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뿐만 아니라 아기에게도 악영향 … 모유수유 중에도 항우울제 치료 가능
김태 강동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이를 출산한지 반년이 다 돼가는 전업주부 이모 씨(30)는 최근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혼자 소리지르거나 눈물을 흘리는 일이 늘고 있다. 젖을 물려도, 기저귀를 갈아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아기 때문이다. 특히 늦은 밤과 새벽 아이의 그칠 줄 모르는 울음으로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다. 아이가 울 때마다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라는 이 씨는 아이의 이유 없는 울음으로 인한 짜증, 불면·불안에서 오는 ‘육아 스트레스’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출산 후 이어지는 육아 스트레스로 엄마들이 견디다 못해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게 ‘육아우울증’이다. 이는 전문적인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엄마들의 대화에서 꼭 나올 정도로 만연한 문제다.
엄마의 우울증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악영향을 준다. 2013년 미국 의학협회저널 ‘정신과학’(JAMA Psychiatry)에 보고된 한 연구에서는 어린 시절 엄마의 우울증상에 노출된 아이들은 정서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기재된 바 있다.
육아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육아 스트레스지만 모든 우울증이 그렇듯 스트레스만으로 증상이 유발되는 것은 아니다. 신체·심리·환경적 문제 등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가족 등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육아를 도맡거나, 자주 아프고 보채는 아이를 돌보거나, 육아로 인해 꿈이나 기회를 포기했거나, 열등감이 심하거나, 성격이 부정적인 경우 육아 스트레스가 더욱 커 우울증 발병에 주의해야 한다.
육아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감정조절 어려움 △불안감 △죄책감 △수면장애 △식욕저하 등이다. 이를 진단하는 것은 일반적인 우울증 진단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우울증이 있다고 모두 육아우울증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육아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산후우울증’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4주 이내에 시작된 우울증으로, 일상생활에 기능저하를 유발하고 심한 경우 엄마와 아이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부작용이 적은 항우울제로 치료할 수 있다. 써트랄린(sertraline), 파록세틴(paroxetine) 등 항우울제는 모유수유하는 아기의 혈중에서 검출되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다.
김태 강동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모유수유 시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막연한 인식이 존재한다”며 “하지만 지난 1월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 결과 엄마의 우울증을 치료했을 때 자녀의 우울증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울증 치료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한 항우울제로 치료하면 모유수유 중에도 안전하게 약물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증상이 심해져 육아우울증 혹은 산후우울증이 의심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해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치료기간은 반응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증상이 사라지고 6개월 이후까지 치료를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항우울제 처방 외에도 개인상담, 부부상담, 가족상담 등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만약 육아우울증이 의심된다면 다음 몇 개의 질문으로 자가진단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