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
다수의 현대인들이 달달한 커피,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사탕, 과자, 햄버거, 피자, 라면·국수 같은 면류식품을 달고 산다. 이를 일컬어 ‘탄수화물중독’이라고 한다.
탄수화물 중독엔 심리적 요인과 신체적 요인이 작용
탄수화물중독에 빠지기 쉬운 요인은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허기’, 즉 ‘가짜 식욕’ 때문이다. 밥을 먹고 나서도 빵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 계속 당긴다면 진짜 배고픔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특정 음식에 중독되면 게임중독이나 마약중독처럼 동일한 부위의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음식을 끊을 수 없다.
탄수화물중독을 유발하는 신체적 요인으로는 뇌내 도파민 회로의 활성화로 인한 중독현상, 스트레스로 인한 세로토닌의 결핍, 탄수화물 과다로 인한 인슐린 분비의 급격한 변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정제된 탄수화물 식품들은 소화 및 흡수되는 시간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섭취하는 동시에 체내 혈당치가 급격히 올라가게 된다. 이 때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호르몬 분비를 강하게 자극하는데, 그 결과 혈당은 상승하고 오른 만큼 다시 급격히 떨어지면서 저혈당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몸이 무기력해져 금세 허기를 느끼며 과도한 칼로리 섭취가 일어나고 신체 움직임이 적어지기 때문에 비만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체중증가는 활동량 감소와 우울증을 초래해 비만의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또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혈당을 올리기 위해 역시 단 음식을 추구하게 된다. 코르티솔은 강력한 식욕촉진 물질인 뉴로펩타이드Y(NPY)의 생성을 자극해 폭식을 초래하게 된다.
여성들이 탄수화물중독에 취약한 이유는?
많은 여성들이 밥을 먹고 나서도 삼삼오오 케이크를 나눠 먹는다. 특히 생리전증후군을 겪는 여성이라면 생리를 앞두고 호르몬 변화의 영향을 받아 유독 단맛을 심하게 당기게 된다. 수십 년 전부터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이나 생리전증후군을 갖는 여성 환자들이 유독 탄수화물을 선호하고 탐닉하는 현상에 주목해왔다.
탄수화물 탐닉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게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만성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상존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되고, 뇌는 다시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기 위해 탄수화물 섭취 욕구를 증가시키게 된다. 이때 탄수화물을 다량 섭취하면 세로토닌이 생성돼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마치 마약처럼 자꾸 단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
탄수화물중독은 마약중독보다 센가?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마약을 복용할 때처럼 쾌락과 행복감에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 분비가 늘수록 내성이 생기고 이는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식탐을 끊임없이 자극할 뿐 아니라, 인슐린에 의해 ‘포만·허기 사이클’을 촉진시키게 된다.
도파민은 게임중독이나 마약중독에서 활성화되는 동일한 쾌락물질로 심한 경우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손이 떨리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등 금단증상까지 유발된다. 마약이나 알코올에 의한 중독은 몸에 해롭다고 의식하지만,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탄수화물 탐닉은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게 되고 더욱 위험한 것이다.
탄수화물 중독이 병인가?
다이어트를 해도 계속 요요현상이 오거나, 밥을 먹은 지 한 시간도 안 돼 과자나 빵이 당긴다면 탄수화물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 정상적인 다이어트가 아닌 무리한 다이어트를 통해서 감량했던 사람들은 탄수화물을 폭식하게 돼 요요현상이 잘 생긴다. 탄수화물을 무조건 제한하는 원푸드 다이어트보다는 정제된 탄수화물을 줄이고 혈당지수(GI,Glycemic Index)가 낮은 몸에 좋은 탄수화물로 대체하는 게 좋다. 무조건 절식할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다이어트 기간엔 절식하고 다이어트를 쉬는 기간에 폭식한다면 살이 다시 찌는 것은 시간문제다.
피곤함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 가운데 퇴근 후 습관적으로 간식류 등을 사가지고 귀가해 먹고 자고 나니 적정 체중보다 10㎏ 이상 찌는 것은 당연지사다. 폭식의 원인이 자유시간과 휴식인 셈이다. 하루종일 긴장해서 일하다가 집에 가서 쉬면서 입에 탄수화물을 집중적으로 흡입하면서 휴식을 대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런 직장인은 행동치료적 상담이 필요하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음식을 사가는 대신 집에서 목욕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이완을 위해 집 근처를 산책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나서 들어가면 집에서 단것 먹는 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 결국 10㎏이 저절로 빠지게 되고, 일과 휴식을 구분하면서 피곤함도 풀리게 된다.
폭식증 치료에는 약물치료 외에도 심리적인 허기를 찾아서 폭식증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폭식증 자존감 상담을 병행하는 게 중요하다. 필자가 운영하는 굿이미지 상담연구원에서는 자존감 프로그램 5회, 10회가 전문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담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게 하고,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면서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습관을 해결해준다.
자신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폭식의 재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형성된 낮아진 자존감을 다루는 게 선행돼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 삶에서 불만을 느끼는 요소와 진로, 직업문제, 대인관계들이 개선된다면 폭식과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탄수화물 끊는 노하우 탄수화물을 금지하면 불면증, 우울증, 초조감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마치 금연할 때처럼 금단현상이 생긴다. ‘슈거 블루스’라 불리는 설탕에 의한 우울증이 있을 정도다.
갑자기 탄수화물을 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한국인 식단에서 탄수화물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탄수화물과 이별하기 위해 우선 다이어트 초기에는 믹스커피, 주스, 청량음료 등 불필요하게 섭취되는 당류를 줄여야 한다. 둘째, 하루 한끼 정도는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한다. 계란 흰자, 닭가슴살, 두부 등이 추천된다. 셋째, 제과점 빵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서양의 주식인 빵이 한국에서는 간식이다보니 첨가물이 많이 들어 가서 고열량, 고당류 식품이 되기 십상이다. 대신 고구마 현미 등 정제되지 않은 좋은 탄수화물을 먹도록 한다.
탄수화물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사랑에 빠지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외도하라거나, 이성을 마구 만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이성과 열애에 빠지면 도파민이라는 쾌락물질의 분비가 증가돼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떨어지게 된다. 사랑에 빠지면 바라보고만 있어도 배가 안고프다는 말이 있다.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애착을 말한다. 예컨대 애완견이나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취미생활, 일상의 소소한 재미 등 매너리즘과 피로를 날려줄 그 무엇이 의도적으로 마련된다면 탄수화물중독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꼭 특급 리조트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줄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산책, 늦은 걸음, 애착, 사랑, 수면은 도파민 뿐만 아니라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을 올려주어 우울감, 무기력, 스트레스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심리적인 허기를 채워줘 더 이상 폭식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해줄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젊은 여자는 반드시 살이 빠지게 돼 있다. 나를 바라봐주는 누구, 잘보이고 싶은 사람, 서로 몰입하고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예쁘게 보이도록 살이 빠진다. 허니문 시기엔 누구에게나 도파민이 분비되고 배가 고프지 않다. 그렇다고 매일 사랑에 빠지기는 어렵다. 다만 매사 열정을 가지고 자신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웬만해서 살이 찌지 않는다.
자기를 못살게 굴지 말라
탄수화물중독이 있는 여성들은 자기가 간식을 끊지 못한다고 스스로에게 못살게 군다. 살이 찌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자기가 음식 하나 통제 못한다 생각하니 스스로 한심해지는 것이다.
자존감의 저하는 심리적인 허기와 더불어 더욱 탄수화물을 찾게 하고,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역할로 중독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작심삼일인 자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탄수화물중독에서 벗어나는 한편 전반적인 생활의 리듬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탄수화물중독을 겪는 사람은 다른 문제도 갖고 있다. 내 몸이 너무 피곤하지는 않은지, 스트레스가 많은지, 잠은 잘자는지, 대인관계는 어떤지, 심리적인 허기를 겪는지, 내 욕심이 너무 과도한 것은 아닌지, 영적으로 허탈하지 않은지 점검해봐야 한다. 삶의 전반에 걸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아야 한다. 탄
수화물을 자꾸 찾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돌아봐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는 뜻이다. 가족이나 주변사람 가운데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프다고 호소한다면 ‘사랑과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