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눈처럼 뽀얀 피부가 ‘정석 미인’의 조건으로 꼽혀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하얀 얼굴, 빨간 입술, 칠흙같은 머리칼을 지닌 청순미인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시대의 경우 ‘분처럼 고운 피부’를 만들어준다는 말에 납성분 화장품을 바르는 것까지 불사하기도 했다. 요즘도 백옥피부를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비타민제를 챙겨먹고, 미백화장품을 바르는 데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게 ‘주사요법’이다.
특히 글루타치온(glutathione) 성분을 주로 하는 ‘백옥주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강한 항산화 기능으로 활성산소를 억제 및 제거해준다. 수용성 펩티드 성분이 멜라닌색소를 만드는 타이로시나제의 활성을 억제해 피부톤을 개선시켜 미백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항간에서는 흑인 팝스타 비욘세가 이 주사를 맞고 피부톤이 백인에 가깝게 밝아졌다고 알려져 ‘비욘세주사’라고도 부른다.
웹디자이너 이 모씨(27·여)도 백옥주사의 매력에 빠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피부가 뽀얘지고 예뻐졌다’는 말에 헛돈 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뿌듯하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칙칙해지는 피부를 개선하기 위해 ‘비욘세주사’를 3개월간 맞아왔기 때문이다. 주사는 1회당 5만원이었다. 패키지로 10회 끊으면 45만원에 결제할 수 있다.
이 주사요법을 시행하는 병원에서는 ‘인체 스스로 만들거나 음식으로 섭취하지 못하는 항산화성분을 영양물질과 함께 정맥을 통해 몸에 직접 넣어준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1회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적어도 5~10회 이상 시술해야 ‘드라마틱한 이미지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주사를 10회 이상 맞고도 ‘그럴싸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다. 여대생 정모 씨(24)는 ‘여자아이돌의 미백 시술 전후’라는 사진을 보고 백옥주사를 맞기로 결심했다. 특별히 까만 피부가 아니지만 거의 우윳빛갈로 뽀얘진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는 “거금을 들여 시술받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며 “원래 피부가 흰 편이라 가시적인 효과가 크지는 않은 것 같다는 병원의 설명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나만 혼자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변화라서 다른 사람들이 특별히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며 “굳이 더 맞을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강형철 비타클리닉피부과 원장은 “글루타치온은 본래 간 치료제로 활용돼왔으며 이는 간 해독작용을 돕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일종의 항산화제 기능을 한다”며 “간 치료 과정에서 멜라닌을 억제하는 작용이 일부 나타나 환자의 피부톤이 일시적으로 밝아진 것을 발견했고, 이후 미용시술에 쓰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에서 효과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당연하고 보편적인’ 치료는 아니다”며 “글루타치온을 활용한 미백치료는 이 성분을 얼마 만큼을 얼마나 오래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사람마다 차이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주사 자체가 무조건 좋고 나쁘다고 맹신할 게 아니다. 예컨대 무조건 ‘글루타치온’을 활용하면 피부가 밝아진다는 말에 환자가 의사에게 ‘이를 시술해달라’고 주장하기엔 무리라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뒤 처방을 내리는 게 맞다.
국내서 글루타치온 주사는 간 치료용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피부 미백용으로 쓰이는 것은 일종의 ‘오프라벨 처방’이다. 오프라벨 처방은 의약품을 허가한 용도 이외의 적응증에 처방하는 행위로 허가사항에는 없지만 의사의 임상이나 경험적 판단에 따라 재량껏 약물을 쓰는 것이다.
실제로 백옥주사를 맞으면 미백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간기능 개선제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약이 주입되면 멜라닌세포를 억제하면서 피부가 하얘지는 것이다. 일부 백옥주사 시술 병원에서는 ‘간기능이 나쁜 사람의 얼굴은 대개 누렇게 떠 있는데, 글루타치온으로 치료하다보니 피부가 밝아지는 걸 보고 활용하게 됐다’고 설명해주기도 한다.
강 원장은 “예컨대 글루타치온 주사를 맞았을 때 효과를 봤다면 평소 간장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일 것”이라며 “글루타치온은 간장에 활성산소를 청소해 피부까지 맑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병이 없고 건강한 상태라면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처방, 체내 밸런스를 맞춰 맑은 피부톤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처럼 새로 등장한 피부미용주사는 어떤 성분이 어떻게 얼마나 투여되고 있는지, 부작용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예컨대 백옥주사를 맞아 멜라닌색소가 지나치게 억제되면 피부에 흰 점이 얼룩덜룩 나타나는 ‘백반증’이 유발될 우려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진혁 우보한의원 원장은 “인위적으로 멜라닌 생성을 지나치게 억제하거나 중단시키면 자칫 색소세포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이 과정에서 피부에 얼룩덜룩한 백색반점이 생기는 백반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몇몇 연구를 살펴보면 2009년에는 유럽에서 미백주사를 3년 이상 투약한 사람 240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피부백화현상·조갑(손톱)백색반점·체모탈색 등 저색소화 부작용을 겪었다. 2012년엔 미국 의약품정보 전문분석회사 ‘이헬스미닷컴’(eHealthMe.com)에서 글루타치온을 맞고 부작용이 생긴 132명에 대해 분석한 결과, 백반증을 비롯한 저색소증·복통·신장기능 이상 등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강형철 원장은 백반증을 일으킨다는 문제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그는 “아직까지 국내서 글루타치온 주사를 맞고 백반증이 나타났다고 보고된 사례는 없다”며 “오히려 글루타치온의 항산화 작용이 백반증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백반증은 병의 단계가 있는데, 이 가운데 ‘활성산소’로 인해 증상이 나타나는 단계라면 항산화 작용을 하는 글루타치온 성분이 증상을 완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글루타치온 성분이 피부미백에 도움을 준다는 임상시험 결과는 없다. 오상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글루타치온이 멜라닌 색소 합성을 막는다는 것이 규명됐다고 하는데, 이는 세포 단위의 실험일 것”이라며 “실제로 사람이 이 주사를 맞고 미백 효과를 봤다는 연구결과는 없다”고 말했다.
백용욱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백옥주사는 리포아란 성분을 주입하는 신데렐라주사처럼 학계에서 어떤 부분도 인정받지 못했다”며 “어떤 위험이나 효과가 있는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옥주사의 주성분은 간기능개선제로 허용받은 전문의약품인데 ‘피부미백 증진’용도로 달리 쓰이는 상황이다. 자칫 백반증에도 노출될 위험이 높아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맞고 보자’는 여성이 적잖다. ‘별 일 없을거라’며 부작용에 대해 크게 설명하지 않는데다 ‘10회 이상은 무조건 맞아야 한다’는 의료진의 태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포애프터’ 사진으로 참고하는 비욘세도 이 주사를 맞았는지에 대한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이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그의 인터뷰에서 ‘정확히 이 성분으로 피부톤이 밝아졌다’는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친이 백인이라 피부톤이 하얄수도 있다’, ‘마이클 잭슨처럼 백반증에 노출된 듯하다’ 등 루머만 가득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