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가 일동제약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다시 시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 6일 주주제안서를 통해 자사가 추천하는 감사 1명과 사외이사 1명의 인사를 이사로 선임해줄 것을 일동제약 측에 요구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로 예정된 주주총회 이사 선임안을 두고 두 회사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일 전망이다. 일동제약은 9일 녹십자의 등기 임원 선임 요청안과 관련, 성명서를 내고 “녹십자는 지난해 1월 차입과 계열사 동원을 통해 일동제약 주식을 매입,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반대한 바 있고, 이번에는 일동제약의 2014년 실적을 비판하며 예고 없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하는 등 일련의 권리행사가 적대적 M&A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런 주주권리행사는 일동제약의 중장기 전략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므로 적대적 행위가 아니라는 구체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입장과 조치를 요구한다”며 녹십자에 16일까지 답변을 요청했다.
녹십자는 2012년 일동제약 지분율을 15.35%로 늘려 2대 주주에 올라선 후 지난해 1월 추가로 주식을 매수해 지분율을 29.36%까지 높였다. 녹십자는 지난해 1월 일동제약의 임시 주총에서 기관투자자 피델리티와 함께 회사 분할안에 반대표를 던져 지주사를 설립하려던 일동제약의 시도를 무산시켰다.
녹십자의 한 관계자는 “시장자본주의가 인정되는 경제현실에서 회사는 주주의 지분대로 표결에 응해 결과에 따르면 되는 것 아니냐”며 “해외 같으면 표결로 끝날 얘기를 국내에서는 이상한 논리로 풀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일동은 그동안 기회가 닿을 때마 ‘상호간의 신뢰구축’, ‘녹십자의 책임 있는 모습’,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한 협의’ 등을 운운하며 녹십자의 주총 표 대결에 극렬한 거부감을 표명해왔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올해에도 표 대결을 각오하고 있다”며 “녹십자가 상호 협의 없이 사실상 경영 참여에 나선 것은 비신사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업계에서는 백신·혈액제제 등 바이오 부문의 절대적 강자인 녹십자가 2001년 상아제약을 인수하면서 일반약 부문을 흡수했지만 의약분업으로 탄력을 받지 못했고, 전문약 부문이 여전히 부족해 일동제약을 반드시 합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합병이 성공할 경우 녹십자는 국내 1위 제약회사가 되면서 전 분야 의약품을 갖춘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