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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 꼴불견 1위 ‘쩍벌남’에 대한 고찰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2-26 08:34:53
  • 수정 2015-03-04 19: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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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식문화, 지배 공간 넓히려는 유전학적 본능 원인 … 고환 건강엔 도움, 어깨너비 만큼만 벌려야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쩍벌남의 원인으로 좌식문화, 지배 공간을 넓히려는 유전학적 본능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두 자리를 차지한 ‘쩍벌남’을 쉽게 볼 수 있다. 10년 전 인터넷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신조어인 쩍벌남은 대중교통 이용시 기피대상 1호다. 지난해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 지하철 꼴불견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여성에게는 성적인 수치심까지 들게 한다. 몇년 전 인터넷을 달궜던 ‘쩍벌남 응징 동영상’은 이런 여성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이 영상은 한 남성이 다리를 벌리고 있고 옆에는 한 여성이 구석에 몰리듯 불편하게 앉아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여성은 내리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이 열리자 하이힐 신은 발로 남성의 무릎을 한 차례 가격 하고 내렸다. 예상하지 못한 여성의 행동에 남성은 그대로 가격 당했고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듯 웃음을 보이며 영상이 끝난다. 홍보를 위한 자작 영상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네티즌들, 특히 여성들은 “속이 다 후련하다”며 환호했다.

이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하루 이용객만 610만명에 달하는 미국 뉴욕 지하철을 운영 중인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는 지난해 12월부터 ‘쩍벌남(man-spreaders) 퇴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지하철 객차 안에 부착된 포스터는 다리를 벌리고 앉은 승객을 향해 ‘아저씨, 다리 좀 그만 벌리세요. 공간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다른 포스터에는 ‘예의는 중요합니다. 예절은 쾌적한 지하철을 만듭니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왜 일부 남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과도하게 벌리고 앉을까. 쩍벌남의 원인을 조사한 국내 연구결과가 있다. 자생한방병원이 최근 남성 내원자 204명을 조사한 결과 58명이 자신이 쩍벌남이라고 답변했고, 이 중 79%에서 골반변형이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평소 온돌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전통 좌식생활을 하는 사람이 의자나 소파 등 서구식 좌식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쩍벌남인 경우가 1.7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다리를 과도하게 벌린 자세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려는 남성 유전자의 생물학적 발전 양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자신의 지배 공간을 넓혀서 더 많은 여성 유전자들을 유인하려는 유전학적 본능이 발현된 형태다.
행동심리학적으로는 여성의 경우 의도적으로 몸을 작게 보이면서 ‘연약하다’ 혹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표현하지만 남성은 작아도 크게 보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쩍벌남 같은 민폐가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은 같은 남성들에겐 ‘너, 나한테 당해볼래’라는 무언의 위협이나 과시욕을 내포한 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남성은 신체 구조상 다리를 약간 벌리고 앉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깨 너비 이상은 다리를 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인혁 자생한방병원 척추디스크센터 원장은 “쩍벌남 자세가 습관화되면 골반과 관절이 벌어진 상태로 고착되고, 허벅지 안쪽 근육이 늘어나면서 다리를 밖으로 당기는 둔부근육이 짧아지는 근육 변형이 나타나게 된다”며 “이런 경우 다리를 모으고 앉더라도 다리 바깥쪽 근육이 당기고 불편해 계속 다리를 벌려 앉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라이프스타일도 쩍벌남의 원인 중 하나다. 이 병원의 설문조사 결과 쩍벌남 204명 중 앉을 때 양반다리 자세를 취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72.5%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두 다리를 앞으로 쭉 펴고 앉거나(15.6%), 무릎을 한쪽만 세우고 앉는 경우(5.8%)가 뒤를 이었다.

좌식생활을 하면 골반과 관절 사이가 넓어져 의도하지 않게 다리가 벌어지게 된다. 다리를 벌리고 앉는 사람, 이른바 ‘쩍벌남’은 상체를 반쯤 기울여 등받이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자세는 허리에 심한 자극을 주고 척추 모양을 변형시킨다.
또 다리를 습관적으로 벌리고 앉으면 골반이 변형돼 척추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김재건 안양윌스기념병원 원장은 “작은 습관을 바꾸면 척추가 더 건강해진다”며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을 땐 엉덩이를 깊숙이 당겨 앉아 척추가 굽지 않도록 하고, 스마트폰을 볼 땐 고개를 들고 폰을 세운 채 시선과 같은 높이에서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리는 어깨 너비 정도로만 벌리고, 다리를 꼬거나 양반다리하는 습관은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이도 쩍벌남 자세를 유발·고착화하는 원인이다. 자생한방병원 조사 결과 쩍벌남 중 30대가 18.1%, 40대가 23.5%, 50대가 43.7%, 60대 이상이 57.1%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다리를 벌려 앉는 경향이 높았다.
젊은 사람보다 50~60대 이상에서 쩍벌남이 많은 이유는 노화로 근력이 줄어 다리를 모으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상체를 곧게 펴고 다리를 모으기 위해서는 근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근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쩍벌남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나이 든 남성은 배가 나오고 체중도 더 무겁다. 노화로 약해진 골반 근육은 뱃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한 압력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다리를 벌리게 된다는 설명도 있다.

쩍벌남의 좋지 않은 자세는 단순히 골반과 근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리를 과도하게 벌릴 때 상체의 모습을 조사한 결과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는 남성은 20.6%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반쯤 눕듯 등받이에 기대거나, 허리를 앞으로 숙인 자세로 앉았다. 거의 대다수의 쩍벌남들이 골반뿐만 아니라 척추에도 좋지 않은 자세로 신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자세는 척추의 만곡에 영향을 주거나 허리에 심한 부하를 줘 척추 모양에 변화를 일으킨다. 심한 경우 척추 및 관절의 디스크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남성의학 측면에서는 쩍벌남 자세가 건강에 도움된다고 한다. 한 비뇨기과 전문의는 “쩍벌남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남성만의 신체구조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며 “남성의 고환은 체온보다 1~4도 낮아야 정자를 활발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가능한 열을 발산하는 게 좋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환은 정자를 생산하고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크기는 약 4㎝로 음낭이라 불리는 피부의 주머니에 들어 있다. 고환 안에는 ‘곡정세관’으로 불리는 정자를 생산하는 수백개의 작고 나선형으로 된 관이 존재한다. 고환을 감싸고 있는 음낭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혀있는 것도 고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여름처럼 더울 때에는 주름이 펴지면서 표면적을 최대한으로 넓혀 열을 발산하는 것이다. 반대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한겨울에는 주름이 바싹 잡히면서 최대한 열방출을 막게 된다.
일부 남성은 사타구니에 완선 등 피부질환이 있어 통풍을 위해 다리를 벌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피부질환이 심할 땐 살갗이 마찰되는 것만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고 해서 쩍벌남 등 민폐 행위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몇년 전엔 개그맨 최효종 씨가 개그콘서트 ‘애정남’ 코너에서 “지하철에서 얼마나 벌리고 있어야 ‘쩍벌남’이라고 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벌린 다리 사이로 사람 한 명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러면 쩍벌남이에요”라고 밝혀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시설에서 에티켓은 선진국 시민이 가져야할 기본 소양으로 앉을 때 다리를 어깨 너비 이상 벌리는 것을 삼가는 등 매너를 지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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