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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법 시행 한 달, 울고 웃는 한국사회 천태만상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1-18 09:56:43
  • 수정 2015-01-22 16: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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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흡연석·흡연실 차이 몰라 혼란, 여성 흡연자 울상 … 전자담배·면세점 담배·은단 인기

최근 담뱃값 인상으로 금연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금연치료보조제, 전자담배, 은단 등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단순한 기호품에 불과했던 담배가 올해 들어 ‘귀하신 몸’이 됐다. 두 배 가까이 뛴 몸값 덕분에 ‘담배 한 개비만’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는다. 고된 일상을 담배로 위로받던 서민들에게 담뱃값 인상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담뱃값이 오른 것도 서러운데 이젠 담배를 필 공간조차 없다. 정부의 금연정책으로 음식점·카페는 물론 대부분의 건물이 금연구역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흡연실을 제대로 갖춘 곳은 아직 많지 않아 흡연자들은 범죄자가 된 것 마냥 건물 구석진 곳에 숨어 담배를 피고 있다. 반면 금연보조제, 은단, 전자담배 업계는 담뱃값 인상 후 매출이 꾸준히 증가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처럼 담뱃값 인상 후 한달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사회 곳곳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서울 노량진에서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 씨(31)는 1주일 전 담배를 끊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에서 담뱃값이 2000원이 오른데다 마음놓고 담배를 필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금단현상 탓에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그는 “2015년은 ‘양의 해’라던데 나는 TV에서 양만 봐도 짜증이 난다”며 “아무 대책없이 일방적으로 금연 정책을 추진하면 담배 한 모금으로 휴식을 즐기던 나같은 서민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음식점이나 카페 점주들은 눈에 띄게 줄어든 손님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과거에는 유리 등으로 분리된 ‘흡연석’을 운영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의자나 테이블이 없는 ‘흡연실’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흡연실이라도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는 행위도 법으로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업주는 1차 170만원, 2차 330만원, 3차엔 500만원의 과태료를 납부해야 한다. 담배를 핀 당사자에게도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카페 이용객은 물론 카페 업주와 점원들도 흡연석과 흡연실의 차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기존 흡연석을 흡연실로 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300만~500만원으로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점주들 사이에선 “돈을 들여 흡연실을 설치해도 단골 고객 수는 줄게 뻔하니 차라리 기존대로 운영하고 과징금을 무는 게 낫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담배 필 공간이 없어진 흡연자들은 으슥한 건물 뒤편이나 이면 도로 등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여성 흡연자들은 사회 통념상 카페 등 실내 공간이 아니면 담배를 피기가 마땅치 않다. 잡지회사에서 근무하는 정모 씨(32)는 “업무시간에 스트레스를 풀 겸 사무실 건물 뒤쪽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입에 담기도 힘든 말로 욕을 했다”고 씁쓸해했다. 

금연을 결심한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다. 한 중소 언론사는 새해 금연하기로 한 직원에게 인센티브로 50만원을 지급한 뒤 흡연 사실이 적발될 경우 벌금으로 100만원을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직원 정모 씨는 “금연으로 건강을 보호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며 “벌금이 100만원이나 돼 담배를 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자담배 업계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울 신림동에서 전자담배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윤모 씨는 가게 문을 열러 가는 길이 즐겁다. 그는 “지난해 겨울부터 전자담배를 구입하러 매장을 찾는 사람의 수가 꾸준히 늘었다”며 “상담을 원하는 손님이 많아 전화로 먼저 예약하지 않으면 30분 가까이 기다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기뻐했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 방침을 발표한 지난해 9월부터 전자담배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지난달 1~22일 전자담배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의 17배나 늘었다. 도심 번화가나 아파트 상가 등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전자담배 판매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단순히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카페처럼 꾸며 여러가지 향을 직접 음미해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최근엔 다소 비싼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아예 액상을 직접 제조하는 전자담배 ‘김장족’도 증가하는 추세다. 퓨어니코틴, 프로필렌글리콜(PG), 식물성 글리세린(VG)액상 등을 이용해 액상을 직접 제조하면 유지 비용이 최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 게다가 원하는 향을 직접 조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게 김장족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유해성 논란은 전자담배를 처음 사용해보려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 2004년 중국 전자담배회사 루엔(Ruyan)이 세계 최초로 전자담배를 판매하기 시작한 이래 발암물질이나 독성물질이 꾸준히 검출되고 있다.

전자담배가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전자담배 121개의 액체성분 유해성을 연구한 결과 발암물질과 환경호르몬(내분비계 장애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당시 복지부 조사결과 제품 전체에서 국제암연구소(IARC)로부터 발암물질로 지정된 ‘아세트알데히드’가 1ℓ당 0.10~11.81㎎가 검출됐다. 이 물질을 지속적으로 흡입하면 호흡기·신장·목 등에 심각한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김종석 차의과학대 차움 가정의학과 교수는 “전자담배는 시판된지 얼마 되지 않아 명확한 법적 규제가 없으므로 액상과 니코틴 원액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한국소비자원에 신고되는 부작용은 두통, 목통증, 기침 등이 있으며 전자담배엔 아세트알데히드 등 발암물질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풍선효과로 전자담배 이용률이 높아지자 지난 6일 복지부는 “전자담배는 금연보조제가 아닌 담배”라며 “일반담배와 같은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전자담배를 금연보조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는 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흡연자들은 “정부가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과도하게 홍보하는 것은 전자담배 대신 담배를 피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담뱃값 인상이 서민 증세라는 오해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의 으름장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담뱃값이 부담스럽지만 전자담배는 내키지 않는 흡연자들은 면세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반 매장에선 4만5000원(4500원X10)에 판매되는 국산 담배를 1만9000원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담뱃값이 오른 뒤부터 제주국제공항내 국산 담배 판매점은 오전 일찍부터 담배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소보다 줄이 3~4배 길어져 통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면세점 측은 한 사람에 한 보루씩만 판매하고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를 동원해 구입하는 것까지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면세점으로 흡연자들이 몰리자 기획재정부는 면세점 담배 가격도 인상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박모 씨(36)는 “면세가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세금을 추가 부담하는 건 모순”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는 세금이 아닌 부담금 형식으로 담배값을 인상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자세한 안은 아직 내부 조율 중이지만 면세점 담배 한 갑당 건강증진부담금(841원)과 폐기물부담금(24원)을 합친 865원이 추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연치료제 시장도 웃음꽃이 활짝 폈다. 최근 정부가 담뱃값 인상으로 증가된 세수 중 연간 5000억원을 건강보험재정으로 충당하고, 이 중 2000억원을 병·의원에서 이뤄지는 금연 상담, 금연보조제 처방 등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금연 상담은 복지부에 금연상담 프로그램 운영 신청을 한 병·의원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해당 병·의원 의료진은 복지부가 마련한 일정 수준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12주간 6회 실시되며, 금연에 실패한 참여자는 재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복지부는 다음달 중 금연상담료의 수가를 책정할 방침이다.

은단 제품의 매출도 대폭 증가했다. 고려은단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담뱃값 인상안이 발표된 뒤 10∼12월의 월 평균 판매액은 전보다 20% 이상 늘었다. 올해 1월 매출은 평월 대비 30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은단 제품은 특히 40대 이상 흡연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담뱃값 인상으로 금연 열풍이 불면서 니코틴패치와 약물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시판 중인 금연치료보조제로는 니코틴수용체에 작용해 니코틴에 대한 탐닉성을 낮춰주는 화이자제약의 ‘챔픽스’(성분명 바레니클린, varenicline),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웰부트린’(성분명 부프로피온, bupropion), 한미약품의 ‘리코피온’(성분명 부프로피온, bupropion) 등이 있다.
금연성공률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나설 때 3~5%, 니코틴 금연치료제는 19~26%, 금연보조제인 니코틴패치는 17%로 알려져 있다.

다소 비싼 약값 탓에 인터넷을 통해 니코틴패치, 금연껌, 금연초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이들 대용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불면증·구강건조증·피부발적·두드러기·가려움증·두통·변비·경련·오심 등이 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펜실베니아대 의대 캐어린 러먼(Caryn Lerman) 박사는 지난 13일 의학전문지 ‘랜싯 호흡기의학’(Lancet Respiratory Medicine)을 통해 금연보조제를 선택할 땐 체내 니코틴 대사속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병원 검사 결과 몸 안에서 니코틴을 분해하는 대사속도가 보통 이상인 사람은 니코틴패치보다 바레니클린 등 니코틴수용체 작용제를 사용하는 게 금연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니코틴 대사속도가 느린 사람은 니코틴패치가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레먼 교수는 “금연하려는 사람의 65%가 1주일 이내에 실패한다”며 “흡연자의 니코틴 대사율에 근거해 치료법을 선택하면 금연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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