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정모 씨(28·여)는 지난해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적잖이 놀랐다. 평소 특별히 지나치게 음주를 즐기는 것도 아닌데 유독 간수치만 눈에 띄게 높았기 때문이다. 2차 검진 후 의사는 정 씨에게 “약을 써야 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니지만 20대 여성 치고 많이 높은 수치”라며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웬만하면 술을 마시지 말라”는 처방했다.
정 씨는 “폭음하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 생각해 간 문제는 나와 전혀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겼는데 검진 결과에 당황스러웠다”며 “다행히 2차 검진에서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심하지 않고 간 건강에도 신경써야겠다”고 말했다. 건강검진 간 수치표가 의미하는 내용과 간건강 관련 알쏭달쏭했던 건강관리법에 대해 알아본다.
‘평소 이렇다 할 증상 없는데’ … 간건강 적신호,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 대부분
통계청 조사 결과 간장질환은 40~50대 남성 사망원인 3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간은 전체의 3분의 2가 손상돼도 정상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아주 극심하게 손상되기 전까지는 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침묵의 장기’로도 불린다.
간건강 적신호는 주로 검진에서 ‘높은 간수치’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는 만큼 간수치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에서 중요한 검사요소로 볼 수 있다.
다행히 간질환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도 간에 과부하가 걸리면 체내 독소가 쌓이고 지방대사가 원활치 못하게 돼 평소 간 건강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건강검진에서는 기본적으로 △AST(아스파르테이트아미노 전이효소, 옛 GOT) △ALT(알라닌아미노 전이효소, 옛 GPT) △r-GTP(감마GTP) 등 3종류의 간수치검사를 시행한다. 검사 결과 이상이 보이면 정밀검사를 시행한다. 정밀검사시 필요에 따라 바이러스성 간염(A·B·C형), 만성간염, 알코올성간염, 지방간, 간경변, 간암 등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AST·ALT는 아미노산 생성에 관계는 효소의 일종으로, 간세포가 손상받는 경우 혈중으로 방출돼 수치가 높아진다. AST는 0~33 IU/ℓ, ALT는 0~38 IU/ℓ 가 정상치로 가능한 정상 범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벗어나면 다양한 간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어떤 수치 많이 올랐나 체크해봐야 … AST 수치, 근육·신장 문제 있어도 높아져
어떤 수치가 얼마나 올라갔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ALT는 간에 특이적인 효소로 이 수치가 올라가면 간 자체에 이상이 있다는 의미”라며 “반면 AST는 간 말고도 근육, 콩팥 등에도 존재하므로 이 수치는 간질환뿐만 아니라 신장에 이상이 있거나, 심한 운동으로 근육이 손상됐을 때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 자체가 손상되거나 알코올성간염인 경우 ALT보다 AST가 더 많이 상승하고, 급성간염은 두 수치 모두 급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B·C형 간염 등 바이러스성 간염에 의한 만성 간세포 손상에서는 AST수치보다 ALT수치가 더 상승한다.
r-GTP는 아미노산 대사에 관계하는 효소로 간·신장·췌장 등에 많이 존재한다. 이는 알코올이나 약제 등으로 간세포가 손상되거나 암·결석으로 담관이 막혔을 때 혈액 속으로 방출된다. 정상치는 남자 56 IU/ℓ, 여자38 IU/ℓ 이하로 특히 알코올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수치가 높은 것은 대개 ‘알코올 섭취’가 원인이 된다.
하지만 평소 폭음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피로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간 수치가 높다면 ‘지방간’을 의심해볼 수 있다. 지방간은 꼭 술을 많이 마셔야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 중 복부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등을 갖고 있다면 지방간에 노출될 수 있다.
간혹 비만이나 피로가 문제가 된다고 단정하지만 이들 자체가 간수치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안상훈 교수는 “비만이 생기면 비만에서 비롯된 지방간이 유발되기 쉬운데, 이때 형성된 지방이 간에 염증을 일으켜 수치가 높아지는 것”이라며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염증을 유발하는 만큼 아주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만약 체중이 많이 나간다면 체중조절을 하는 게 간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비타민C 등 영양제, 많이 먹으면 ‘간에 무리준다’? … 오히려 간세포막 안정시켜
사실 간을 건강하게 하는 데에는 어느 질환이나 그렇듯 ‘잘 먹고, 잘 쉬고, 잘 운동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현대인은 현실적으로 이를 수행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때 활용하는 게 건강기능식품이다.
간이 나쁜 사람들은 비타민C 등 건강기능식품조차 맘놓고 먹지 못한다. 이들은 혹시나 영양제를 많이 먹으면 간에 무리를 줘 오히려 간 건강에 해로울까봐 걱정해서다. 하지만 이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비타민제가 간에 직접적으로 좋다, 그렇지 않다는 내용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복용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안 교수는 “비타민 B·C·E는 모두 간에 좋은 성분”이라며 “간에 해롭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고 비타민제는 간의 재생을 돕고, 간세포막을 안정시키며, 오히려 간의 염증을 가라앉힌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메가도스 등 고농도 비타민C를 과량 복용시 설사 등 소화기에 문제가 일어날 수는 있지만 간에는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백옥주사’ 맞았더니 간수치 좋아졌다고? ‘근거 없음’
최근 미용업계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는 게 ‘백옥주사’ 등 미용주사다. 백옥주사는 글루타치온을 주성분으로 하며, 말 그대로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글루타치온은 본래 간 치료제로 활용돼왔으며 이는 간 해독작용을 돕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일종의 항산화제 기능을 한다. 간 치료 과정에서 멜라닌을 억제하는 작용이 일부 나타나 환자의 피부톤이 일시적으로 밝아진 것을 발견했고, 이후 미용시술에 쓰이게 됐다.
직장인 조모 씨(28·여)는 “백옥주사를 맞은 뒤 한달 전 간검사 수치에 비해 최근 검사 결과 수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며 “미용 효과는 그리 눈에 띄지 않았는데 건강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맞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글루타치온은 몸 속 항산화를 돕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므로 몸에 해롭지 않다”며 “다만 간에는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는 아직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백옥주사가 간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인 근거일 뿐, 임상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피임약·진통제 등 ‘약물’ 달고 사는데 괜찮을까?
어쩌다보니 약물을 달고 사는 사람이 적잖다. 두통 등 생활에서 나타나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를 수시로 복용하거나,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 등이다. 일반인은 큰 상관이 없지만 간질환 환자는 유의해야 한다. 간수치가 더 높아지거나 염증이 크게 생겨 위험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들 외에도 어떤 약물이든 간수치를 올리고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를 ‘약물유발성 간염’이라고 부른다. 특히 감기약으로 주로 먹게 되는 항생제는 실제로 간수치를 높이는 경우가 꽤 있다. 소염제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만 올릴 수 있다.
모든 약은 간수치를 높일 우려가 있으므로 만성적인 간 질환을 겪고 있거나, 이전에 이들 약을 먹고 문제가 있었던 사람은 복용 전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약제로 인한 독성 간염으로 진단된 경우 원인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중단하면 대개 정상 기능으로 회복된다.
밀크시슬, 영양제만 먹으면 간겅간 괜찮아진다고? … 건강한 사람의 예방책으로는 OK
최근 간건강기능 보조제로 떠오르는 게 ‘밀크시슬’이다. 실제로 밀크시슬엔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제 속 ‘실리마린’이 포함돼 있어 도움이 된다. 다만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의약품은 간에 직접 효과를 수 있게 함량도를 높인 것이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성분은 같아도 함량도가 낮아 개선 효과는 없다.
안상훈 교수는 “간수치가 높아 간을 다시 건강하게 되돌리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며 “간 수치 높지 않지만 예방책으로 밀크시슬 등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하는 것은 권할 만하다. 문제는 간수치가 높은데도 자가치료하면 약물유발성 간염 등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등 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레드와인은 괜찮다? ‘건강한 간 상태’ 가진 사람에게 한정된 것
간이 나빠져도 ‘술은 포기 못하겠다’는 애주가가 적잖다. 간질환자는 반드시 금주해야 하고, 지방간을 가진 사람은 금주와 함께 체중을 조절해야 한다. 전용준 다사랑중앙병원장은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가 술을 끊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간조직 소견이 좋아지고, 간경변의 발생률이 떨어지며, 간경변에 의한 합병증도 줄어든다”며 “간암 발생까지 낮출 수 있으므로 단주만이 자신의 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너무 마시고 싶은 애주가 중에는 ‘레드와인은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레드와인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술 아니냐’고 쉽게 생각한다. 실제로 2008년 미국에서는 ‘레드와인이 심장뿐만 아니라 간에도 긍정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전 병원장은 “이같은 와인의 긍정적인 효과들은 ‘몸이 건강한 상태’라는 전제 하에 적용되는 것”이라며 “간이 나쁜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술과 멀리하는 게 상책”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