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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의 근원이라던 산성체질의 비밀 … 사람 혈액은 본래 알칼리성
  • 정종우 기자
  • 등록 2015-02-01 17:32:18
  • 수정 2020-09-14 13: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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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내 pH농도 0.3만 변해도 의식 잃어 … 산성음식 먹는다고 체질 변하지 않아
혈액내 수소이온농도(Ph)가 7보다 낮으면 산성, 높으면 알카리성으로 구분하는데 인간의 혈액의 pH는 7.35~7.45로 약알칼리성이다.사람의 외모가 각기 다르듯 체질도 다르다. 한방에서는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등 4가지 체질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같은 사상체질도 1894년에 등장한 이론으로 전통 한의학에서 비껴난 비주류 한의학이었다.

산성 또는 알칼리성체질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는 성인병으로 불리는 만성퇴행성질환이 늘어나면서 일본 건강서적에서 처음 등장했다. 마치 체질이 산성화돼 질병에 걸리는 것처럼 됐다. 몸의 산성화를 막기 위해 알칼리성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체의 70% 가량은 물이다. 여기에 유기물 및 무기물이 녹아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단백질로 구성됐다. 단백질은 여러 대사물질을 만들 때 필요한 효소의 구성성분이다. 효소가 없거나 기능이 떨어지면 인간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 

몸을 건전한 상태로 유지하려면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정상적이어야 한다. 모든 단백질은 열과 산도에 의해 변성되기 쉽다. 단백질인 달걀흰자에 열을 가하거나 산성물질인 식초, 염산을 떨어뜨리면 하얗게 응고되듯 모든 단백질들은 열과 산도가 바뀌면 변성돼 기능을 잃는다. 

효소의 기능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인자는 혈액내 수소이온 농도다. 이는 pH라는 단위로 표시되며 pH가 7보다 낮으면 산성, 높으면 알칼리성이라 구분한다. 건강한 인체 혈액의 pH는 7.35~7.45의 약알칼리성으로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일정하게 유지된다. 체액의 pH가 0.3만 변해도 몸은 위험해져 의식을 잃는다. 몸은 체액의 산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장치를 갖는다.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곳이 콩팥과 폐다. 몸에서 산이 많이 생산되거나 섭취하면 콩팥은 오줌을 통해 산을 배출한다. 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체액의 산도를 낮춘다. 체액의 산도가 정상과 다르면 위중한 병적 상태다. 

식품을 산성, 알칼리성으로 분류한 사람은 19세기 말 스위스 영양학자였던 구스타프 폰 붕게 박사다. 그는 영양분이 체내에서 연소된다는 개념을 주장했다. 연소(燃燒)란 불로 태운다는 뜻으로 사람의 몸 안에서 이런 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학발전에 따라 영양분은 체온에서 대사라는 산화 과정을 거쳐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붕게 박사는 식품을 회화(灰化)시켜 남는 재에 어떤 종류의 이온이 많은가를 조사해서 결정했다. 연소하면 유기성분은 전부 타버리고 무기염류(미네랄)만 남는다. 이때 재에 남은 원소를 분석했는데 산성이 되는 음이온 양이 많으면 산성식품, 알칼리성이 되는 양이온이 많으면 알칼리성 식품으로 구분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식초는 산성이 아니라 알칼리성 식품이 되고 소고기, 돼지고기 등은 중성인데도 산성 식품으로 취급받는다. 지금의 과학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분류법이다. 

이런 구분은 산, 염기 균형이 흐트러진 환자에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완충할 여력을 갖고 있어 체액의 산도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산성식품을 먹었다고 체액의 산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줌의 산도만 조금 오른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동안 부족한 육류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정책으로 산성식품인 육류가 몸에 나쁘다는 이론을 이용했다. 전쟁이 끝나고 쌀이 부족하자 순쌀밥은 건강에 나쁘다는 식의 정책도 펼쳤다. 산성식품으로 분류되는 육류, 쌀, 설탕 등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퍼뜨려 나갔다. 1970년대엔 클로렐라 등 건강보조식품을 취급하는 회사들이 과장광고를 통해 산성체질론을 내세웠고, 이를 이용한 엉터리 건강지식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산증 또는 알칼리증은 질병 등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발생한다. 산증은 산 성분이 정상보다 많아지거나 염기성분이 적어지는 경우에 나타나며 당뇨병, 요독증, 설사, 심근경색, 폐혈증, 신장질환, 폐질환 등이 대표적이다. 알칼리증은 산이 부족하거나 염기성분이 많아지는 경우에 발생한다. 염기물질 과다투여, 호흡과다 등이 원인이다. 식품에 의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알칼리성 식품 위주의 식단을 짜기도 한다. 이는 무기질을 풍부히 섭취하고 육류를 덜 먹기 위해서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식품을 산성과 알칼리성을 구분하는 것은 유사과학이나 다이어트법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한다. 

김정아 인제대 서울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자율적인 기능이 있어 체액의 산도를 약알칼리성으로 정밀하게 유지한다”며 “산성 식품을 피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식사를 먹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성체질론을 주장하며 권장하는 여러 건강보조식품, 건강법, 알칼리 이온수 등이 완전히 엉터리나 사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중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훌륭한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진보된 과학적 발견이 이뤄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산성체질과 알칼리성체질로 구분해 특정 음식이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려는 이론은 틀린 게 분명하다. 산성체질로 인해 발병한다는 질환은 대부분 편식, 수면부족, 과로, 스트레스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건강을 해치는 원인을 찾아내 자기 생활습관을 돌아보고 의사와의 상담으로 건강을 개선해나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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