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배운 경험이 전혀 없던 사람이 치매에 걸린 뒤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보인 첫 사례가 보고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한나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와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에서 발병 후 색소폰 학습’(Postmorbid learning of saxophone playing in a patient with frontotemporal dementia) 논문을 27일 발표했다.
보통 치매에 걸리면 기억력이 상실되면서 학습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 치매에 걸린 뒤 오히려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보이는 전두측두엽 치매도 드문 확률로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술 및 작곡 분야에서 일했던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 중 극소수가 치매 진단 후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발휘했다는 연구결과는 외국에서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음악을 전혀 배우지 않았던 환자가 치매 진단 뒤 우수한 음악적 능력을 보인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연구 대상자인 58세 남성 치매환자는 3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된 성격 변화와 이상행동으로 병원을 찾은 결과 전두측두엽 치매를 진단받았다. 이 질환은 판단, 계획,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과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에 발생하는 것으로 일반 치매와 달리 기억력에는 문제가 없어 발견이 쉽지 않다.
이 환자는 원래 내성적이고 온화한 성격이었지만 3년 전부터 화를 자주 내는 등 공격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보였다. 이로 인해 사회생활이 어려워져 권고사직을 당했다. 치매 진단 뒤 부인의 권유로 인근 음악학원에서 매일 2시간씩 색소폰을 배웠다. 처음엔 일반인보다 습득 시간이 길었지만 반복적인 학습과 노력으로 1년 뒤엔 10여곡을 스스로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색소폰을 배운 뒤부터 공격적인 성향도 누그러졌다.
하지만 치매 진단 후 4년이 지난 2014년엔 색소폰을 불지 못할 정도로 치매가 다시 악화됐다.
연구팀은 50대 후반 이후 우울감·의욕저하·분노 등이 갑작스럽게 나타나거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못알아듣거나, 아이처럼 행동한다면 전두측두엽 치매를 의심해보라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치매 환자도 낮은 확률로 새로운 학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귀 사례”라며 “악기를 배우거나 연주하는 음악치료를 전두측두엽 치매에 대한 인지재활의 하나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