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숙사서 쫓겨나고 취업 불합격 처리 … 일종의 ‘면역질환’, 제대로 관리시 사회활동에 문제 없어
최근 B형간염은 일종의 면역질환으로 평생 꾸준한 관리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지난 12월 첫 아이를 출산한 주부 윤모 씨(29·여)는 한 산후조리원에 등록하려다가 거절당해 속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다. 윤 씨는 “비활동성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며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다른 아이들이나 산모에게 혹시나 불이익을 줄까봐 입소하는 게 어렵겠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거절당한 조리원 상담사는 ‘웬만한 산후조리원은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다행히 다른 곳을 찾게 됐다”며 “이번에 들어가게 된 곳의 간호사는 ‘요즘 세상에도 B형간염을 문제로 받아주지 않는 곳이 있냐’고 말해 문제 없이 입소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B형간염은 B형간염바이러스(hepatitis B virus, HBV)에 감염된 후 체내 면역반응으로 간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급성과 만성으로 나뉜다. B형간염바이러스는 혈액에 침입한 뒤 주로 간세포 속에 자리잡는다. 이때 몸이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해 면역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세포들이 파괴되면서 간에 염증이 나타난다.
성인이 감염되면 95% 이상에서 저절로 호전되는데, 이는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는 표면항체(HBV surface antibody, HBsAb)가 체내에 생성된 덕분이다. 이후 B형간염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므로 다시 감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드물게 B형 간염이 만성화되면서 간이식이 필요한 상황이 되거나 사망에 이르므로 주의해야 한다. B형간염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며 혈액, 타액, 정액, 질분비물 등 체액에서 관찰된다.
흔히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은 기능을 대부분 상실할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나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간염에 걸려도 크게 이상을 감지하지 못하다가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발전한 뒤 비로소 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만성 B형간염의 경우 ‘무증상’이 증상이다. 심한 경우 피로감이나 소화불량 정도에 그쳐 단순히 ‘만성피로, 스트레스 때문이겠거니’하고 넘기기 마련이다.
B형간염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경로는 크게 수직감염(주산기감염), 수혈, 성접촉, 오염된 주사기 재사용 등으로 이뤄진다. 단순히 전염에서 그치면 문제될 것은 없지만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 중 48%는 20년 후 간경변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35%는 간암으로 악화됐다는 통계도 있다.
만성화되는 비율은 감염 시기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성인기 감염은 1% 미만인데 비해 유년기 감염은 20%, 주산기 감염은 90%에 이른다. 주산기 감염은 신생아가 출산 과정에서 산모에 의해 감염된 경우다.
이 바이러스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전염되진 않는다. 우리나라는 수직감염에 의한 B형간염보균자가 대부분이지만 이도 백신접종으로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B형간염 환자를 보는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2011년 모 외국어고등학교에서 만성 B형간염 보유자인 A군의 기숙사 입사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전원이 4인 1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지만 이 학생만 ‘B형간염’을 이유로 입사에서 배제된 것이다. 의대 교수인 A군의 주치의도 “A군의 상태는 기숙사 입사를 못할 정도가 아니다”며 “B형간염은 일반적인 공동생활로 감염되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B형간염 환자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특별한 치료법의 부재와 사람들의 ‘카더라통신’에 의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과거 B형간염에 감염됐다는 것은 결국 간암에 의한 사망을 의미했다. 특히 증상이 없다가 갑작스레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B형간염과 죽음을 동일시한 것이다.
1999년 경구항바이러스제가 출시됐지만 금방 내성이 생기는 부작용으로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진 못했다.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면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생기고 일부 환자들은 B형간염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
최근 10년간 B형간염환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예방접종이 보편화되고 치료법이 좋아진데다 영양상태까지 개선돼 환자수가 크게 줄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약을 먹어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 치료약들이 개발되고, 간 섬유화로 딱딱해진 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만성 B형간염 환자라도 HBV를 잘 관리해 억제하면 극한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환자수가 줄었더라도 병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라 A군처럼 사회적 차별을 받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B형간염 관련 피해사례를 살펴보면 2008년 C은행 공채에서 최종면접까지 합격한 지원자를 신체검사 후 B형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한 적이 있었다. 같은 해 D중학교에서는 B형간염 보균자인 학생에게 ‘전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등교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최종영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 만성 B형간염환자에게도 ‘완치’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며 “물론 다른 질환에서 말하는 완치와는 개념이 조금 다르지만 혈액 내 간염바이러스 항원인 S항원 수치가 0에 가까워질 경우 완치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또 “하지만 간 자체의 바이러스까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는 필수”라고 당부했다.
아무리 좋은 치료법이 개발되더라도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의지가 없다면 도루묵이다. 최근 B형간염은 일종의 면역질환으로 평생 꾸준한 관리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규칙적인 식습관과 충분한 휴식,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관건이다. 음주, 흡연을 삼가는 것은 기본이다. 무엇보다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본인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관리만 잘 된다면 사회활동에 전혀 무리가 없다.
최 교수는 “만성 B형간염은 치료기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 기간에 지치거나 괜찮아졌다고 생각해 환자 스스로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경우 간염이 재발됐을 때 치료가 더 힘들어져 임의로 관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구현 간사랑 동우회 대표는 “최근 만성B형간염 치료가 많이 발전한 만큼 뚜렷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는 질환”이라며 “질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꾸준하게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서 검진 받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B형간염은 예방이 관건으로 예방접종을 받는 게 추천된다. 간혹 접종 후 항체가 생기지 않는 무반응자는 재접종을 고려해보는 게 좋다. 전체 인구의 5~10%를 차지하는 무반응자는 접종해도 아예 항체가 생기지 않거나, 접종 당시엔 생성됐다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경우로 나뉜다.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항체가 잘 생기지 않는 것은 선천적으로 면역체계가 약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원래 항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드는데 유독 잘 줄어드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접종자 중 60%는 접종 후 9~15년 이후 항체가 많이 줄어 검사시 ‘항체가 없다’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재접종 이후에도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면 원래 항체가 잘 생기지 않는 유형으로 이런 경우 B형간염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