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철 위장온도 40도, 찬물 들어가면 혈관수축·경련으로 복통·설사 … 찬물·뜨거운물로 조화 이룬 음양탕 유익
직장인 박 모씨(26)는 올해도 날이 더워지자 습관처럼 소화제·지사제를 챙긴다. 평소 자신은 ‘더위에 약하고 뜨거운 음식은 별로’라며 겨울철에도 냉수를 찾을 정도다. 지난달부터 기온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면서 그의 주식은 냉면·메밀국수·콩국수 등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음식들이다. 찬 음식을 자주 섭취하다보니 여름철에 설사를 달고 산다. 그는 “미지근한 물은 맛이 맹맹해서 못 마시겠다”며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습관을 고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30도를 웃도는 지역이 늘어날 정도로 올해는 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다. 날씨가 더워지면 배탈·설사 등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덥다고 냉수·아이스커피·주스 등 찬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등을 자주 섭취하게 되면서 위장이 자극받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철 몸의 겉면 온도는 약 38도, 위장점막은 40도까지 오른다. 이럴 경우 자연스럽게 시원한 음료를 찾게 된다. 찬 음료수가 온도가 높은 위장관에 들어가면 위장 부위의 혈관이 수축되고 경련을 일으켜 점막은 빈혈상태가 된다. 결국 복통·설사가 유발되며 심할 경우 염증이 나타나고 점막이 헐기도 한다.
여름철에는 입맛이 없어지면서 지친 몸을 회복하는 보양식보다 순간적으로 청량감을 주는 시원한 물이나 간단하게 먹는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여름에는 병이 장(腸)에 있다’며 이런 습관은 여름병을 키우는 원인이 돼 피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한진우 인산한의원 원장은 “‘두무냉통 복무열통’(頭無冷痛, 腹無熱痛)이라고 해서 머리는 차게, 배는 따뜻하게 해야 병이 없고 건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배는 항상 따뜻하게 해줘야 하기 때문에 미지근한 물이 유익하다”고 말했다.
찬 음료를 많이 마시면 소화기 관련 질환뿐만 아니라 호흡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형한음냉즉 상폐’(形寒飮冷則 傷肺)라고 하여 얇은 옷·냉방 등으로 추위를 느끼거나 찬음료를 많이 마시면 호흡기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체온이 내려가면 면역력도 저하돼 여름철에도 몸을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한 원장은 “여름철에는 인체의 양기가 피부 표면으로 발산되고, 음기는 속으로 잠복해 뱃속이 항상 차갑다”며 “찬 음식을 먹으면 장기가 더욱 차가워지면서 급한 설사나 배탈 등에 노출되기 쉽다”고 덧붙였다.
여름철 건강을 지키려면 냉수는 잠시 내려두고 ‘음양탕’(陰陽湯)을 마시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생숙탕’(生熟湯)이라고도 하며 끓인물에 냉수를 부어 만든 미지근한 물이다. 끓인 물을 양(陽)의 상태로, 냉수를 익히지 않은 음(陰)의 상태로 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음양, 한열, 기혈의 순환을 돕고 소화기를 보하는 작용으로 여름철 건강 지키기에 적합하다.
동의보감 탕액 편의 맨 처음 ‘수부’(水部)편에는 물 자체가 훌륭한 약임을 강조했다. 이 가운데 음양탕은 끓인물과 찬물이 섞이면서 대류현상이 일어난 ‘움직이는 물’이다. 정체된 물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다.
김고운 강동경희대병원 웰니스센터 한방비만체형클리닉 교수는 “음양탕은 온도 측면에서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소화기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했다”며 “한의학적으로 음양의 조화를 맞춰 준다고 해서 음양탕이라고 부르며, 냉수 대신 미지근한 물을 먹는 습관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여름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음양탕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김고운 교수는 “물을 팔팔 끓여 컵의 3분의2를 채우고, 찬물을 조금씩 넣어 상하 순환이 되도록 만드는 게 요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과학 측면에서도 끓였다 식힌 물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물 속 공기량이 절반으로 줄면서 물분자 사이가 더 치밀해지고, 세포내 물과 비슷해져 체내에 빨리 흡수된다. 또 세포막을 쉽게 통과하고 물질대사를 왕성하게 하며, 혈색소를 늘리므로 면역기능이 높아진다. 근육에 축적된 피로물질을 없애는 속도가 빨라 피로감이 나타나는 것을 늦추고 감기·후두염을 예방한다.
김고운 교수는 “음양탕은 누구나 마셔도 좋은 음료로, 특히 속이 차서 늘 더부룩한 느낌을 받는 등 소화가 잘 안되거나, 평소 손발이 차가운 사람에게 좋다”고 강조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체했거나, 독이 있는 음식을 먹어 곽란(식중독으로 배가 뒤틀리듯이 아프고 토하며 설사가 나는 병)이 있을 경우, 볶은 소금을 타서 마시면 구토가 나오면서 낫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숙취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음양탕으로 만든 물에 목욕도 하면 숙취가 한결 풀린다.
한진우 원장은 “근래 냉장고와 정수기가 발전하면서 생수나 정수된 물을 냉장고 온도로 낮춰 마시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런 습관은 입에서 잠깐 청량감은 느낄 수 있지만 소화기나 호흡기는 물론 면역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물을 한잔 마실 때에도 건강을 생각해 음양탕 등 미지근한 물을 마시도록 하자”고 권고했다. 그는 이어 “기상 직후 냉수를 마시는 습관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해서 평소 손·발·배 등이 찬 사람도 무분별하게 이런 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어 불필요한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