 불안한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본인의 상태를 자각하고 수용하는 ‘마음챙김 명상’ 등을 실천해볼 수 있다.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깊게 호흡한다. 이어 손·발·팔·다리·어깨·목의 근육에 차례로 힘을 꽉 준 뒤 7초 간 멈췄다가 서서히 힘을 뺀다. 하루 2회 정도만 실시해도 효과적이다. 종교생활도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된다.
하루에 30분 이상 햇볕을 쬔다. 우울과 불안이 계속되면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솔’이 과도하게 분비돼 몸과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이럴때 산책을 하면 ‘세로토닌’ 분비량이 증가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원예나 주말농장 다니기, 걷기, 등산, 수영, 사이클 등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으로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체력을 비축하자.
범불안장애 자가진단법
지난 2주간 아래의 이유로 얼마나 자주 괴로웠나?
과민·불안·초조한 느낌이 들었다.
걱정을 멈추거나 조절할 수 없었다.
여러 일들에 대해 너무 많이 걱정됐다.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매우 초조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쉽게 화나거나 흥분됐다.
무서운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웠다.
빈도 점수(전혀 없었다 0점, 며칠간 괴로웠다 1점, 절반 이상 괴로웠다 2점, 거의 매일 괴로웠다 3점).
각 항목별 합계가 10점 이상이면 의사 진단 필요. <자료 미국의사협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