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디는 증류한 과일주, 블렌드는 이것저것 교모하게 섞기,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양주는 블렌딩 위스키
술을 한 20년 넘게 마셨다는 사람도 술에 대한 기초개념이나 용어가 희박하다. 어차피 어느 주종이든 마시면 취하는데, 또 술이란 게 놀려고 마시는 일종의 유희인데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기왕 돈 들이고, 시간 내버리며 건강 상하면서까지 즐기는 술이라면 간장인지 된장인지는 분간해야 하지 않을까.
주로 소주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양주의 종류나 향미에 무관심하거나 둔감하다. 그 중 가장 흔한 게 브랜디와 블렌드를 혼동하는 것이다.
브랜디를 알려면 우선 브랜드의 어원을 알아야 한다. ‘상표’를 뜻하는 브랜드(brand)는 본래 ‘낙인(烙印)’을 말한다. 말과 같은 가축이나 목재나 가죽으로 된 상품에 낙인을 찍어 누구의 소유임을 표시했다. 노예에게도 낙인을 찍었고, 징벌적 차원에서 죄인에게도 뜨겁게 달군 쇠로 죄명을 아로새겼다. 브랜드는 태운다는 뜻의 ‘burned’에서 유래했다. 브랜드가 지금처럼 상표의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19세기 후반부터다.
그렇다면 브랜디(brandy)는 ‘태운 술’이다. 태웠다는 것은 ‘증류’했다는 말이다. 알코올의 끓는 점은 78도로 물보다 낮으으므로 물과 알코올이 섞여 있는 술을 가열해 증발시킨 알코올 기체를 찬물이나 냉기로 식혀 액화시키면 더욱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증류라 한다.
증류주에는 위스키, 전통소주(일반 희석식 소주는 아님), 브랜디가 있다. 단순화하면 위스키는 맥주, 브랜디는 와인, 전통소주는 막걸리를 증류한 것이다.
브랜디는 과실주 또는 과실 주박(酒粕)을 증류한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포도를 비롯해 사과, 체리, 배, 복숭아 등 과일 양조주를 증류한 뒤 참나무(oak)통에서 숙성시킨 것이다. 하지만 포도양조주가 브랜디 원료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브랜디를 와인증류주로 동일시해도 거의 무방하다. 브랜디란 이름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와인으로 증류한 술을 브랜더위진(Brandewijin, 타는 와인)으로 불런 것에서 유래했다.
브랜디는 대표적인 식후주다. 알코올 도수가 40~42도에 이를 정도로 독하다. 보통 8병 정도의 와인을 증류하면 1병의 브랜디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증류된 하얀색 브랜디를 5~10년 간 오크통 속에서 숙성시키면 참나무의 향과 색이 스며들어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하지만 한국인 가운데 브랜디는 몰라도 코냑은 아는 사람이 훨씬 많다. 코냑(Cognac)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나온 포도주를 증류해 만든 브랜디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아르마냑(Armagnac)에서 나온 포도주를 증류한 게 아르마냑 브랜디다.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경우다. 사과와인(시드르, Cidre)을 증류한 칼바도스도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다.
그렇다면 속칭 ‘블렌드’(잘 모르는 사람은 브렌드, 브랜드라 함)는 뭔가. 정확히 말하면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이다. 양주(洋酒)를 말 그대로 하면 서양에서 들어온 술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맥주나 와인까지 양주에 포함시키진 않는다.
양주하면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도입된 증류주로 위스키를 비롯해 브랜디, 진, 럼, 보드카, 데킬라 등을 아우른다. 그래도 한국에서 양주의 대명사는 위스키다.
위스키는 맥주 등 곡물로 발효한 양조주를 증류시켜 오크통 속에 장기간 숙성시킨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크통에서 우러나온 성분(목재 특유의 탄닌 등)이 술에 스며들어 위스키의 독특한 향, 색깔, 맛을 조성하게 된다. 최소 3년 이상 저장해 숙성시키며 알코올 도수는 30~40%이다.
원래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토속주로 19세기 초 런던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되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위스키는 제조 성분에 따라 몰트·그레인·블렌디드 위스키로 나뉜다. 몰트 위스키는 보리의 싹을 틔운 맥아(malt)로 만든다. 보리에 맥주 효모를 넣고 발효시켜 7~8도의 맥주를 만들고, 이를 증류해 40도 이상으로 도수를 높인 것이다.
이 중 한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만을 병에 담은 것을 ‘싱글 몰트 위스키’라고 하며 풍미가 단조로우면서도 깊다.
‘맥캘란’, ‘글렌피딕’ 등이 대표적이다. 그레인 위스키는 보리가 아닌 옥수수, 밀, 귀리 등 곡류로 만든 위스키이다. 순수 알코올에 가까운 무덤덤한 맛이 특징이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만든 것이다. 일반적으로 몰트 위스키 40~50%에 그레인 위스키 60~55% 정도로 배합하고 알코올 도수는 40% 안팎이다.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로얄살루트’ 등 국내에 많이 알려진 위스키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혼합 비율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조미사가 이런저런 술을 조합해서 브랜드 특유의 맛을 유지하려 애쓴다. 재료는 싱글몰트보다 싼 데 특유의 맛을 내는 데 성공할 경우 가격을 높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블렌드(blend)는 술이나 음료를 섞는다는 뜻이다. 요즘 좀 아는 위스키 애주가들은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선호한다. 인위적으로 가공된 맛이 별로라는 것을 알아챘다는 의미도 담겨 있을 것이다.
양주가 소주나 맥주, 막걸리보다 좋은 이유는 뭔가. 에탄올을 고순도로 증류해 숙취를 유발하는 불순물을 걸러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드는 데 원가와 시간이 더 들어간다. 수년간 숙성하면 시간 소모에 따른 관리비용와 알코올 증발에 따른 손실 등 비용이 상승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형이상학적으로 알코올이 순해진다. 풍미가 올라가 부드럽게 취하고 빨리 깨며 여운이 깊게 남는데 이것이 양주를 음미하는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